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개천의 용, 법조인 되다막노동하며 서울법대 수석합격, 사시패스로 예비법조인의 길

공부가 가장 쉬웠던 남자 장승수
우리시대 개천의 용, 법조인 되다
막노동하며 서울법대 수석합격, 사시패스로 예비법조인의 길


‘세상에서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몇 년 전, “공부가 가장 쉽다”고 말해 일약 주목을 받았던 이가 있었다. 1996년, 늦은 나이에 막노동꾼에서 서울대 법대 수석합격자로 화제를 일으켰던 장승수씨다. 그 후 7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그는 사법고시 합격자가 되었고 최근 일산에 있는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예비 법조인으로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는 중이다.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보다는 요즘이 마음은 편해요. 시험을 준비하는 시기는 누구나 힘들 것입니다. 저는 사법시험 세 번째 도전 끝에 합격했어요. 하지만 한시름 놓을 겨를도 없이 이제 시작한 사법 연수원 생활이 만만치 않네요.”

“공부가 가장 쉬웠다”고 한 그였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방대한 공부량과 몇 번의 실패에 따른 부담도 느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공부에 대한 열망을 키워갔다. 그 동안 숱한 좌절과 역경을 경험했기에, 몇 번의 불합격에 쉽게 흔들릴 그가 아니었다. 이미 그는 고난과 자기와의 싸움에 면역이 된 듯했다. 요즘은 연수원 생활에 적응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입시 공부와 달리 사법시험 공부는 정말 양이 방대합니다. 고시공부를 하면서 실패의 쓴 잔도 마시며 힘들긴 했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열중한 것 같아요. 고시공부 역시, 모르는 걸 알아 가는 재미로 파고들었죠.”

- 희망을 일궈낸 끝없는 도전

그가 책꽂이에서 보여준 사법고시 관련 책은 백과사전처럼 두꺼웠다. 또 한 과목 당, 이런 책으로 족히 5권이 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배움은 끝이 없다고 하지만, 그와 뗄 수 없는 공부 인생은 과연 언제 끝날 지 모를 일이다.

올해 34살인 그가 걸어 온 길은, 그 또래들이 겪은 그것보다 훨씬 파란만장했다.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살다가, 언론에 보도되고 갑자기 주목을 받으니까 첨엔 얼떨떨했죠. 그리고 한동안 사람들부터 잊혀져 살다가 새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지금은 담담해요. 예전엔 불편한 점도 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저를 알아본다는 것을 좋은 계기로 생각합니다.”

그는 막노동 일과 수험생활을 병행, 고교를 졸업한 지 6년 만에 서울대 법대에 수석 합격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이후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을 펴내며 베스트셀러 반열에도 올랐다. 그 후 법학도로, 권투선수로, 그리고 이번엔 사법시험 합격자로 거듭났다.

가난과 싸우며 공부에 열중했던 지난 20대 시절, 지금은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저의 20대 초반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시기였어요. 홀어머니 밑에서 당장 먹고 살아야 할 생계 문제가 급했기에 대학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공부 역시 저에겐 사치였죠. 당연히 공부는 뒷전이었고 졸업한 후에는 공사장 막노동, 포크레인 기사, 가스통 배달 등 ‘돈이 좀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일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일들을 계속 한다고 가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더군요. 그리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공부에 대한 열정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남보다 늦게 시작한 공부, 내신 열등감, 생계 때문에 막노동과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현실. 그는 자신의 한계 상황과 싸우며 끊임없이 도전했고 마침내 희망을 일궈냈다. 지치지 않은 강한 의지와 짧지만 굴곡 있는 인생을 살아온 그의 이야기는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가닥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 "맞고 때리는 권투는 매력적 운동"

남자 키로는 단신인 159㎝의 왜소한 체구. 하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체격과 당당한 면모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장승수씨는 4년 전, 프로복싱 테스트를 통과한 권투 선수이기도 하다. 권투는 대학 입학 후, 집 근처 체육관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뭐든지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상, 권투 역시 복싱 슈퍼플라이급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프로 복서로 인정 받았다.

“권투는 어릴 때부터 종판求?운동이었어요. 지금은 시간도 거의 없고, 다리도 다쳐서 쉬고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할 생각이에요. 사실, 많이 맞으면 외상에 의한 충격으로 종일 몸살에 걸려요. 정신적으로도 위축감이 들기도 하고요. 남들은 두들겨 맞는 권투를 왜 하냐고 하는데, 저에게 있어 권투는 맞고 때리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獵?매력적인 운동이에요.”

일산에 위치한 사법연수원에 출퇴근하는 그는, 수업과 시험 준비로 마치 고시생 때처럼 여전히 빡빡하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남들보다 좀 알려졌다는 유명세 때문에 반에서 총무를 맡게 되었다. 반 회식과 MT 등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나서서 해야 하는데 “할 일 없어 심심한 것보다는 낫다”며 웃는다.

사법연수원이 끝나면 판사를 할지 검사를 할지 아직 결정을 못했단다. “아직 생각중인데, 현재는 치열한 연수원 생활에 충실히 전념할 생각입니다. 먼저 숙제와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고 각종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연수원 동기들과도 원만히 지내야죠.”

- "어려운 사람 위한 법조인 되겠다"

“고시 합격의 목표도 이루었으니 이젠 결혼도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직 결혼 계획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집에서도 결혼하라고 채근하지 않으며, 살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마침 필자와 만난 날이 화이트데이였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바빠서 몰랐다”며 “냉철한 현실을 일깨워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요즘 살기 힘들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제가 감히 드리고 싶은 말은, 힘들고 고생스럽더라도 체념하지 말고 현실에 정면 돌파하라는 것입니다. 그 시기를 잘 견디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 역시 그런 고난을 체험한 만큼,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법조인이 되고 싶습니다.”

허주희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3-31 16:19


허주희 자유기고가 cutyhe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