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절절한 삶, 대박 이끄는 방향타영화제작의 보이지 않는 손 '영화 프로듀서'

[감성 25시] 안상율
영화같은 절절한 삶, 대박 이끄는 방향타
영화제작의 보이지 않는 손 '영화 프로듀서'


“ 가까운 미래에 남과 북이 통일됩니다. 그 전에 양쪽의 이념과 체제를 인정해 주는 가상 공간이 생기죠. 그 ‘ 특구’안에서 벌어지는 이념의 대립과 갈등을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되죠.”

최근 흥행에 성공한 ‘ 태극기 휘날리며’를 만들어낸 강제규 필름에서 2005년 개봉을 목표로 ‘ 쉬리2’를 만들고 있다. 대박을 터트렸던 국민 영화 ‘쉬리’를 기억할 것이다. 현재, ‘ 쉬리2’를 진행하고 있는 영화 프로듀서 안상율. “ 아직 공개되지 않은 ‘ 쉬리2’의 기본컨셉입니다.” 웃으며 말한다. “20대를 넘은 성인이라면 모두 알만한 영화는 제 손을 거쳐 만들어졌죠.” 알만한 영화? ‘ 영원한 제국과 (포르노)맨?’ 과 ‘ 코르셋’, ‘ 강원도의 힘’, ‘ 내츄럴 시티’. 이름만 던지면 모두 “ 아!” 하고, 정말 알만한 한국 영화다. 자연스레 감독의 이름과 배우들의 얼굴이 영상처럼 떠오르지, 영화 프로듀서까지는 글쎄….

영화 프로듀서하면 왠지 낯설게 들리는 이유는 무얼까? ‘ 쉬리’를 말하면 감독 강제규를 떠올리게 되고, 한석규와 최민식 같은 영화 배우가 스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테다. 방송국에서 프로듀서는 왠지 익숙해도, 영화의 프로듀서는 도통 잘 모르겠다. 모두 감독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거 아냐? 라며, 모르는 게 힘인 것 마냥 용기 있게 말할지도.

- 성공여부 결정하는 매니저 역할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보이지 않은 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영화 프로듀서다. “ 쉽게 말하자면 식당을 예로 들 수 있죠. 동네의 자그마한 식당의 경우, 주인 아주머니가 메뉴를 정하고 그에 따른 장을 보고 음식을 내놓으면, 손님들이 와서 먹게 되죠. 중요한 것은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일 겁니다. 이때 아주머니는 제작자이며, 프로듀서고 또한 동시에 감독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겠다 싶다.

“ 그런 반면에 제법 규모가 큰 식당이라면, 주인은 카운터에 앉아 있을 것이고, 주방장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 것이며, 홀을 담당하는 매니저가 있을 겁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 매니저에 해당하는 일이죠.” 정말 쉽고 명료한 설명이다.

안상율 프로듀서의 역할은 바로 커다란 식당에서 매니저 역할과 같다. 손님들의 취향을 파악하듯, 관객의 취향을 알아야 하고,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구조로 내부 인테리어를 바꿀 것을 제안하기도 할 것이다. 주방장의 장점을 파악해서 새로운 메뉴를 추가하듯, 감독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고, 투자자와 감독을 어울리게 하고, 관객을 만나게 함으로써 영화를 성공시키는 것이 바로 영화 프로듀서의 임무다.

“ 힘든 것은 손님의 취향이 나날이 바뀌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문적인 프로듀서가 더욱 절실히 필요할 때입니다. 주인도 아니면서 주인 역할을 하고 손님도 아니면서 손님의 위치에 서 있어야 하는 가내 수공업 같은 영화에서는 필요 없겠지만, 산업화되는 이 시점에서 프로듀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죠.”

영화 프로듀서가 되면서 그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친한 사람들이 무심결에 던지는 말 한마디였다. “ 처음으로 영화에 발을 들여 놓아서 프로듀서와 관련된 업무를 시작했을 때 나에게 가장 많은 실망과 비난을 한 사람은 부모님도 친구들도 아니었어요. 공교롭게도 영화를 한다는 선배들과 후배들이었죠. 다들 전공인 연출부를 해서 왜 감독이 되지 않냐고 물었죠.”

지금은 극장에 가면 볼만한 영화는 한국 영화뿐이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 영화는 ‘ 방화’라고 불릴 정도로 극장에서 외톨이 취급 받던 때였다. 충무로에서 영화 감독을 하면 폼이라도 나던 때였다. 하지만 제작부에서 프로듀서 일을 한다면 ‘ 삥땅’ 이나 ‘ 시다바리’처럼 부정적 이미지도 상당히 많을 때, 감독이 영화의 모든 것으로 인식되던 때였으니까.

