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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계절, 분열의 시대
빈부, 학벌, 연령 편가르기 극심, 갈등과 차별의 사회상 드러나

‘타워팰리스 앞에서 가난이 앗아간 넋을 달래다’, ‘학벌, 그게 뭔데… 절대 울지 마세요’, ‘6070(세대) 분노의 현장을 가다’.

최근 며칠 사이 신문ㆍ방송과 인터넷 매체 등에 집중적으로 소개된 뉴스 제목들이다. 빈부, 학벌, 연령 등에 따른 갈등과 차별로 어지러운 우리 사회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자기가 처한 입장이나 시각에 따라 우리 사회의 편가르기가 급속히 진행된다. 한마디로 분열의 시대다.


- 가진 자에 대한 분노





3월30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부의 상징’인 타워팰리스 앞에서 열린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굿판을 두고 사람들의 보는 눈은 달랐다. “타워팰리스 주민들에게 나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빈부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 자리를 택했다”는 게 행사를 주최한 빈곤사회연대 유의선 사무국장의 설명이었지만, 그 숨은 ‘저의’를 의심하고 불쾌해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직장인 최모(40)씨는 “타워팰리스에 사는 게 무슨 죄라고, 남의 집 안마당에 와서 굿이냐. 입장을 바꿔보면 기분 나쁘지 않겠냐. 열심히 돈 모아서 타워팰리스에 들어간 친구가 있는데, 괜한 ‘죄인’취급에 불쾌하지 않겠냐”고 항의했다.

그러나 ‘빈곤연대’측의 입장을 지지하고, 나아가 ‘타워팰리스 족’에 대한 분노가 담긴 목소리는 더욱 높았다. 다음 등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는 타워팰리스를 향한 성토의 글이 빗발쳤다. “타워팰리스 사는 인간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단돈 10만원이 없어, 아니 하루 한 끼 먹기 어려운 서민들이 얼마나 많은데. 집 한 채에 15억원!! 한달 운영비가 수백만원!! 이런 무지막지한 놈들!! 따지고 보면 서민들 재산을 간접적으로 착취한 것인데. 이런 사람들은 배꼽이 둘인가? 똥도 황금으로 싸는가?”(ID 연) “마시는 물도 2ℓ에 1만5,000원이나 하는 해양심층수 ‘마린 파워’나 빙하수 등을 챙겨 마시는 타워팰리스에 사는 이들의 상당수가 세금은 탈세하고 있다”(ID 봄소식)

타워팰리스 앞의 자동차들을 찍은 사진도 블로그 세계에서는 화제다. 이 사진을 게재한 ‘wendows’의 블로그에는 무려 3,000여 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다녀갔다. “모터쑈 하는 것 아니요?”(civil18), “저런 곳에 티코가 있다면 더 튀어 보일 것이오”(bluevivi) “돈 많은 넘들이 왠 불법주차??? 딱지 끊기겠넹… 시청에서는 빨리 출동해라~~.”(불법주차)

- 학력·노인 발언 파문



뿌리 깊은 학벌주의는 ‘영부인의 국모 자격’을 재단하는 실언을 낳았다. 3월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던 탄핵찬성 집회에 참가했던 송만기씨는 “고등학교도 안 나온 여자가 국모로서 자격이 있습니까?” “이희호 여사와 YS 부인은 모두 이대(이화여대)를 나왔어요”라고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의 학력을 트집잡았다. 이 말은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3월26일 방송)을 통해 방영되자 격렬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네티즌 장청화씨는 MBC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여지껏 그나마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대통령 되는 나라라며 (아이들에게) 절대 학원 같은 건 안 가도 된다고 똥 배짱 부리며 살았는데, 아무래도 파출부 자리라도 알아봐서 애들 학원 보내야겠다. 그래야 내 아들들은 이대 나온 마누라 얻어 그나마 사람 대접 받고 살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음하하’라는 닉네임의 네티즌은 “현실이 왜 이리 냉혹한가. 고등학교만 졸업했다고 이렇게 처절하게 무시하다니”라고 통탄했다.

하지만 비하 발언을 촉발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또 어떤가? 일부 신문에 따르면 송씨는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을 향해 “‘잘 나고 많이 배肄?분(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보잘 것 없는 사람 앞에서 굽실굽실 하는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한 대통령의 발언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게 언어적 살인입니다. 제가 만약 대통령 영부인의 학력이 고졸도 안 된다고…”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뿐 아니다. 정치적(이념) 갈등이 세대간 갈등으로 교묘하게 전이돼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진원지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 정 의장은 3월26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지역 언론인 간담회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미래는 20대, 30대들의 무대며 그런 의미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그분들은 어쩌면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고…”라고 말해 노인 폄하 시비를 불러 일으켰다.

- 계층간 갈등과 반목 증폭



정 의장의 발언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로 인해 증폭되는 세대 갈등이다. 이를 부추기기도 한다. “노인들이여, 일어나세요. 당신들의 힘을 보여주세요.” “애비도 죽여라. 60살 노인이라 비하하다니” Vs “우리 선배들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소. 나이를 먹었으면 나잇값을 해야죠. 정 의장 말 잘 했소”. 정치 바람에 휩쓸린 이분법의 논리는 ‘세대’ 대결으로 둔갑했다.

아이디 ‘seasun’네티즌이 ‘다음 네티즌 토론방’에 올린 유머는 다소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가 올린 ‘열우당, 고려장 특별법 제정’이란 제목의 글 내용은 이렇다. “1) 60이 되면 알아서 죽어라. 2) 죽기 전 1주일 내에 열우당 동지부에 신고한다. 3) 위반하면 때려죽인다. 계층간 갈등과 반목은 증오와 분노로 변해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는 형국이다.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는 이 같은 뒤엉킨 ‘분열의 실타래’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양학부 교수는 “많이 가지고 누린 자는 최근의 급속한 사회 변화로 그 기득권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더욱 악랄하게 약자의 것을 빼앗으려 하고, 그 속에서 서민들은 상실감과 좌절감을 안게 되는 것이 현 시대의 문제”라며 “사회지도층이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4-04-0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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