위험수위 넘은 청소년 성매매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의 싹' 원조교제 급속 확산가족해체·무분별한 성문화가 부른 예고된 '우리 모두의 아픔'

'돈 맛'에 어린 영혼이 썩는다
위험수위 넘은 청소년 성매매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의 싹' 원조교제 급속 확산
가족해체·무분별한 성문화가 부른 예고된 '우리 모두의 아픔'


“이 시대의 어른들은 갓 피어나기 시작한 꽃처럼 여린 우리 아이들을 보고 흥분한다. 그 꽃들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닌데….”

유럽 여행 갈 돈을 모으기 위해 채팅에서 만난 남자들과 원조교제를 하는 여고생 여진과 재영, 그리고 그녀들을 둘러 싼 어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사마리아’(감독 김기덕)는 자본 논리 아래 벌어지는 청소년 성매매의 현주소를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청소년 성매매(원조교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 무분별하게 자행되고 있는 청소년 성매매는 어린 영혼과 한 가정, 사회를 뿌리째 병들게 하는 악성 바이러스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예전에 청소년 성매매는 일부 탈선 청소년들과 비도덕적인 어른들만의 이례적인 일로 치부됐다. 하지만 돈이면 무엇이든 사고 팔 수 있다는 논리가 우리 사회를 점령하고 건전한 성 윤리를 강조하는 일이 고리타분한 얘기로 취급 받게 되는 지금, 이제 청소년 성매매는 더 이상 비뚤어진 소수의 문제로 넘기기 힘든 상황이 됐다.

-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돈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건축 일을 하는 50대 남자와 첫 관계를 맺었어요.” 성인들과의 잦은 성관계로 경찰의 단속에 걸려 쉼터에 넘겨진 박민희양(15ㆍ가명). 그녀가 성매매의 늪에 빠지게 된 과정은 우리 사회가 경제난이라는 덫에 걸려 아이들의 보호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성 매매의 벼랑에 내몰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빚 도피, 전학, 가출, 남녀 혼숙, 성매매’. 그녀가 쉼터에 오기까지 겪은 어두운 기억들이다.

민희는 중학교 2학년 때 남동생(14)과 함께 큰 아버지 집에 ‘얹혀’ 살게 됐다.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던 민희의 아버지가 부도를 내고 빚으로 도망자의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미 수년 전 이혼하고 집을 나가버린 뒤였다.

큰 아버지 식구들은 민희와 동생이 눌러 살게 된 뒤 귀찮다는 눈초리를 노골적으로 보냈다. 예민한 사춘기라 민희는 곧 반항아로 변했다. 낯선 환경에서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 하고 친척들의 구박을 견디는 사이 그녀의 방황은 시작됐다. 외로운 마음에 불량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생활은 흐트러졌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여학교에 다니다가 남녀 공학으로 전학 와서 처음엔 좋았는데, 얼마 안가 두려워졌어요. 한 방에 모여서 술 마시고 자고….”

C중학교 3년이던 2002년 12월. 좌절에 빠져 있던 순간, 검은 유혹이 찾아왔다. 민희는 하굣길에 통학 버스를 놓치고 낯선 50대 아저씨의 차를 탔다가 처음 성매매를 경험했다. “너 돈 좋아하니?”라는 물음에 머리를 끄덕인 것이다. 일주일에 이틀이 멀다 하고 만났다. 보통 한 번 만남에 20~30만원. “한 번 돈 맛을 들이고 나니 계속 만나게 됐어요.”

20여 일간의 만남 끝에 그 아저씨가 사준 휴대폰이 교사에게 발각되어 경찰에 넘겨졌다. 경찰은 민희가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처음 성매매를 했다는 점을 감안해 곧 훈방했다. 그러나 큰 아버지네 식구들은 이미 ‘노는 아이’가 된 민희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거리의 아이'가 된 민희는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성 매매의 늪에 깊이 휩쓸려 들어갔다. 춥고 배고픈 아이는 닥치는 대로 어른들과 만나 몸을 판 것이다. 인터넷만 잘 뒤지면 돈을 주겠다는 어른은 질리도록 만날 수 있었다. 몸과 마음에는 점점 상처가 쌓여갔다.

