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덜 썩은 사과 고르기, 물은 셀프니 직접 드세요"정치권에 대한 불신 속 시원히 풀어주는 인터넷 세상패러디 포스터 콘테스트에 기발한 아이다어 쏟아져

총선 패러디로 온라인 '후끈후끈'
"선거는 덜 썩은 사과 고르기, 물은 셀프니 직접 드세요"
정치권에 대한 불신 속 시원히 풀어주는 인터넷 세상
패러디 포스터 콘테스트에 기발한 아이다어 쏟아져


사례1: <공지> 다음의 이름을 가진 어린이를 찾고 있습니다.

‘병렬/ 순형/ 사덕 : 2004년 3월 12일 이후 출생 자녀’ 자신의 자녀에게 요런 이름을 지어준 부모들은 꼭 다음 단체에서 상담 받으시기 바랍니다 - 한국 아동학대방지위원회

사례2: “국회 사무처는 17대부터 의장석과 반대 방향의 역방향 좌석을 배치, 국민을 멀미 나게 하는 저질 국회의원들을 강제 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 톡톡 튀는 정치권 비틀기

시사풍자 전문 블로그인 미디어몹(www.mediamob.co.kr)의 주요 메뉴인 ‘헤딩라인 뉴스’의 일부다. 공중파 방송 뉴스의 형식을 빌려 와 정치권을 비꼰다. 2월 28일 첫 방송이 나간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3월 25일부터 덥석 공중파 방송(KBS 2TV ‘생방송 시사 투나잇’, 월~목 밤 12:10)의 고정 자리를 꿰 찰 정도로 큰 인기다.

패러디는 이제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4. 15 총선 정국은 ‘패러디’에 날개를 달아 준 형국이다. 패러디는 부패한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한 가슴을 가장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아이템이다.

‘4월 15일엔 꼭 덜 썩은 사과(를) 고르러 가자구요.’

중앙선관위가 정치 포털과 연동해서 운영하는 총선사이트(vote2004.nec.go.kr)의 ‘패러디 포스터 컨테스트’(3월 1일~4월 10일)에는 무려 970여 건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올라왔다. 네티즌 ‘zzz365’가 올린 ‘덜 썩은 사과’란 작품은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치인들을 썩은 사과에 빗대어 비꼰 재치가 번득인다. “선거는 죄다 썩은(?) 정치인들 틈에서 그나마 덜 썩은 인물을 추려 내는 작업과 같다”는 날카로운 메시지가 돋보인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나온 ‘국민주권 휘두르며’는 영화의 두 주인공 형제인 장동건 원빈을 등장시켜 국민주권 행사에 나선 비장한 심경을 담았다. “형! 시끄럽고 이기적인 국회,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음 그래…” 등 극 중 인물들의 어투를 빌려 악몽 같은 현실을 꼬집는다.

영화 포스터 대신 톡톡 튀는 TV CF를 응용해 한 편의 단편 영화를 보는 듯 업 그레이드된 패러디 작품도 눈길을 끈다. 시사풍자 사이트 ‘라이브이즈닷컴’(www.liveis.com)의 “개혁은 언제나 목마르다! 2표 부족할 때” 편을 보자.

최근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조인성과 전지현의 음료 광고(롯데2% 부족할 때)를 빌려와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선거일에 “함께 투표하러 가자”는 조인성의 제안을 “일이 많아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한 전지현이 다른 남자와 데이트 중에 발각된다는 내용. 언뜻 보면 두 연인의 사랑 싸움에 불과하지만, 젊은 세대의 기성 정치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감과 함께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는 참여 정신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투표 하는 대신 다른 남자와의 데이트를 즐기던 전지현이 조인성과 마주치자 오히려 큰 소리 친다. "내가 투표 안 하고 다른 남자랑 만나는 걸 보니 미치겠어?" 전지현의 눈에서는 '할 일 없이' 투표나 하러 다니는 조인성에 대한 원망이 배어 나온다. " 넌 자존심도 없냐? 그렇게도 모르겠어. 니가 그런다고 저들이 바뀔 것 같애?", " 정치가 밥 먹여줘?" 전지현의 마른 외침이 끝나기 전에, 조인성이 그녀의 뺨을 매몰차게 내려친다. " 투표 안 한 것들은 사랑할 자격도 없어!" 눈물을 머鳧?조인성의 마지막 멘트가 대미를 장식한다. ' 선거일= 휴식일'로 여기는 젊은이들의 의식에 일침을 가한다.

