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의 만남, 혼란과 방황 떨쳐내…

[감성 25시] 브라이언 리
뿌리와의 만남, 혼란과 방황 떨쳐내…

"술과 담배는 못하지만, 저 반항아 맞아요.”

자신을 쉽사리 반항아라 말할 수 있는 남자! 청바지에 가죽점퍼. 곱슬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헤어스타일. 185Cm의 훤칠한 키에 하얗고 깨끗한 피부. ‘몸짱’에 버금가는 잘 다듬어진 몸매.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할 것만 같은 반항아의 이미지. 술과 담배에 익숙하고, 여자들과의 파티에 빠지지 않을 것 같은, 세련미가 물씬 풍기는 모던 보이!

브라이언 리(Brian Rhee). 한국 이름 이철희. 의사인 아버지와 변호사인 형, 교육 컨설턴트 회사 사장인 누나를 둔, 미국에서 안정적이고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재미교포 2세다. 미시간주에서 태어나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한 남자. 미국에서 패션모델과 배우로 활동하다, 어느 날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으로 돌아온 남자다.

아리랑 TV(퀴즈 챔피언의 MC)를 보거나, 아리랑 라디오(THE B.E.A.T의 DJ)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최근 대학로에서 앵콜 상연 중인 연극 ‘냉정과 열정 사이’(아오이의 미국 애인 마빈 역)를 본 사람이라면, 할리우드 액션 영화 ‘언더시즈2’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남자를 보고 ‘아! 나 저 사람 알아’ 하며 무릎을 탁! 칠 것이다.

- 정체성 확인시켜준 할머니

“친할머니가 위독해 가족 대표로 처음 한국에 왔어요. 한국 땅에 발을 딛는 순간에도 낯선 나라라는 생각이 더 강했죠. 저에게 한국은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렇게 한국에 온지 해수로 5년째다. “저를 처음 본 순간, 병원 침실에 누워계신 할머니가 힘들게 제 이름을 불렀어요. 철희야 라고.” 한번도 ‘철희’로 불린 적이 없던 브라이언은 너무도 낯설어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할머니와의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은 브라이언이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다. “친척들은 저를 철희라고 불러요. 좀 이상해요. 그 기분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자신이 그토록 외면했던 뿌리를 직접 만난 이후, 종종 한국을 찾았던 브라이언은 그때부터 친척들을 방문하며 한국문화를 접하게 된다. “여기가 나의 뿌리구나 생각하니, 낯설면서 갑자기 뭉클해졌어요. 제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었어요.”

브라이언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한번도 자신이 한국남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당연하다. 교포 2세는 선택에 의한 삶이 아니기에. 어릴 적 남들이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에서 “난, 백인 아이와 다르다”는 것을 몸소 느껴야 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다. “내가 왜 저 아이들과 다르단 말인가!” 똑같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같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브라이언은 미국 사회 속에 깊숙이 잠재한 인종차별과 편견의 벽에 부딪쳐야만 했다. 그것은 브라이언에게 풀리지 않는 딜레마였다.

“저도, 백인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미국에서 한국 남자도, 미국남자도 아닌, 한갓 동양인일 뿐이었죠.”

동양인의 벽일까? “학교 다닐 때, 저는 질문도 많이 하고 활발한 학생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저를 선생님은 산만하고 장난기 많은 문제 학생으로만 받아들였어요.”

- 미운오리새끼 취급받던 반항아

브라이언의 반항은 이때부터 싹텄다. 동양인은 모범적이고 공부만 해야 하는 ‘쑥맥’ 정도로 이해한 미국사회에서 개성 있는 동양인은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반항하기 시작했다. 일테면, 평범하고 모범적인 것에서 벗어나기, 미국인들보다 더 튀기, 동양남자는 여리고 약하다는 이미지 깨기 등이다. 그가 패션모델과 연기를 택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영화계와 연극무대와 모델로 활동하던 그는, 그저 의욕 있는 동양 남자일 뿐이었다. 그리고 핏줄의 부름을 받고 한국에 오게 된다. 한국에 와서야 비로소 미국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그.

“부러, 한국말을 배우지 않고 미국인들처럼 행동하고, 백인에 대한 저항과 반감으로 흑인친구들과 사귀면서도, 미국 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배우로 명성을 얻기 위해 할리우드로 뛰어든 모순된 동양인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어요. 그게 미국에서 ‘나’의 모습이었죠.” 느낀 순간, 가슴이 싸해졌다는 그. “미국에 있을 때 한국말 배운 적 없어요. 영어만 했죠.”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한국말을 배웠다는 브라이언의 한국어 실력은 대단하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농담까지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다. “아직 부족해요. 한자나 문법에 약해요. 가방 안에 늘 한국어 문법, 어휘사전을 들고 다녀야 해요.” 이렇게 겸손하게 말하지만, 아리랑 라디오 ‘THE BEAT’의 방지원 PD 는 “브라이언 한국말 잘해요. 우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많이 듣고 이야기하고 그래선지 한국어 실력도 금세 늘었어요.” 막내 이연호 작가도 거든다. “브라이언 오빠는요. 저보다 어휘력이 풍부할 때도 있어요. 어떨 땐 저 사람 교포 맞아? 하며 의심도 한다니까요. 노는 것도 열심히, 일도 열심히! 방송을 하는 도중 장난치며 농담하다가, 스탠바이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정말이지 얄밉게도 잘해요.”

스태프진dhk 가족적인 분위기로 방송을 진행하는 브라이언의 모습 속에서 친오빠 같은 정겨움과 포근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영어로 하는 방송이다 보니, 브라이언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쯤 입담과 재치의 대가 김제동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 한국영화ㆍ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어

어릴 적 유독 높은 곳을 좋아해 오르기를 열망한 소년. 무모하게 옥상에서 뛰어 내려 다리가 부러지기도 한 소년의 꿈은 하늘을 나는 슈퍼맨도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인 맥가이버도 아니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동양인을 바라보는 서구 우월주의 시각과 편견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인격체였다. 동양인은 그의 가족처럼 의사, 변호사, 교육계에 종사하는 모범적이고 평범한 인텔리여야만 미국사회에서 인정받았다. 모델과 배우 지망생인 브라이언은 바다에 뛰어든 순진한 나비와도 같았다.

한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픈 브라이언.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삶을 비로소 펼치기 시작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나의 뿌리에 대해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더 이상 브라이언은 백조를 흉내내기에 바쁜 우스꽝스런 오리가 아니다.

“한국어가 조금 더 능숙해지면, 영화나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 조만간 CF에도 나와요” KTF 휴대폰 광고에도 조만간 얼굴을 보이게 될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 한창 공연중인 ‘냉정과 열정사이’의 마빈 역할은 자신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역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옛 애인에게 빼앗기는 역이죠. 사랑하기에 그녀를 위해 떠나보내는 쿨하고 마음 넓은 마빈은 슬프지만 어딘지 모르게 저와 닮은 것 같아요.”

그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까? 집에서 개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는데, “우리 집엔 남자만 셋이예요. 어디 괜찮은 여자 분 없나요?”라며 넉살좋게 웃는다. 그는 더 이상 반항아가 아니다. 미국 사회에서 일부러 보였던 반항의 열정을 이제 연기와 일에 쏟겠다고 말하는 이 괜찮은 남자, 어서 잡기를 바란다. 그가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으니….

유혜성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3-31 15:45


유혜성 자유기고가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