민희는 지난해 9월 산부인과에서 병명도 모른 채 자궁 수술을 받았다. 그 상처로 마음은 더욱 얼어 붙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어요. 남자는 '물주'일 뿐이에요. 확실히 뜯어 먹고 버려야 할 존재 말이에요!"

요즈음 민희는 쉼터에 지내면서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민희는 “부모님과 살면서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다”며 “성매매는 잠깐 눈만 감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철저히 망가뜨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른 친구들이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 '성은 매매할 수 있는 상품' 의식이 문제

이처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성을 자본화 하는 풍조는 민희 같은 ‘특수 그룹’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성에 관한 한, 모범생과 문제아의 구별이 크게 愎? 자유분방하고 거칠 것 없는 신세대의 사고방식과 사회에 만연한 소비 지향적인 문화가 만나면서, 성을 목적에 따라 사고 팔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의식이 보편화하고 있는 때문이다.

최근 ‘씨네서울’(www.cineseoul.com)이 영화 ‘사마리아’ 개봉을 앞두고 네티즌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집이 너무 가난해서 큰 돈이 필요한데 벌 방법이 없다면 원조교제를 할 수 있다”는 응답자가 절반(50.2%)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예인으로 데뷔시켜준다면 원조교제를 할 수 있다”는 응답자도 118명(11.8%)에 이르렀다.

가출ㆍ성매매 10대 여성 전문지원기관인 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 최자은 사회복지사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몸을 자본으로 생각할 정도로 지금 우리 사회의 성 가치관 혼란은 심각하다”고 말했다. 가출.청소년을 위한 쉼터인 나자렛쉼자리 송애순 사무국장도 “소비 지향적인 문화는 아이들을 쉽게 성매매의 유혹에 빠져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가정 해체 현상도 성매매가 판을 치는 가혹한 거리로 청소년들을 내몰고 있다. 가정 안에서 행복을 느끼고 못하고 또래들과 늦은 밤거리를 배회하며 탈출구를 찾는 청소년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길거리에서 희생당할 가능성이 크다.

“처음 만난 남자하고 자는 일은 흔해요. 그렇게 안 하면 싫어하니까요. 우선은 재워 주는 게 어디예요. 집 나갔을 때….” “자취방에서 재워준다고 해 나갔더니 여관방이었어요. 황당했죠.” 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와 서울 YMCA청소년쉼터가 2001년부터 여의도 한강둔치와 동대문 쇼핑타운에서 밤늦게 배회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상담한 내용을 정리해 최근 펴낸 ‘2003 심야거리 상담사업 보고서’의 내용 중 일부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의 경우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46.8%)들은 비가출 청소년(18.8%)들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성매매 충동을 느낀 경우도 가출 청소년들은 18.6%, 비가출 청소년들은 7.6%로 큰 차이를 보였다. YMCA청소년쉼터 최숙향 청소년 지도사는 “가출 청소년일수록 의식주 해결을 위해 성폭력이나 성매매 등 위험 환경에 처할 가능성이 높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적다”며 “가정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이 집을 떠났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인 지원체계의 확충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청소년 성 교육, 현실적 접근 절실

실효성 없는 학교 성교육도 청소년들을 성매매 위험에 방치하는 요인이다. 한국성서대학교 김성경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의 성교육은 일방적으로 어른들만의 규범을 강조할 뿐 청소년들의 성 욕구나 관심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모른 채 교육을 하기 때문에 비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성교육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판에 박힌 내용의 학교 성교육은 아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충족시켜주지 못해 외면 당하고, 인터넷과 음란비디오 등이 유포하는 거짓 성 관념을 부추기는 악순환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아이들에게서 음란한 환경을 완전히 차단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내적 충동과 외적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현실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 성 매매 판치는 '타락의 바다' 인터넷

인터넷 채팅방은 청소년 성매매의 온상지로 부상한 지 오래다. 청소년들이 채팅을 통해 성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려고 하는데다 많은 어른들은 익명성을 무기로 거리낌없이 아이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3월 9일 0시 40분. 17세 여고생을 가장해 채팅방에 접속하자 채 1~2분이 넘기도 전에 10여 명의 20~30대 남자들이 앞 다퉈 접근했다.

