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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락업소 단속 동행취재-"인권유린 발 못붙이게 할 것"
미아리 텍사스로 간 여경 '숙자매'… 고성·숨바꼭질 없는 단속
종암 경찰서 이숙영 경장·고희숙 순경, 부적절한 상납고리 끊기에 나서


3월30일 오후9시5분 서울 종암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아직도 앳된 20대 여경 두 명이 윤락가 단속에 나서기 위해 경찰봉과 수갑, 무전기 등을 챙기고 있었다. 혹시 상대로부터 허술하게 보일까봐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고 버버리 코드를 걸쳤지만, 험한 곳으로 순찰을 나간다고 하기에는 다소 여려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숙영(28) 경장과 고희숙(25) 순경은 예상보다 평온했다. 이번 출동이 지난 3월 초 발령을 받은 지 각각 3~4회째 단속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돌발 상황은 거의 없어요. 처음엔 TV에서만 보던 곳을 간다고 하니 약간 걱정도 됐는데 막상 나가보니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이숙영 경장).

두 사람이 여성청소년계에 배치돼 윤락가 단속을 맡은 것은 3월5일. 말 많고 탈 많은 일선 경찰서의 유흥ㆍ향락업소 단속반에 불어 닥친 때아닌 인사 바람에 휩쓸린 것이다. 최근 불거진 인천 계양경찰서 ‘성 상납’ 파문을 계기로, 경찰과 유흥업소의 유착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여경에게 단속 업무가 주어진 것이다.

종암경찰서뿐만이 아니다.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를 비롯해 6개 광역시 경찰서 123곳, 윤락업소가 몰려 있는 지역 경찰서 5곳 등 모두 128곳의 유흥ㆍ향락 업소 단속 담당 직원을 전격 여경으로 교체했다.

여경이 윤락가 단속에 나선지 20일 여. 윤락 업소와 단속 경찰관 사이에 부패의 고리는 끊어질 수 있을까.


- 경찰 단속보다 카메라에 더 민감





고의숙 순경과 이숙영 경장 등은 9시30분쯤 진녹색의 천막이 야릇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소위 ‘미아리 텍사스’ 입구에 도착했다. 200여m의

미로 같은 골목 안은 아직 이른 탓인지 한산했다. 서너명의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쇼 윈도우 안을 기웃거릴 뿐이었다.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해야 할 시간인 듯한데, 아예 붉은 불빛이 내걸리지 않은 곳도 적지 않았다. 업소 앞에 또렷하게 붙어 있는 ‘가게, 세 놓습니다’란 문구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미아리 텍사스의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듯했다.

여경 단속반이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거리는 술렁이는 빛이 역력했다. 경찰의 단속에 긴장하는 빛은 없었지만 취재팀의 카메라에 유달리 민감하게 반응하는 터였다. “사진은 왜 찍고 난리야”. 볼멘 항의가 일행의 뒤통수로 날아들었다. “여성청소년계와 강력계 등에서 거의 매일같이 이 거리에 나오기 때문에 업주나 아가씨들이 경찰을 특별히 경계하지는 않아요.” 이 경장의 말대로 얼마 안 가 골목 중간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의경들과 마주쳤다.

좁다란 골목을 100m 가량 걸어가다 여경 단속반은 삼거리의 한 모퉁이에 위치한 업소의 문을 열었다. 눈부시게 흰 드레스를 입고, 유리창 안에서 백화점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화장을 하던 아가씨들이 일제히 얼굴을 돌렸다. 적게는 20대 중반에서 많게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들이 모두 5명. 반갑지 않은 불청객의 방문에 아가씨와 마담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여기 5명 외에 다른 아가씨는 없나요?”, “신분증 가져 오세요.” 아가씨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주섬주섬 신분증을 꺼내놓는다. 미성년자 혹은, 가출 여성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간단한 신분 조회 절차가 끝나자 단속반은 18평의 3층 건물(지하 1층 포함)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소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감금 장치는 없는지, 감춰진 비상구가 있는지 등의 점검이다. “예전엔 문을 밖에서 잠글 수 있도록 장치를 한 경우가 적지 않았거든요.” 총 점검 시간은 10분 안팎. 적발된 사항은 없었다. 이것으로 일단 윤락 현장에서의 상황은 종료된다.

- 단속ㆍ조사과정, 충돌 등 불상사 없어

이숙영(오른쪽) 경장과 고희숙 순경이 아가씨들의
신분증 검사를 하고 있다. /사진=임재범 기자



오후 9시45분께. 여경 단속반은 아가씨들을 서너 발자욱 앞세우고 경찰서로 향했다. “입건하려고 단속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도망가거나 저항하지 않는다”는 설명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런 의문은 “호루라기와 수갑, 삼단봉 등을 휴대하고 나가지만, 이를 현장에서 써본 적은 없다”는 고 순경의 말에 더욱 짙어진다.

경찰서 조사 역시 순조로웠다. 아가씨들의 상담 카드와 진술서 작성, 그리고 업주와 마담에 대한 불구속 입건 조치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아가씨들은 돈 벌러 온 거니까 입건은 안 하고, 업주는 불맑?입건 후 바로 귀가 조치하죠.”

