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추적] 호텔을 능가하는 모텔


불황은 숙박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심각한 운영란을 겪고 있는 숙박업계가 최는 갖가지 서비스로 손님 끌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여자 친구와 여관을 자주 이용한다는 P씨(27). 두 사람 모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 주말이면 가끔 모텔을 찾는다는 P씨는 “모텔 대실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지만 여친과 함께 골라 가는 재미도 솔솔하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주말에는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단다.

P씨는 여자친구와 함께 데이트를 즐기다 ‘그들만의 대화’를 나눌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날 따라 색다른 분위기를 찾고 싶었던 P씨는 문득 친구로부터 ‘추천’을 받은 장소를 생각해 내고 차머리를 돌렸다. 그가 찾은 곳은 서울 S동에 위치한 여관 밀집지역. 여관촌 입구에는 궁전모양, 산장모양 등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각 모텔의 주차장에는 은밀한 데이트를 즐기러 온 이들의 자가용으로 들어차 있었다.

P씨 커플은 화려하게 치장된 여관 건물을 느긋하게 구경했다. 모텔 밖에 내건 현수막에는 ‘최고급 욕조, 광케이블 인터넷, 디브이디 설치, 회전침대 완비’ 등의 문구가 쓰여 있었다. 어떤 곳은 최고급 실내디자인을 갖춘 방의 실내 사진을 내건 곳도 있었다.

고민하던 커플이 선택한 곳은 R모텔. 이 모텔은 동화속에나 나올 법한 유럽풍 궁전모양을 하고 있어 모양새부터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이 모텔은 주차장에서부터 철저하게 손님을 배려한 기색이 역력했다.

주차장은 각각 칸막이가 되어 있어 고객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은밀함을 보장하고, 입구도 들어가는 곳과 나가는 곳이 달라 서로 마주치는 일을 없앴다.

카운터로 간 그들은 또 한번 놀랐다. 동시에 즐거움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갖가지 테마별로 저마다 다르게 인테리어 된 방을 선택할 수 있게 방 내부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사진 속 방들은 일류 호텔 수준의 인테리어를 자랑하고 있었다.

방 열쇠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보니 복도에는 여러 대의 자판기가 설치되 있었다. 자판기에는 각종 자위기구에서부터 피임기구에 이르기까지 각종 성 보조 기구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이런 모텔의 분위기에 선남선녀는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도 하기 전에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방문을 여는 순간 두 사람은 마치 신혼여행이라도 온듯한 착각에 빠졌다. 욕실에는 대형 월풀 욕조는 물론 스팀사우나까지 갖추어져 있었고 침실은 그야말로 최고급 호텔을 무색케 할 정도로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P씨는 “화장대에는 러브젤과 콘돔 등도 놓여져 있어 숙박이라는 모텔의 고유기능에 대실 기능이 추가된 것이 아니라 100% 즐기기 위한 공간 제공을 목적으로 꾸며져 있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모텔업계의 손님 끌기 노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의 숙박업계는 동남아 등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속칭 ‘러브하우스’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또 회사원 K모씨(43)는 “아이들도 있고 해서 부부간에 분위기를 내는 게 쉽지 않아 요즘은 아내와 모텔을 가끔 이용한다”며 “시설도 깨끗하고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워 아내도 거부감을 갖지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주들은 그다지 즐겁지않은 분위기다. 영등포의 한 모텔 업주는 “몇 해 전부터 우후죽순격으로 모텔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생존경쟁이 치열해졌다”고 푸념하면서 “손님을 끌기 위해서는 시설비로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 대실료를 올릴 수도 없어 유지비 건지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마디로 손님들만 좋아진 셈이라는 것.

그러나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강남의 한 모텔 주인은 “최근 모텔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제, “철저하게 주고객의 목적에 맞게 변화하지 않고 고정된 이미지를 고수하면 고객으로 외면당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4개월 전 손님의 발길이 현저히 줄어 전업을 할까 생각했지만 곧 생각을 바꿔 과감하게 설비 투자를 하고 서비스를 개선해 다시 도전했다” 고 밝혔다.

최근에는 대형 스크린과 홈씨어터를 갖추고 3류 음란영화대신 최신 영화를 틀어주는가 하면 40~50대 커플을 위해 안마 기능을 갖춘 안락의자를 설치해 놓기도 한다. 또 노천탕과 야외테라스, 전용 식당과 로비의 작은 커피숍까지 갖춘 모텔도 속속 등장해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윤대영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 2004-04-16 16:52


윤대영 르포라이터 tavaris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