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업소 종사 '나가요 걸' '나가요 맨' 집단 거주, 낮밤 뒤바뀐 요지경 동네

[이색지대 르포] 걸과 맨의 특구 '나가요 촌'
유흥업소 종사 '나가요 걸' '나가요 맨' 집단 거주, 낮밤 뒤바뀐 요지경 동네

부의 상징인 강남의 한 가운데 그녀들만의 마을이 있다. 성인 나이트클럽 ‘돈텔마마’ 뒤 편, ‘뉴월드호텔‘ 건너편, 그리고 논현동 주택가 등지에 위치한 유독 원룸 오피스텔이 집중된 마을. 상가들 역시 미용실과 의상실, 세탁소가 밀집되어 있다.

낮에는 적막 같은 고요만 흐르는 이 마을은 오후 6시쯤부터 활기가 돌기 시작해 7시쯤이 되면 가장 바쁘다. 미장원마다 자신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는 여인들이 바쁘게 골목길을 오간다. 그리고 해가 기울며 다시 적막에 휩싸이는 이 마을은 새벽녘이 되어 다시 요란해 진다. 모범택시들이 한두 대씩 오가고 요란한 하이힐 소리가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른다. 이 여인들은 서울의 유흥 문화를 책임지는 ‘나가요 걸’들, 그리고 여기는 8등신의 미녀들이 몰려 살고 있는 서울의 또 다른 특구 ‘나가요 촌’이다.

그런데 ‘나가요 걸’만 살 것 같은 ‘나가요 촌’의 한 구석을 채우고 있는 남성들이 있다. 한국 유흥 문화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나가요 맨’들 역시 ‘나가요 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 역삼동 원룸 오피스텔에 둥지

성인사이트 A의 사무실이 위치한 곳은 예상외로 역삼동 나가요 촌이다. 계속된 불황으로 인해 양재동 사무실을 처분한 이 회사는 직원도 단 세 명으로 줄여 이곳 원룸 오피스텔에 둥지를 틀었다. 외부 손님을 사무실로 모시기가 불편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쾌적한 근무 여건이라는 게 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 대부분의 거주자가 여성들, 그것도 나가요 걸들인 이곳에 사무실을 차린 이들은 예상외로 이와 같은 소규모 벤처 사무실들이 이곳 원룸 오피스텔에 여러 개 있다고 설명한다.

나가요 촌에 자리 잡은 벤처 사무실의 남자 직원들. 하지만 이곳 직원들이 동네 편의점에서 우연히 만나 알고 지낸다는 이형주(28 가명) 씨는 더욱 놀라운 얘기를 전해줬다. “나와 같이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선수’(호스트를 칭하는 속칭)들도 상당수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이씨는 “나가요 촌에 나가요 걸이 살듯이 나가요 맨이 사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니냐”고 설명한다.

이씨는 선수 경력 3년차에 접어들고 있는 호스트로 이 곳 나가요 촌에서 살기 시작한지는 이제 1년이 되어간다. 이씨가 나가요 촌을 선호하는 이유는 우선 호스트바가 가깝고 애인이 부근에 살고 있기 때문. 애인 역시 나가요 걸인 이씨는 애인의 권유로 나가요 촌에 이사 오게 됐다.

“여기서 지내면서 나처럼 선수 생활을 하는 이들이 꽤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최근 불경기로 나가요 걸들이 많이 빠져나가 빈 방이 많고 월세도 많이 내려가는 추세라 최근 새로 이사 오는 선수들이 늘고 있다”고 얘기한다.

일반 남성 손님, 특히 접대 차원의 회사원을 많이 받는 나가요 걸들은 불황에 크게 흔들리지만 나가요 걸, 또는 부유한 여성을 상대로 하는 호스트바는 비교적 경기 영향이 적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 손님·접대부, 이웃으로 살기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나가요 촌에 기거하는 것을 꺼려한다. 그 이유는 손님으로 받은 이들이 주변에 이웃이 되는 것이 껄끄럽기 때문. 여성 고객을 상대하는 호스트바가 남성 고객을 상대로 하는 여타 유흥업소와 성격이 다른 탓이 크다. 손님 접대로 지친 나가요 걸들이 호스트바를 찾는 이유는 일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다. 그래서 선수와 여성 손님 사이에 철저한 상명 하복의 관계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씨는 “물론 매너 좋은 손님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변태적일 만큼 악질 손님들도 많다”며 “생각해 보라. 그런 손님을 동네에서 우연히 만날 경우 얼마나 서로 불편한 상황이 연출될지”라고 반문한다.

때문에 나가요 촌에 사는 선수들은 절대 손님들에게 자신이 여기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단골이 되고 2차를 나가는 과정을 거쳐 아무리 친해질 지라도 사는 곳은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이씨의 경우 애인은 예외다. 이씨는 자신의 경우처럼 선수와 나가요 걸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뜸해 줬다. 그런 이유로 나가요 촌에서 함께 동거를 했던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연결된 커플은 대부분 진정 사랑하는 연인이라기보다는 함께 즐기고 노는 관계에 가깝다. 이씨 역시 비슷한 경우이고 여茱?동거를 했다는 커플의 경우도 헤어진 뒤 나가요 촌을 떴다고 한다.

- 영업활동 수월한 지리적 조건

이씨의 소개로 만난 김명석(26 가명) 씨의 경우 호스트가 아닌 출장 마사지사다. 일반적인 여성 출장 마사지가 그렇듯이 김씨 역시 여성들을 상대로 한 마사지를 기본으로 매춘까지 겸하고 있다. 김씨가 나가요 촌에 둥지를 틀게 된 이유는 나름대로의 마케팅 활동(?)을 하던 도중 좋은 방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 김씨와 같이 남자 출장 마사지사의 경우 주로 나가요 촌의 편지함에 명함을 꼽아두는 방식으로 은밀한 마케팅 활동을 벌인다. 김씨는 “낮에는 광고 명함을 돌리기 위해 나가요 촌을 돌아다니고 새벽에는 호출을 받고 일을 가는 곳 역시 대부분 나가요 촌이다”며 “그렇게 나가요 촌을 자주 찾다 부동산 중개소에서 싼 값에 나온 방을 소개받아 이사 오게 됐다”고 귀띔했다.

김씨 역시 나가요 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손님들에게 얘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서 콜이 들어온 경우도 있었다는 김씨는 새벽에 일을 다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될까 조심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김씨가 나가요 촌에 살게 된 뒤 가장 좋은 일은 무엇일까. 우선 교통비 절감을 들었다. 주로 같은 동네 나가요 걸을 상대하다 보니 걸어서 이동할 수 있기 때문. 주로 새벽 3시 쯤부터 오전 7시 사이에 일을 다니는 김 씨 입장에서는 걸어서 일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이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가끔씩 게이들의 콜을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가요 촌을 전문으로 한 뒤에는 그런 경우도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한동안은 법적 남자 정체적 여성인 ‘트랜스 젠더’들도 역삼동 나가요 촌에 기거했었다. 지난해 역삼동 유흥가에 문을 연 한 트랜스 바에서 일하는 이들이 이곳을 주거지로 이용한 것이다. 물론 외견상으로는 여자이기 때문에 이를 모르고 지내던 이웃은 다른 나가요 걸과 별반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전 이 트랜스 바가 문을 닫으면서 이들 트랜스 젠더들도 대부분 나가요 촌을 떠났다고 한다.

황영석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 2004-05-19 20:26


황영석 르포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