- 영화판에 뛰어들게 한 감동의 영화

안상율, 그는 아주 우연한 사건으로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서부 영화 ‘ 셰인’을 보는 중이었다. 갑자기 울려 퍼지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자그마한 읍뺐?흔들릴 정도였는데, 혼란한 분위기가 엄습해 오자 영화를 보던 그도 바깥으로 뛰어 나가 불구경을 하였다. 그때, 그의 눈앞에서 폭죽이 터지듯 화염 속의 페인트통들이 요란한 굉음을 내는 광경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어른들은 모두 불을 끄느라 난리법석인 와중에 어린 그만이 멍하니 불타는 페인트 공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시간?정지된 듯 그는 꼼짝도 않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해질 무렵 셰인이 부상당한 체 마을을 떠나고, 어린 조이가 셰인을 애절하게 부르는 인상깊은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불구경을 했을 때처럼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게 된 그. 조금 큰 후, 시험 공부를 하지 않아 극도의 불안에 떨면서 본 영화, ‘ 기적’은 현실적인 공포와 불안을 잊게 해주었다. 언덕에서 영국군 장교와 수녀의 키스 장면에 넋을 빼앗겼고, 바람에 수녀의 두건이 벗겨져 나무에서 격렬하게 흔들리는 장면은 지금까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두 영화에 대한 감동의 물결은 너무도 강렬해, 그를 고민 없이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게 했다. 우연하고도 사소한 기억이 현재 그가 영화판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된다.

“ ‘ 영원한 제국’이란 영화를 할 때였죠. 촬영 중 배우가 갑자기 사라진 거예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진 배우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그 날 촬영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휴대 전화가 보급되기 전이었거든요. 밤늦게 연락이 되어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그 분은 대뜸 화를 내는 거예요. 나 빼놓고 다들 식사하러 가면 어떡하냐고…. 그 분은 촬영이 끝나고, 자신의 차에서 옷을 덮고 잠을 잤는데, 스탭들은 의상인 줄 알고 그분을 찾아다닌 거죠. 오랜 연기경력을 가진 분이었지만, 지나친 권위의식에 기가 차기도 했어요. 그 후로 촬영현장 습관 중에 하나가 생겼는데, 비중이 크지 않은 배우와 스탭을 챙기는 버릇이죠.”

주로 제작부 일을 하다보니, 영화에 관련된 에피소드도 무궁무진하다. ‘ 강원도의 힘’을 찍을 때는 숙소가 모닝콜이 되지 않아, 동쪽에 차를 대고 차안에서 잠을 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고, ‘ (포르노) 맨?’ 을 찍을 때는 호주에 보름 예정으로 갔다가 늦어지는 바람에 그만 식사를 담당하는 아주머니가 설 연휴를 챙긴다고 휙 떠나 버린 사건. 할 수 없이 손수 스탭들의 식사까지 챙길 수밖에 없었던 일들. ‘ 내츄럴 시티’ 때는 부산 앞 바다의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세트를 옮기던 과정….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이 영화를 찍으면서 일어났고, 이젠 추억이 되었다 한다.

- 인간적으로 성숙해진 10년

“ 어찌 보면 스크린 속 인생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우연이 영화보다 기막히고 절절할지 몰라요. 프로듀서 일을 하면서 직접 부딪치다 보니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배우게 되었죠. 점점 넓어진다고 할까요?”스탭들 하나하나를 아버지처럼 또는 형처럼 챙겨가며, 영화판에 뛰어든 지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 자연스럽게 생긴 새치는 그를 더욱 인간적인 프로듀서로 보이게 했다.

‘ 쉬리2’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물어본다. “ 2005년 개봉될 예정이구요. ‘ 베사메무쵸’의 전윤수 감독이 맡았어요. 분명한 건 ‘ 쉬리2’를 기획해 온 지난 2년보다 더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거죠.”

우리가 극장에서 만나는 영화는 완성도, 수익구조에 대한 검토, 투자유치, 캐스팅 그리고 영화적 가치를 고려하는 1~2년의 기획 단계를 거쳐온 것이다. 그 속에 프로듀서가 있고 여러 스탭들이 존재한다. 영화의 엔딩 뒤에 오랜 기간 노고를 아끼지 않은 스탭들의 이름이 천천히 올라갈 때 우리는 맘속으로 그들에게 박수를 쳐야할지도!

“단품종, 단기간, 대량 소비라는 속성을 지닌 극장이라는 하드웨어와 감독이라는 소프트웨어 사이에 존재하는 프로듀서의 역할은 앞으로 점점 그 중요성이 강조될 것입니다. 희노애락 이라는 직업병에 시달리겠지만 언젠가는 한국 산업의 10대 과제에 한국 영화가 들어가기를 바라는 맘입니다. 그 곳에 저, 안상율이 있을 겁니다.” 오늘따라 안상율 프로듀서의 머리색이 은빛으로 빛나 보였다. ‘ 쉬리2’가 안전하게 우리에게 배달되기를 기대하며….

유혜성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5-25 21:39


유혜성 자유기고가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