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되고 깨끗한 외모가 경쟁력이 된 시대강한 듯 예쁜 듯… 이미지 가꾸기에 적극적

'Metro - Sexual' 남자가 화장을 할 때…
세련되고 깨끗한 외모가 경쟁력이 된 시대
강한 듯 예쁜 듯… 이미지 가꾸기에 적극적


‘여자만 하얘지라는 법 있나요?’

지하철 벽에 걸린 한 화장품 회사의 광고 카피이다. 부러운 듯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는 여자들 가운데 미남 축구 선수가, 그야말로 티 없이 깨끗하고 하얀 피부를 자랑하고 있다. 아침마다 화장을 하는 남자, 아무리 시대가 변했지만 쉽게 상상할 수 있을까.

메트로폴리탄에 살면서 아름다워지기 위해 소비를 아끼지 않는 계층, 이들이 ‘메트로 섹슈얼’(Metro-Sexual)이다.

- 여성보다 더 적극적인 외모 치장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김모 씨는 회사 내에서도 ‘메트로 섹슈얼’로 통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비누가 아니라 클렌저로 세수를 하고, 면도 뒤에는 스킨, 로션뿐 아니라 모이스처라이징과 자외선 차단제도 바른다. 1주일에 2~3번 정도는 스크럽을 이용해 각질을 제거하고, 팩도 2회 한다. 주로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 상, 평소 검은 피부색으로 고민하던 그가 피부에 신경 쓰게 된 이유다.

화장하는 남자, 이제 더 이상 생소한 일이 아니다. 젊은 이미지, 세련되고 깨끗한 외모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화장하며 외모를 가꾸는 것, 더 이상 여성들의 일이 아니다. 예전에 남성들은 스킨, 로션이면 끝이었지만 이제는 화장품 회사들이 에센스, 각질 제거용 스크럽, 눈가에 바르는 아이크림 등 남성 전용 화장품을 속속 출시하는 추세다.

최신 유행의 산실,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를 걷다 보면, 꽃무늬 프린팅의 실크 셔츠 단추를 3개까지 풀어 헤치고 다니는 젊은 남자들을 심심찮게 본다. 귀 뚫은 귀걸이는 기본이고 삐죽삐죽 솟은 장발의 헤어 스타일과 츄리닝 풍의 원색의 바지 등 뒷모습만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피부 관리실과 미용실에 남자들이 드나드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햇빛에 노출되는 피부를 걱정하고 색색으로 물들인 염색 머리와 헤어 스타일에 공들이는 것이 어쩌면 여자들보다 더 적극적이다.

언제부턴가 이 시대의 트렌드로 등장한 ‘메트로 섹슈얼’

한동안 여성들의 이상형으로 인기를 끌었던 ‘꽃미남’이 한물 가고 예쁘장하면서도 강한 남성의 이미지를 풍기는 ‘메트로 섹슈얼’이 새롭게 부상하였다.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메트로 섹슈얼 스타들을 겨냥한 마케팅이 부상하면서 이를 선망하고 따라 하려는 젊은 남성들도 증가하고 있다. 패션, 뷰티, 헤어, 액세서리는 더 이상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들이 아침마다 화장하듯 메트로 섹슈얼은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올해 봄 패션 트렌드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더욱 여성스럽게, 남성 역시 여성스럽게!’ 가령, 한 남성이 하늘하늘한 소재의 꽃무늬 상의를 입었다고 해서 ‘여자 옷’ 입었다고 흉보는 것이 아니라, 멋 부릴 줄 알고 스타일 좋은 남성으로 인식하는 세상이다.

- 강한 남성상과 부드러운 이미지 결합

패션과 미용에 관심이 높은, 도회적이고도 섹시한 느낌의 남성. 이 시대, 새로운 남성성으로 ‘메트로 섹슈얼’이 출현한 것이다.

‘메트로 섹슈얼(Metro-Sexual)’은 도시를 뜻하는 ‘Metro’와 성적인 의미의 ‘Sexual’이 결합한 단어로, 섹시하고 도회적인 느낌의 남성이라는 뜻. 주로 얼굴과 몸매 관리에 적극적인 20대에서 30대 초반의 남성에 많다. 피부와 헤어 관리로 얼굴은 뽀얗고 예쁘장하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근육질로 탄탄하고 남성적이다. 이 용어는 1994년 영국 문화비평가 마크 심프슨이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기고한 글에서 처음 사용했다.

아름다움, 미(美)에 대한 기준이 시대마다 달라진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하지만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미용에 관한 방법들이 남성들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름다워지기 위한 욕망에 남녀 구분이 없어지고 있는 것. 따라서 남성들도 스킨 케어, 피트니스, 패션 등 자신을 돋보이고 아름다워지는 것에 구속 받지 않고, 떳떳하게 누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등장은 최근의 웰루킹족의 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또 남녀의 전통적 성 역할의 경계가 모호해 진 사회 현상에다,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약자로 인식되던 여성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현실도 한 몫 한다. 여성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가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이제 그들은 오히려 먼저 사랑하고 보호해 주고 싶어 한다. 따라서 메트로 섹슈얼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반응은 섹시와 세련, 그리고 보호본능으로 요약된다. ‘남자가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기 보다, 내가 먼저 그를 사랑하고 싶다’는 것이다.

- 여성성 숨기지 않는 새로운 남성상으로 부각

영국의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은 대표적인 메트로 섹슈얼. 그는 운동 선수로서 남성적인 면모를 갖춘 것은 물론, 귀걸이를 하고 헤어 스타일도 수시로 바꿀 뿐 아니라 매니큐어를 칠하고 다이아몬드도 좋아 한다. 이와 비슷한 경향을 띠는 국내의 대표적인 스타로는 가수 비와 탤런트 권상우를 들 수 있다.

가수 비는 고운 얼굴선, 수줍은 미소를 간직하면서 단단한 몸매와 파워풀한 춤으로 여성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권상우 역시 어눌하면서도 수줍은 미소년인 반면에 탄탄한 근육질 몸매와 귀여우면서도 감성적인 연기로 젊은 여성들 사이에 보호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 강한 남성성보다는, 보호본능을 자극하며 부드러운 이미지를 지닌, 이들의 모습에서 여성적인 취향을 느낄 수 있다.

요즘은 또 패션, 뷰티, 문화계 등에서도 유행 트렌드의 하나로, ‘메트로 섹슈얼’을 종종 이용한다. 마케팅 한 수단으로서 20, 30대 남성들의 주목을 끌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여자보다 더 매끈한 피부와 머릿결, 탄탄한 몸매에서 풍기는 새로운 남성의 이미지는 광고계에서도 새로운 트렌드로 각광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메트로 섹슈얼 경향을 두고 ‘자본주의가 새로운 소비 계층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문화’라 치부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외모나 패션 등에 무관심했던 남성들이 ‘메트로 섹슈얼’의 등장과 함께 적극적인 소비 층으로 부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안 남성들의 외모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가 금기를 깨고 드디어 발현된 지금이야말로 어찌 보면 진정한 남성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허주희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04-27 21:59


허주희 객원기자 cutyhe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