여경들 특유의 친화력 덕분일까. 상담과 조사 과정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진술서를 작성한 뒤 원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아가씨들은 수다를 떠느라, 경찰서이라는 것마저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아침에 스쿼시하러 가는데, 그 곳 강사가 멋있더라. 내가 찍었어!” 경찰서는 금세 왁자지껄 소란해졌다.

지난해 3월 정보지에 난 광고를 보고 이곳에 왔다는 30살의 A양. 그녀는 상담 과정에서 “한 달 급여로 250만~300만원 정도 꼬박꼬박 통장으로 받고, 감금이나 선불금 등의 부당한 대우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업소에서 밥도 주고 화장품이나 옷을 사라고 강요하지도 않기 때문에 “따로 쓸 돈이 없다”고 했다. “한 달에 저축도 200만원 이상 한다”는 자랑도 뒤따른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들은 윤락가 속사정은 ‘인권유린’은 발 붙일 곳 없는 한 마디로 ‘자유지대’였다. 여성들의 평균 학력은 중졸과 고졸이 대부분이지만 방학 때는 간혹 여대생도 만날 수 있단다. 요즈음 장사가 안 돼 하루에 찾아오는 손님은 평균 1~2명. 그래서 “(일이 없으니) 쉬고 싶다고 하면 (업주가) 굳이 일하라고 강요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단속경찰과 윤락가 업주간에 결탁이 왜 일어나며, 굳이 여경을 투입해야 했을까? 경찰 ‘윗분들은 이미 달라진 현장을 잘 몰라서 그런 조치를 취했을까? 그토록 세상을 시끄럽게 하던 현대판 ‘노비문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기자가 다소 의심스러워하자 이숙영 경장이‘기우’(杞憂)라는 듯 못을 박는다. “요즘 아가씨들은 깨어(?) 있어서 불이익 당하면 바로 얘기해요. 업주 눈치보면서 전전긍긍하지 않죠. 휴대전화가 있으니 연락하기도 쉽고요.”이 경장은 또“아가씨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1억원 넘게 탕치기(업소로부터 선불금만 받고 도주하는 것) 해서 업주들이 큰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는데, 어쩌다 아가씨들이 피해를 당하면 크게 확대되고 부풀려지는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종암경찰서는 왜 이 경장과 고 순경을 단속반에 투입했을까? 고 순경은 “인사 철이 아닌 때 교체가 돼 갑작스러웠지만, 전반적인 수사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남자 경찰관들의 부패 고리를 끊기 위해 여경들을 투입한다는 말에 대해서는 “요즘은 (뇌물 등을) 주는 사람도 없고, 받는 사람도 없다”고 못마땅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 경장도 “경찰 근무 경력이 3년 4개월인데, 그간 남자 경찰관들의 유착 사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 여경 단속반 반기는 업주ㆍ아가씨들

여자의 몸으로 험한 윤락가 단속에 나선 후 힘들어진 점은 ‘업무 자체’보다는 ‘수면 부족’이란다. ‘9시 출근, 6시 퇴근’의 평범한 근무 시간이 갑작스레 3일에 한 번 당직하는 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고 순경은 “당직 날엔 아침 8시30분에 출근하면 다음날 오후 1~2시께까지 꼬박 30시간을 일해야 한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같은 부서의 남자경찰인 이승준 경장(31)은 “남성들은 혼자 야간 당직이 가능하지만 여성들은 그럴 수 없다. 때문에 여성들이 배치된 후 당직을 서는 날이 (5일에 1번에서 3일에 1번 꼴로) 늘었다”고 귀띔했다. 남성들이 전담하던 때와 비교해 전반적으로 업무 내용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지만, 남녀 직원 모두 업무 부담은 증가한 셈이었다.

단속여경이 상담카드를 작성하는 아가씨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임재범기자



여경의 윤락 현장 단속을 반기는 쪽은 따로 있다. 업주와 아가씨들이다. 윤락업주들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경찰인 것은 매한가지다. 걸려서 좋을 게 뭐 있겠냐. 단지 우락부락한 아저씨(남자 경찰)들이 아가씨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언니 같은 여경들을 아가씨들이 덜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그 말속에는 다른 속내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이곳 남자 경찰들의 얼굴을 다 꿰고 있지만 담당이 바뀔 경우 남자 경찰은 손님과 구별이 어려운 반면, 여경은 바뀌더라도 일단 이 바닥에서는 눈에 띈다는 것. “어차피 부딪혀 좋은 게 없는 경찰이라면 그렇게 구분이 확실히 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밤 10시50분. 취재팀은 다시 한 번 미아리 텍사스를 찾았다. 그 사이 여경들의 단속을 받았던 아가씨들은 모두 자리에 돌아와 아무일 없었다는 듯 태연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각 언론은 2007년부터 전국에 산재한 사창가를 단계적으로 폐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여성부의 ‘성매매방지 종합대책’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윤락 행위 알선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시대의 대세인데, 그 주역으로 떠오른 여경들이 ‘솜방망이’ 단속이라는 멍에를 벗고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정민승 인턴기자 prufrock@empal.com


입력시간 : 2004-04-06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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