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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꿍짝~ 뽕짝 "트로트가 바람났네"
인터넷 방송국 '트로트자나' 콘서트, 열풍 번지며 인기몰이
무명가수들의 의미있는 무대 35회째, 순수의 열창으로 후끈


세대와 학벌, 직업의 귀천 등 사회적 기준을 초월해 한국인에겐 공통된 감성이 있다. 이른바 ‘뽕짝’을 좋아하고, 설령 선호하지 않더라도 한 두 곡쯤은 흥얼댈 수 있다는 점이다. ‘럭셔리’한 차림으로 뽕짝이 흘러나오면 마치 천박한 듯 바라보는 누군가도 결국 한잔 술에 취하면 어느새 뽕짝을 부르고 만다.

힙합과 R&B, 테크노 음악 등 온통 서구적이고 신세대적인 음악이 쏟아져 나오면서 ‘뽕짝’은 어느새 구세대의 전형적인 상징이 되고 말았다. ‘트로트’를 희화화한 ‘뽕짝’이란 말은 요즘은 성인 가요로 불리기도 하지만, 호칭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최근 인터넷을 무대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트로트 태풍의 중심으로 들어가 봤다.


- 가수 반 관객 반, 라이브 열기로 가득





현철, 송대관, 태진아 등 3인방이 없는 트로트 무대라면 너무 썰렁하지 않을까. 3월28일 오후 3시 서울 역삼동의 퓨전바 ‘OIO’(대표 이병준)에는 심상치 않은 옷차림을 한 다양한 연령의 남녀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백바지에 백구두에서부터 화려한 장식이 붙어있는 반짝이 의상까지…. 밤에 봤으면 그나마 익숙했을 무대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들을 나눴다. 30분쯤 흘렀을까. 가수 반, 관객 반 모두 합쳐서 50여명쯤 되는 인원이 자리를 잡은 가운데 드디어 무대의 막이 올랐다.

“제35회 트로트자나의 콘서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국내 최대의 트로트전문 인터넷방송국인 ‘트로트자나’(www.trotjana.co.kr)의 MC이자 가수로 활동하는 김리라의 상큼 발랄한 목소리는 확실히 밤무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안겨 줬다. 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과감한 드레스를 입고 나온 노경희는 ‘임이시여’라는 자신의 노래를 열창하며 첫 번째 무대를 장식했다. 라이브 무대이다 보니 허스키한 목소리와 풍부한 성량이 퓨전바 곳곳에 고스란히 스며든다. 트로트계의 남자 ‘얼짱’으로 불린다는 CF모델 출신 이성우의 ‘당신은 산소 같은 여인’.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는 이혜미의 ‘도깨비 방망이’로 이어 지면서 무대는 어느새 후끈 달아올랐다. 대부분 한번 들으면 따라 부를 수 있는 리듬에 발은 저절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1부 무대가 끝나고 나서야, 6mm 카메라로 공연 모습을 촬영하던 ‘트로트자나’의 박거열 대표도 겨우 한숨을 돌렸다. “남들은 내 속을 모르죠. 돈도 안 되는 일을 4년째 해 오고 있으니까요. 왜 하냐구요? 트로트 가수들은 설만한 무대도 없고, 자기를 알릴 방법도 없어요. 방송이나 밤무대나 다 유명인 위주 잖아요.”

박 대표의 맹목적인 트로트 사랑이 컴맹에 가까운 그를 인터넷으로 안내한 셈이었다. 인터넷 방송국 ‘트로트자나’를 오픈한 이래, 그는 매월 1번씩 신인과 중견 가수를 가리지 않고 무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출연료를 줄 순 없었지만 공연 장면을 인터넷용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인터넷에도 잠재적인 트로트 팬은 많았고 뜨거운 반응이 쇄도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방문객이 늘다 보니 서버유지비 등 ‘트로트자나’의 운영 비용이 만만치 않게 커져만 갔다는 것이다. “돈이야 뭐 어떻게 해결되겠죠. 그보다 트로트자나 하면서 뿌듯한 건 여기 무대를 통해 스타들이 탄생하고 있다는 겁니다.”그러나 이 대목에서 박대표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사연을 듣고 보니 신인이나 무명 때는 카메라 앞에서 한 곡이라도 더 부르려고 애를 쓴 가수가 조금 유명해지면 발길을 뚝 끊어버리는 경우가 때때로 벌어지는 탓이란다. 궁금증을 풀려 하자 박대표는 이름 밝히기를 끝내 거부하며 손사래를 쳤다. “나한테야 배신하면 어때요? 트로트계가 잘 됐다면 그걸로 그만이지. 그냥 좋은 추억이길 바랄뿐이죠.”

