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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속에서 세상풍경을 엿보죠"
이삿짐센터 사람들/이종복, 정유섭, 하상욱
아르바이트생들 사흘도 못 버티는 중노동, "정치인들 일주일만 시켜봤으면"


“콘돔, 피임약, 생리대, 포르노 테이프, 비자금 뭉치…. 뭣이 됐든 1~2분내로 못 찾아내는 게 없습니다. ‘보물찾기’ 대회 같은 거라도 있으면 아마 이삿짐 센터 직원들의 독무대가 될걸요. 손바닥 안이죠.”

“식탁을 옮기다가 식탁다리가 걸려 부러졌는데, 수리비가 75만원이랍니다. 일당 7~8만원 받는데, 바로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경우죠. 우리 애가 갓난아기일 때도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룬 적이 없어요. 그 뒤로 의자 하나를 옮겨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고 살이 파르르 떨립니다.”

통계청에 의하면 2003년 한 해 951만6,605명의 인구가 전출입 신고를 했다. 한 가구를 4명으로 잡았을 때 전국적으로 1년 동안 약 240만, 하루 평균 6,500여건의 이사가 행해졌다는 계산이다. 학교나 공장 같은 기업형 이사까지 합치면 그 수치는 더 올라 간다. 풀린 날씨와 함께 본격 개시된 ‘이사철’을 맞아 더욱 분주한 이삿짐 센터 사람들. 이삿짐 서비스 ‘yes2404’의 이종복(45)씨와 정유섭(43)씨 그리고 하상욱씨(38)가 틈을 내 한 자리에 모였다. 오만 짐을 옮기는 손으로 세상을 읽는다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 봤다(이하 ‘이’, ‘정’, ‘하’).




왼쪽부터 정유섭, 이종복, 민재식, 하상욱씨. /사진=최규성차장



◈ 요즘은 이사도 불황

- 이사철인데, 요즘 일거리가 많을 것 같다.

정: 꼭 그렇지도 않다. 외환위기 전만 하더라도 지금 같은 시기면 우리가 골라서 일을 했다. 그러나 경기가 좋을 때나 해당되는 말이다. 요즘은 계약을 연장해 이사를 피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나라 경제가 어렵다는 말 아니겠는가.

하: ‘ 이사철’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 이사철’이라고 부를 만큼 계절별 편차는 크지 않은 편이다. 차이가 있어도 미미하다. ‘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면 실제로 독서량이 많아지기 보다는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인 것처럼 이사철 역시 이사 하기에 좋은 계절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 우선 짐을 옮기는 일이어서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 쉬운 일이 있겠느냐만, 힘들다. 방학 때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이 가끔 일하러 오는데 사흘을 못 버틴다. 공사장 막노동의 경우도 출퇴근 시간이 있고 간간이 새참까지 나오지만, 이 일과는 해당 사항 없다. 새벽 5~6시에 출근한다. 포장하고 차에다 실어서 화물을 착지로 옮기고 역순으로 다시 차에서 짐을 내려 집으로 올린 뒤 포장을 해체하고 물건들이 있던 자리에 다 들어가는 시간이 퇴근 시간이다. 보통 오후 3시쯤 일이 끝나지만, 워낙 변수가 많아 자정을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점심과 새참도 그나마 화주를 잘 만나야 얻어 먹지, 그렇지 않은 날에는 물까지 사서 마셔야 한다.

이: 일하는 사람들 중 50대는 찾아 보기 힘들 정도다. 30~40대가 주를 이룰 만큼 센 노동 강도탓이다. 개인 이삿짐 센터 같은 경우에는 덩치 큰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다. 그야말로 3D 업종이다. 정치꾼들은 여기서 일주일만 일해 보라. 자기들만 먹고 살자고, 이 딴 식으로 (정치) 못할 거다.

정: 유명회사의 유니폼으로 복장 통일하고 항상 밝은 표정이라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4대 보험 중 혜택 받고 있는 게 하나도 없는 데다, 여름에는 1.5리터짜리 생수 대여섯 병은 마셔야 하루가 끝나는 일이다.

국내 대부분의 이삿짐 센터들이 프랜차이즈 형태로 회사와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회사의 ‘직원’이기보다는 개인 사업장의 ‘사장’이 더 적절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은 서로를 ‘소사장’이라고 부른다. 자가트럭과 사다리차를 보유한 이들 소사장들 가운데서 팀장이 나오는 격이다. 이를테면 한 팀인 이들은 본사 사무실을 통해 주문을 받아서 일을 한다. 일인당 한달 평균 수입은 200여만원으로 보고 있다.

◈ 우리는 가구 코디 전문가



- 보람도 없으면 일을 계속하지 못 할 텐데, 언제 보람 느끼나?

정: 몇 년 전에 이사를 해 준 집인데,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불러 줄 때다. 사실, 요즘같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2년 전의 사람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런 일이라도 없다면 계속 이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짐을 모두 정리하고 났을 때 환하게 변하는 화주의 표정에서 보람을 느낀다. 좁은 집에서 隙?집으로의 이사일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사업 실패 등의 이유로 넓은 집에서 좁은 집으로 이사를 하는 경우 가구 배치에 상당한 문제가 따른다. 이 때 우리의 ‘가구 코디 능력’이 발휘된다. 우리가 짐만 옮기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전문가다.

- 힘든 점이 있다면?

하: 뭐니 뭐니 해도 무시 받을 때다. 몇몇 사람들은 우리를 하인 다루듯 한다. 뒤통수로 이런 저런 주문들이 날아들 때면, 열 두 번도 더 팽개치고 싶지만 끝까지 한다. 뒷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해고 나면 입이 귀에 가 걸리는데, 거기다 90도로 팍 숙여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찾아 주십시오” 라고 하면 쥐구멍이라도 찾는 듯한 빛이 역력하다.