접근 남1: "혹시 조건(원조교제를 실행할 조건을 가리키는 은어) 구하니? 난 잠실, 29살 매너 남."

낭랑 17세: "당근이죠."

접근 남1: "나이, 키, 몸무게, 그리고 조건은?"

낭랑 17세: "17, 162, 47, 그리고 10(10만원이란 뜻)."

접근 남 1: "얼마나 같이 있을 건데?"

낭랑 17세: "하는 거 봐서요?"

접근 남1: "글쿠나. 알겠어. 전번(전화번호) 날려 줘. 전화할게"

(이내 또 다른 남자가 접속해 왔다.)

접근 남2 "어떤 만남 원해?"

낭랑 17세 "재밌는 거."

접근 남2 "야하면서? … 그러면 언제?"

낭랑 17세 "뭐해 줄 건데요?

접근 남2 "맛있는 것도 사주고, 노래방도 가고, 친해지면 애무도 하고 싶어"

17세의 여고생이라고 신분을 밝혔음에도 남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영계면 나야 좋지" 라며 흑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들은 ʼn自萱?'얼마나 예쁜가', '성 경험은 있나', '만남의 조건'은 무엇인가 등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원조교제를 뜻하는 'ㅈㄱ'이란 인터넷 은어를 사용하며 노골적으로 마수를 뻗는 이들도 허다했다. 청소년들이 성매매의 유혹에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노출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청소년과 성매매를 하는 어른 10명 중 8명이 인터넷 채팅을 이용해 성을 팔려는 청소년과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2일부터 1월 31일까지 40일 동안 청소년 성매매 특별단속을 통해 붙잡은 성매매 사범 553명 중 성매수자인 성인 371명 가운데 83.1%인 311명이 인터넷을 이용해 청소년과 접촉했다.

정보의 바다로 통하는 인터넷에 청소년 성매매의 검은 손길이 떠다닌다. 그러나 이를 규제할 대책은 없는 거의 없다. 업계는 회원 이탈을 이유로 적극적인 규제를 꺼린다. 정부 또한 산업 육성의 논리를 앞세워 '일부 부작용은 있을 수 있다'는 식의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전문가들은 성토한다.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어기준 소장은 "건전한 채팅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업계와 정부는 성인들의 미성년자 접근을 막고, 자체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정은 '은성원' 사무국장
   
- "그들의 상처, 사회가 보듬고 치료해줘야"

"청소년 성매매는 성적 가치관이 온전히 확립되지 못한 청소년을 두고, 학교와 가정이 성의 상품화가 범람하는 환경에 방치한 결과입니다." 청소년 선도보호시설 '은성원'의 최정은 사무국장은 청소년이 성을 파는 극한 상황에 이른 것은 '학교와 가정이 아이들에 대한 보호를 소홀히 한 결과'라고 진단한다. 검찰의 추산에 따르면 한 해 2만여 명에 달하는 가출 청소년 중 대부분의 소녀들이 성을 파는 유해 환경으로 흘러 들고 있는 현상은 방치의 탓이라는 것이다.

"청소년 성매매의 책임을 개인의 인성 문제로 돌리는 바람에 성의 상품화가 만연한 사회구조적 문제가 외면됩니다." 요즘처럼 가정 해체가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에서는 특히 더 하다. 불우한 가정 환경 때문에 더 비뚤어진 선택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남성에 비해 여성은 특히 10대 소녀들은 가족에 민감하다는 통계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부모의 이혼과 불화를 겪은 청소년들은 자신을 학대하는 방법으로, 성매매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성매매 청소년의 경우, 학교에 대한 기억이 거의 대부분 불행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가정에서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대한 불신과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은 공부에 소질이 없는 청소년들을 사회의 테두리 밖으로 몰아내게 된다. "학교 교육에서 소외된 경험을 가진 청소년들은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도덕적 죽음을 마다 않죠."

최 국장은 이러한 시각에서 "성매매 청소년들을 문제와 비난의 대상이 아닌, 치료와 보호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처 입은 아이들을 다시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육성하는 어른들의 몫입니다. "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3-17 21:41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