국민들의 예상을 뒤엎는 정치인들의 엽기적 입심 역시 풍자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골 소재이다. 요즘 네티즌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유행 검색어 중 하나가 ‘ 물은 셀프’. 지난달 15일 야당 지도부가 탄핵 방송과 관련해 KBS를 항의 방문했다가 홀대한다며 “ 온 지 12분이 지났는데 물 한 잔도 없다”고 한 말에 대해 네티즌들이 퍼부은 야유다. KBS 건물을 합성 사진으로 처리해 벽에다 ‘ 물은 셀프’라는 흰색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게 했고, ‘ 언론사 방문 국회의원 접대용’이라는 ‘ 쳐드셈’이란 생수 캔 이미지도 등장했다. “ 제 손으로 냉수 먹고, 제발 좀 정신 차리라”는 따끔한 충고다.

- 탄핵 마블 게임도 등장

패러디 게임도 등장했다. 탄핵 관련 정치인들의 패러디 사진을 총망라 해 담은 신종 보드게임 ‘ 탄핵 마블’이다.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수만큼 말을 움직이는 블루 마블 게임에다 술, 대통령 탄핵 사태를 절묘하게 결합해 만들었다. 3월 19일 포털사이트 엠파스의 유행 검색 게시판에 올라와 4월 9일 현재 28,000여 건, 댓글 150 여 건을 기록하고 있다. 단순히 보면 게임판에 쓰여진 지시 사항에 따라 술을 마시는 게임이지만, 탄핵 관련 인물의 성격에 따라 마셔야 하는 잔 수가 다르다는 데 심오한 뜻이 있다.

예컨대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을 패러디, 고뇌하는 표정의 노무현 대통령에 걸리면 ‘물 5잔’의 벌칙을 받는다. 잔 수로 가장 술을 많이 먹는 경우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조순형 민주당 대표의 ‘러브샷’으로 소주 5잔이다. “ 촛불 집회 참석자는 백수”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홍사덕’은 소주 3잔. 운 좋게도 ‘손석희’ 말판에 걸리면 그의 입담처럼 시원한 사이다 1잔을 마실 수 있다. 이 밖에도 ‘국민의 심판주’에 도착하면 글라스 한 잔을 ‘원샷’해야 하며,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에 걸리면 소주 1병을 마셔야 한다. 가수 유승준의 ‘스티붕’에 걸리면 ‘해외 이민’으로 게임 끝이 난다. 탄핵 관련 인물들을 안주 삼아 정치 현실을 곱씹을 수 있는 1석 2조의 게임.

한편, 정치 패러디 바람이 거세자 표현의 한계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4월 7일 정치풍자물을 인터넷에 게시한 혐의로 ‘라이브이즈닷컴’ 운영자 등 3명이 불구속 기소된 것. 네티즌들은 이 같은 조치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허위사실 유포와 패러디도 구분 못하나?’라며 패러디에 대한 선관위의 기계적인 법 적용을 꼬집는 분위기가 대세다.

‘Hulkman’이란 네티즌은 “허위 사실 유포는 패러디와는 다르지요. 국민들이 그걸 구분하지도 못할 거라 생각하는지요? 참 웃기는 코미디구먼…”이라며 비웃는다. 또 다른 네티즌 ‘nocturn19’도 “표현의 자유도 없는 공산주의만도 못한 나라네. 이말 했다고 나두 잡아 갈려나”라고 조소했다.

이제는 패러디 표현에 한계를 지우려는 현실이 또 다른 풍자의 소재로 떠오를 판이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4-14 17:07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