정: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살았고, 장차 같이 살 이웃들인데, 이사에 비협조적인 사람들도 있다. 가령 사다리차 접근이 곤란한 경우, 엘리베이터로 짐을 내리고 올려야 하는데 눈을 흘기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사다리차가 들어가는 곳인데도, 싸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를 고집하는 화주들이 있다. 이럴 때 좀 힘이 든다.

이: 피아노가 목록에 들었을 때다. 가벼운 건 190Kg, 무거운 것들은 300Kg가 넘는다. 또 요즘엔 투 도어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더 힘들어졌다.

- 포장이사란?

이: 우리가 직접 포장, 이송, 해체, 정리까지 일괄적으로 진행되는 이사를 말한다. 모든 짐들을 박스에 담는 게 원칙이다. 화주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된다.

하: 그게 어느 정도냐면, 부엌의 식기들은 물론이고, 옷장의 옷, 양말까지 그리고 텔레비전 위에 있던 조그마한 조각상 하나까지 착지에 가면 그대로 올라간다. 책도 그 책장 그 자리에 그대로 들어간다. 열이면 열,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 포장 이삿일은 그래서 똑똑해야 할 수 있다.

정: 일반이사는 주인이 짐을 미리 싸놓아야 하고 정리도 화주 몫이다. 우리는 짐을 실어 옮기고 다시 꺼낼 뿐이다. 서비스로 장롱 정도는 넣어서 맞춰 주기도 한다.

우리나라 포장이사는 아시안 게임이 있던 1986년에 시작되었다. 지금의 KBG물류그룹 박해돈 회장이 ‘잠실이사공사’를 열면서 도입한 것으로 포장 박스에다 짐을 넣고 두루마리 화장지로 빈 공간을 채워 이송한 것이 포장 이사의 시초다. 당시만 해도 포장이사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던 서비스. 서민들의 이용이 늘어난 것은 10년 전 쯤이라고 한다.

- 기억에 남는 일도 있을 것 같다



하: 장롱을 들어 내려는데, 주인이 “잠깐!”하고 달려 오더라. 알고 보니 다음 번 이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저축한 ‘저금농(籠)’이었다. 동전, 지폐가 먼지 범벅이 돼 있었는데, 이사를 두 번하고도 남을 정도의 돈이었다. 많이 나온 데는 200만원도 나온 적이 있다. 별 희한한 취미 가진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

정: 나는 사람 하나를 살린 적이 있다. 이사하기로 약속을 해 놓고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 전화도 받지 않길래 그냥 되돌아 갈려다가 느낌이 이상해 문을 뜯고 들어 가서 쓰러진 한 할머니를 응급실로 급히 옮긴 적이 있다. 의사선생 말이 조금만 늦어도 저승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하더구만. 시신에서 냄새가 나서 발견됐다는 말이 이해 가더라구.

이: 서민들이 들으면 살고 싶어지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이름만 대면 다들 알만한 사람 집이었는데, 식탁 하나에 1,500만원 쇼파 하나에 2,500만원, 장롱 하나에 8,000만원. 어느 방향이든 발로 툭 차면 몇 천만원씩 깨지는 그런 집이 있었다. 돌침대 하나 분해해서 포장하는데 꼬박 2시간 걸렸다. 그 돌이 퍼즐처럼 조각조각 놓여 있어 일일이 색인작업에 그림까지 그려 가면서 분해를 하고 포장을 했다. 일반 침대 같았으면 5분내로 분해ㆍ포장해서 차에까지 실린다.

정: 뭐 짐을 옮기다 보면 콘돔, 포르노 테이프 외에도 행방불명 10년차의 결혼반지 등등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몇 년 묵은 쌈짓돈도 나온다. 대부분 화주들의 기억에서는 이미 사라져 안 돌려 줘도 모르는 것들이다. 얼마 전에 한 이삿짐 센터 직원이 이삿짐 속에 든 2,000만원을 훔쳤다는 얘기가 있었다. 사실 그런 유혹을 한두 번 접하는 게 아니다.

◈ 짐 그냥 내버려두는 게 도와주는 것



- 고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 제발 우리가 할 일을 도운답시고 거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도와 준다며 짐을 미리 싸 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가 더 힘들어 진다. 왜 그런가? 도착지서 짐을 우리가 정리해야 하는데, 이렇게 돼 버리면 그 물건의 본래 위치를 알 수 없는 우리는 그 짐을 한 군데 쌓아 두는 수 밖에 없다. 일은 다 끝내 놓고도 아까 그 물건들 때문에 지저분해서 허전하다. 아침 일찍 와서 우리가 짐을 싸니까 아침만 드시고 그냥 가만히 계시라. 그래야 나중에 정리도 깔끔하게 된다. 그래도 귀중품들은 미리 따로 챙겨 놓는 ?좋다.

이: 짐을 올리고 내릴 때 엘리베이터를 고집하는 화주들이 있다. 안 그랬으면 좋겠다. 사다리차가 못 들어 가는 경우야 어쩔 수 없지만, 돈 1~2만원 더 아끼려다 힘은 힘대로 들고 이삿짐에 상처를 남기게 된다. 사다리에 실어 바로 밀어 올릴 것을 엘리베이터로 옮기게 되면 동선이 길어진다. 상처 날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나? 시간이 배로 걸리는 것은 물론이다.



정민승 인턴기자 prufrock@empal.com


입력시간 : 2004-04-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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