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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25시] 김영민
순수와 광기의 두 얼굴 햄릿, 다시 태어나다
연극열전 여섯번째 작품 < 햄릿 >서 강렬한 연기로 주목


오늘 난 덴마크의 왕자를 만났다. 그는 고운 피부에 앳띤 얼굴을 하고 있어, 아직 미성년자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사느냐, 죽느냐,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문제로 갈등하던 이 왕자는 연습 중에도, 심오한 얼굴을 하고 있어, 세상의 짐은 혼자서 짊어진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덴마크 왕자의 이름은, 바로 햄릿이다.

왕자 역에 푹 빠져, 햄릿 왕자로 불리는 것이 스스로도 어색하지 않은 그는 배우 김영민이다. 연극열전의 여섯 번째 작품, 햄릿으로 김영민이 캐스팅 되었을 때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김동원, 유인촌, 김석훈처럼 최고 연극 배우들의 뒤를 이어 햄릿 역을 맡는다는 것은 모험과도 같은 일이니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다는 충고와, 햄릿 역에 김영민 만한 배우가 어디 있겠냐는 격려였다. 하느냐, 마느냐, 두 가지로 고민하던 김영민은 귀여움 속에 숨겨진 카리스마와 부드러움 속에 비치는 섬뜩한 광기로, 햄릿 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 사춘기 소년 같은 34살의 동안

그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사춘기 소년 같았다. 이렇게 말해 놓고도 놀라운 건, 나이가 올해로 34살이라는 거다. 동안의 시대다!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간혹 얼굴을 보였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 서울 YMCA의 연극 연합 써클 SCENE(씬)에서의 활동까지 친다면 배우 경력 십 오년이 넘는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본 사람은 김영민을 기억할 것이다. ‘ 수취인 불명’(2001)의 지흠을. 너무 투명하고 순수해 금세라도 타락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했던 청년을. 그런 지흠의 이미지를 김영민에게서 보았던 탓일까. 그는 2000년 ‘ 사상 최대의 오디션' 에서 무려 1,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김기덕의 눈에 캐스팅 됐다. 김기덕 감독이 준비 중인 수취인 불명의 지흠 역 - 나약한 청년이 세상의 폭력으로 광포한 성격을 가지게 되는 캐릭터 - 에 그는 딱 들어 맞았다. 그 후 김기덕 감독은 사계(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가을의 청년 역에 김영민을 불렀다. 한층 성숙해진 그는 사랑의 배신으로 상처 입은 청년이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는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영화 속에서 김영민은 놀라울 만치, 스크린 밖의 얼굴을 다 지워버리는, 무서운 배우다. 그는 실제로 포악한 사내 같았다.

“ 김기덕 감독님과 촬영하는 거,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어요. ‘ 수취인 불명’은 저에게 첨하는 영화였고, 저는 으레 모든 영화들은 이렇게 찍는구나 싶었죠. 질문의 의미를 한참 후에 알았지만, 연극 연습으로 오랜 세월 단련되어서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죠. 고생하는게 저에겐 익숙한가 봐요.”

김영하의 소설을 영화화 한 전수일 감독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2003)에서는 총알 택시 운전사 역을 맡았다. “ 영화에서 배드신이 있었어요. 상대 배우가 힘들지 않게 하려고 한번에 끝내려 했는데, 계속 NG가 나서 어찌나 민망하던지….” 얼굴이 붉어지는 그. 계속 엔지를 낸 것은 ‘ 쁘아종’ 과 ‘ 욕망’ 으로 잘 알려진 배우 수아 란다. 그녀는 과감한 베드 신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경력이 있는데, 왜 그랬을까요? 물으니 그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그리고 말을 돌린다. “자살 안내인으로 나오는 정보석 선배님이 저를 보고 그러더라구요. 젊은 시절 나를 보는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선배의 얼굴을 보니까, 우린 정말 닮았더라구요.” 이것은 분명 자랑이다. 꽃미남인 두 배우가 서로를 바라보며 거울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다니. “ 십년 후의 나를 만났을 때, 그분이 정보석 선배라면, 전 성공한거죠.” 둘 사이의 유대관계는 영화를 찍으면서 시작됐고, 지금도 형, 아우 하는 사이라고. 정보석은 귀여운 동생을 둔 셈이다.


- 식지않은 열정, 흔들림없는 초심



생각이 많은 배우는 힘들다. 어떤 역이든, 그 역에 빨리 몰입하고, 흡수하려면, 단순해야 유리하다. 김영민이 그렇다. 그는 복잡하지 않다.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일단 받아들이고 본다. 그리고 연습한다. 그것도 성실하게. 하루에 열개의 씬을 넘게 찍는 김기덕 감독의 스타일이 그에게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영화뿐만이 아니다. 연극 ‘ 햄릿’을 공연할 때도 그는 주연으로, 잠시 우쭐할 수 있었을 텐데 언제나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남들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나와 연습을 했다 하니 알만하다.

햄릿이 나오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의 역할은 컸고 남들보다 대사도 많았다. 그래선지 살집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깡말랐고, 炷?많이 쉬었다. 성실한 연습의 결과는 역시나, 달았다. ‘ 김영민표 햄릿’은 달랐다.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 고민하는 배부른 소리, 생과 죽음을 갈등하는 우유부단한 햄릿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고민할 수 있는 언어로, ‘내가 햄릿이어도 저랬을거야’ 라는 공감을 이끌어 내는 인간적인 햄릿으로 재탄생했다. 그래선지 막이 내리고 꽉 찬 객석의 끊임없는 박수소리는 공감의 언어로 바뀌었다.

“연극이 끝나면, 텅 빈 객석을 바라봐요. 나를 지켜 본 사람들의 자리를. 이제는 빠져 나가 썰렁한 그곳을.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면, 처음 연극했을 때의 무대가 떠오르고, 무명 시절에 가슴에 품었던 열정과 순수를 떠올리죠. 그때의 자세를 지키겠노라고, 텅 빈 무대를 향해, 말합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그래선지 메아리처럼 들렸다.



유혜성 cometyou@hanmail.net


입력시간 : 2004-06-0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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