콘서트의 분위기는 마치 가족잔치 같았다. 진행이 늦어도 누구하나 보채는 사람도 없었다. 서로 정겹게 대화를 나누다, 준비가 된 것 같으면 다음 무대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2부 무대가 시작되려는지 가수 예진이 의상을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로 뛰어가며 갑자기 법석을 떨었다. 화려한 율동이 돋보였던 예진의 ‘꿀벌’에 이어 가수 유림이 ‘바람 타는 여자’를 열창했다.

유림의 가수 데뷔에는 ‘트로트자나’와 맺은 깊은 사연이 숨겨져 있었다. 유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트로트자나’의 팬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누군가가 인터넷 게시판에 직접 작사해 올려놓은 ‘바람 타는 여자’ 가사를 보고 반해 버렸다. 가수가 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는데 빠져 들다 보니 결국 자신이 그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다.

유림은 차분한 목소리로 “트로트 가수들이 대체로 보면 운명적인 면이 많더라구요. 힘든 길인데도 꼭 가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그런 거, 있잖아요. 돈 못 벌고 유명해 지지 못한다 해도 억울하진 않아요. 하지만 노래할 무대가 없다면 좀 서글프겠죠”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 무명 가수와 팬들의 가교 역할

콘서트는 진행을 맡은 김리라의 무대를 마지막으로 오후 6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가수들은 가족이나 팬들과 함께 삼삼오오 모여 뒤풀이를 위해 흩어졌다. 촬영 장비를 챙겨 넣던 트로트자나 박대표는 그제야 담배 한대를 피워 물었다. 오늘 콘서트는 어땠냐고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이런 무대는 순수한 열정이 있기 때문에 항상 만족할 수 있다”고 받아 넘겼다.

밤무대와 이른바 행사장 등을 무대로 뛰는 무명가수는 전국에 무려 3,000여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이 추구하는 음악은 트로트다. 반면, 지상파 방송국 등에 편성된 트로트 프로그램은 방송국 당 1~2개에 불과하다. 게다가 트로트계는 ‘인생의 쓴 맛을 알 나이에 불러야 한다’는 불문율 때문인지 세대 교체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인터넷방송국은 무명가수들에게 팬들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큰 무대가 되고 있다. 아직은 팬들과 가수의 숫자가 반반에 가깝다. 하지만 35회의 트로트콘서트가 100회, 1,000회를 거듭한다면 인기판도 역시 달라지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대통령까지 만들었다는 인터넷은 이제 트로트계에서도 변화의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트로트전문 인터넷 MC 1호 김리라
  
◈ "트로트계의 '열린 음악회' 만들겠다"



“트로트전문 인터넷 MC 1호”라는 기자의 말에 김리라는 많이 수줍어 했다. 2002년 데뷔앨범을 낸 그는 사실 가수의 길을 포기하려 했었다.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8년째 투병 중인 이유도 있었고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어머니 병세가 호전되면서 기회도 자연스럽게 찾아 들었다.

지난해 말 다시 가수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한 그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곳이 ‘트로트자나’. 첫 출연 자리에서 김리라는 박거열대표로부터 MC와 리포터 역할을 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가수로서 이미지를 쌓는 것이 더 급한 일이었지만 너무 좋은 일이어서 주저 없이 승낙했다고 한다.

△트로트 전문 인터넷 MC가 무엇인지, 설명해 준다면?

=말이 너무 거창한 것 같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트로트 콘서트 진행을 맡고 있다. 방송처럼 세련되진 못했지만 편안한 느낌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신도 가수인데 어떤 노래를 부르나?

=‘확인하고 싶어요’란 곡이다. 데뷔 앨범에 들어있었는데 제대로 홍보를 못해 요즘 열심히 부르고 있다. 남녀의 사랑을 다룬 곡인데 사람들이 가사가 너무 야하다고 난리다.

△‘트로트자나 콘서트’를 진행하며 느낀 점은?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인터넷의 위력을 새삼 알게 됐다는 것도 기쁨 중 하나다. 콘서트 동영상 반응이 좋다 보니, 솔직히 요즘엔 거리에서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방송의 ‘열린음악회’처럼 트로트자나 콘서트가 발전하는 것이다. 물론 그 때 MC도 나였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바라고 싶은 건 내 홈페이지(http://chilhn.netian.com)에 많이들 놀러오라는 것이다.







이형구 르포라이터 dicalazzi@empal.com


입력시간 : 2004-04-1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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