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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보여줄 건 보여줘야 죽이는 누드가 되죠"
누드화보집 명맥 잇는 <핫윈드>
매거진 부활 위해 10년을 매달려온 고집쟁이들
"음모노출 허용해야 예술적 누드시대 열린다" 주장


‘핫윈드’란 잡지를 기억하는가. 1990년 9월 창간됐던 남성월간지 ‘핫윈드’는 ‘제2의 선데이서울’로 불리며 90년대 초반 남성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던 전설을 가지고 있다. ‘핫윈드’ 과월호에는 옥소리, 방은희 등 지금은 유명해진 여성 연예인들의 섹시하고 풋풋한 모습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고급스러움과 천박함의 경계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핫윈드’ 전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주택가의 아담한 지하사무실이 그 역사와 명맥을 이어가는 곳이다. 최근 발행되고 있는 ‘핫윈드’는 매거진적 요소는 줄고 누드화보집 형태로 변했다. 지하실에서 10여년 넘게 ‘핫윈드’의 부활을 준비하며 정통 상업누드를 고집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 ‘에로업계의 자조심’ 김재식ㆍ조한철





지하사무실 계단으로 향하는 입구에 서면 열려진 철문에 ‘예장출판’이란 아담한 아크릴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곳에 출판사가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누드화보집을 펴내는 곳이라 일부러 지하에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의외로 지하사무실은 깔끔하고 정갈했다.

“에로도 지하 시대를 벗어나고 싶죠. 포르노잡지를 만드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지하생활을 하겠어요. 문제는 돈인데 에로가 산업화 되지 않으면 어렵죠.”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가 빛나는 예장출판 김재식대표(38)는 ‘남의 속도 몰라준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김 사장 옆에는 예장출판의 유일한 동료이자 전속사진작가인 조한철씨(35)가 염색된 곱슬머리를 흔들며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두 남자는 ‘에로업계의 자존심’으로 불린다. 그들이 누드사진과 인연을 맺은 출발점은 남성월간지 시절 ‘핫윈드’다. 사진기자로 활약했던 김재식 대표는 조한철 작가와 선ㆍ후배사이였다. 사실 ‘핫윈드’는 일본출판자본의 지원으로 출발한 잡지였다. 때문에 당시 ‘핫윈드’ 편집국에는 일본에서 파견나온 누드전문 사진작가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들의 작업을 도우면서 두 남자는 누드사진의 새로운 세계에 빠져든 것이다.

“너무 잘돼도 탈이라고 할까요. 전성기가 지나면서 국내투자자와 일본투자자간에 문제가 좀 생겼어요. 결국 일본측은 발을 뺐고 1999년까지인가 나오다 폐간되고 말았죠. 하지만 너무 아쉬운 거예요.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싶어서 출판사를 설립하고 일단 제호등록을 다시 했어요.”

정통 누드만 고집하고 있는 사진작가 조한철씨.



과거를 술회하는 김 대표의 얼굴엔 ‘핫윈드’의 흥망성쇠가 한순간 스쳐지나는 듯 만감이 서려있었다. 뜻은 좋았지만 무모한 도전을 함께 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조 작가와 단둘이서 맨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잡지성격을 그대로 이어서 발행하려고 했지만 자본면에서 너무 역부족이었다.

제호는 ‘핫윈드’를 유지한 채 소프트한 면을 없애고 비교적 자극적인 누드화보집으로 컨셉을 잡았다. 때문에 초반엔 독자들의 항의도 많았다고 한다. ‘핫윈드’를 망치고 있다는 따끔한 지적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때마다 언젠가 다시 더 좋은 잡지 ‘핫윈드’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버텨왔다고 한다.

“연예인누드를 보면 저희는 참 슬퍼져요. 그렇게 몸부림쳤지만 우리는 제자리인데 우리 잔치에 객이 와서 휘젓고 노는 꼴이랄까요. 누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없애고 표현의 폭을 이만큼 넓힌 것도 사실 에로업계라고 자부하거든요.”

연예인누드의 수익이 수억, 수십억을 부르짖고 있는 판국이어서 그럴까. 조 작가의 말투엔 독기가 잔뜩 서려있었다. 여자 모델의 옷을 벗기고, 감각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내는데 있어 사실 김 대표와 조 작가를 따라갈 사람은 국내에 거의 없다.

- "성표현의 자유 선행돼야 작품 나와”



사람들은 ‘일본이나 미국 누드처럼 죽이게 찍어봐’라고 손쉽게 말한다. 그러나 에로업계의 열악한 현실을 보면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도 대단한 일이다. 두 사람은 기술이나 환경의 차이보다 더 뼈아픈 조건으로 ‘성 표현의 자유’를 꼽는다. 음모 한올 나오지 않게 찍기 위해 몸부림치다보면 어느새 부자연스러운 누드만 남는다는 것이다.

조 작가는 자신의 누드사진에 있어서 굳이 예술을 운운하지 않는다. 오히려 명백한 상업누드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외국의 유명 사진작가들도 모두 예술누드와 상업누드를 병행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누드화보집 ‘핫윈드’의 꼿꼿한 자존심은 아직까지도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디지털시대에 값비싼 누드를 슬라이드 필름으로 작업한다는 것은 어쩌면 바보짓이다. 실제로 연예인누드도 상당수는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했다. 매월 한번씩 누드모델과 작업을 해야 하는 출판사의 입장을 감안하면 공연한 고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쎄요. 일본에서도 최근엔 디지털로 작업을 한다고 해요. 하지만 아직 국내 인쇄기술로는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시험삼아 몇페이지 인쇄를 해봤는데 영 아니더라구요. 명색이 누드화보집인데 사진이 살아있어야 하잖아요.” 김 사장은 경영자의 입장도 잊은 채 어느새 사진작가 본업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요즘 들어서 현장에 나가지 않지만 누드화보집 발행 초창기에는 그 역시 조 작가와 번갈아 카메라를 들고 알몸 앞에 섰었다.

말이 나온 김에 연예인누드에 대해 한가지 더 물었다. ‘에로의 관점에서 볼 때 결정적인 문제가 무엇일까’라고. 김대표는 의외로 시원스레 답했다.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죠. 포장과 마케팅에만 신경쓴다고 할까요.” 이쯤 되자 누드사진의 본질이 궁금해졌다. 이번엔 조 작가가 나섰다. “누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뚱이죠. 몸을 하나의 고기 덩어리로 볼 수도 있지만 대상이 여성인 이상 여성미를 표현해야 한다는 거죠. 다양한 여성미 중 노골적인 섹시함은 피해갈 수 없는 요소예요. 음모와 성기가 보이느냐 안보이느냐. 가랑이가 벌어졌냐 안벌어졌냐는 진짜 웃긴 논쟁에 불과해요.”

- 누드화보집 시장 불황, 규제가 원인

열악한 조건이지만 핫윈드의 복간에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보이고 있다.아래 사진은 핫윈드에 실린 누드사진.



10여년 넘게 고생했다면 이제 희망도 구체화될 때다. 하지만 누드집 출판시장은 갈수록 불황의 골이 깊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 것일까.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모아 ‘음모노출 허용’을 외친다. 이 규제만 없어지면 누드는 오히려 덜 음란해지고 예술적인 누드시대도 열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은 미국과 일본에서 이미 검증된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

지난달 그들은 청평 ‘샤갈의 마을’로 촬영을 다녀왔다. 눈이 채 녹지 않는 야외에서 촬영을 강행한 끝에 누드모델은 혹독한 감기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 달 컨셉은 ‘봄의 요정’. 의상협찬이 쉽지 않았지만 섹시하면서도 깜찍한 누드를 담아볼 계획이라고 한다. 인터뷰를 끝낸 그들은 4월에 발매될 누드화보집 마무리작업에 다시 돌입했다. “언제쯤 ‘핫윈드’의 화려한 부활을 볼 수 있겠느냐”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조 작가는 “앞으로 10년 이상이 걸리진 않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음모노출 허용은 2,3년이면 될 것 같다. 그땐 진짜 에로들이 주도권을 잡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하계단을 빠져나오는 순간 봄햇살이 눈부시게 빛났다. 순간, 누드사진이 과연 천박한 선입견을 딛고 이 찬연한 햇빛을 받는 날이 과연 올까라는 의문이 여운처럼 남았다.



황영석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 2004-04-0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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