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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시인 문혜진
치열한 詩語로 세상과 접속
냉소적 진실로 독자 매료시키는 옹골찬 신세대 시인


아슬아슬 열린 문틈을 통해 바깥 세상을 빼끔 내다보는 소녀의 시선일까. ‘나의 아이디는 뭉게구름/나의 패스워드도 뭉게구름/오늘 난 여름 하늘로/내 뭉게구름에 e - mail을 보낸다’(뭉게구름). 그러나 알고 보니, 그 까만 눈망울은 이미 달의 이면(裏面)을 보았던 터다. ‘내 헐거운 순면 티 셔츠를 뜯어 먹고 실크 브래지어까지 찢은 뒤 뭉클한 눈빛으로 우걱우걱 삼킬 듯 젖을 빨고 또 빨아댔다’(젖무덤). 소녀와 여인 사이의, 그 화해하지 못 한 이물감이 즙 많은 과육처럼 다가오는 그의 시.

신축 아파트 단지의 깨끗한 미끄럼틀이 내려다 보이는 처소에서 재즈가 낮게 흐르고 있었다. 마침 휴일(석가탄신일)이라 남편까지 집에 있었다. 공교롭게도 구름이 낮게 깔린 터라 외출 같은 것은 삼가야 겠지만, 그래도 좋다. 하루 종일 남편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생의 디테일이 더 좋을 것이므로. 문혜진(29).



- 톡톡튀는 언어로 주목



요즘 젊은 세대의 감성과 사랑법을 톡톡 튀는 언어들로 건져 올린 그의 시집 ‘ 질 나쁜 연애’가 주목 받고 있다. 아직 서른도 채 안 된 나이에 첫 시집을 민음사 같은 한국의 메이저 출판사에서 냈다는 사실도 주목의 이유로 한몫 단단히 할 터이다. 그러나 책갈피마다 톡톡 튀어 오르는 그의 언어는 본인의 표현을 따르면 한 마리의 딴딴하게 독 오른 뱀이 돼 독자를 흡인한다. 서정주라면 화사(花蛇)라고 표현했을 법하다. 대입 이후 8년 동안 쓴 시에서 건져 올린 고갱이다.

‘쓸쓸한 불량 소녀의 냉소적인 웃음.’첫 시집에 대한 총평이다. 그녀가 세상과 접선하는 방식이 냉소라면, 그 냉소는 안으로 삭혀진 냉소다. 그것은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제니스 조플린의 머리카락 같은/구름의 일요일을 베고/그의 검고 단단한 등에/얼굴을 묻을 거야’(‘질 나쁜 연애’ 중)같은 싯구가 문득 상기시키는 1960년대식 이지라이더(easy-rider)적, 혹은 1990년대식 홍콩 느와르적 이미지들을 관통하여 그가 구현해 보이는 것은 탈각(脫殼), 즉 허물 벗기에 가깝지 않을까. 위악적 진실.

최근 칸을 흔든 박찬욱 감독의 영화론은 이렇다. ‘ 좋은 영화란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 주고 나의 사고 방식을 변화시키는 영화’라는 것. 비슷한 논법으로 문혜진의 시들은 타락한 세상에 대해 타락한 방법으로 구원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우리의 뒷편으로 피 냄새를 풍기며/귀를 막 빠르게 지나갔’(‘슬픈 열대’ 중)으니까. 이렇듯 역사의 폭력과 위선을 일찌감치 알아 버린 그의 작품 전편에 걸쳐 흐르는 서정의 이면에 묘하게 냉소가 감도는 이유다.

드문드문 발각되는 성적 이미지, 예를 들어 ‘ 빳빳이 성난 젖무덤’(‘ 젖무덤’에서)이나 ‘내 허벅지를 즉흥 연주하던 당신의 손’(‘ 봄 밤의 즉흥 연주’에서)` 같은 표현에서는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동시대적 감성을 감각적 언어로 치환해 내는 그의 언어는 더 이상을, 이를테면 장정일이나 최영미 같은 작가가 능숙한 수법으로 녹여 내는 하드 코어적인 정황에까지는 가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 그래서 치명적이지 않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피나는 이십대의 처절하고 아프고, 그래서 소중한 기록들”, “배가 아파서 출산한 시집”이라는.


- 예술소비자와 생산자의 운명적 만남

간단 없이 재즈의 선율이 흘렀고, 그 위로 정교한 모빌 작품이 아파트 공간을 시원스레 휘젓고 있었다. “파리에 같이 가서 사 온 거죠.” 남편 조지윤(30ㆍ호암미술관 학예연구원)은 “파리병(病)을 앓고 있던 아내를 위해 신혼 여행차 갔던 그곳에서 샀던 기념품”이라고 말했다. “맨 처음 소개팅으로 만났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두웠어요.”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문혜진과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출신의 조지윤은 그렇게 만났다. 남편은 아내가 될 여자의 우울한 스타일이, 특히 예술을 한다는 사실이 좋았다. “예술 소비자로서, 예술 생산자에 대해 갖고 있던 열등감의 표현이었을까요.” 거의 운명적인 만남.

그러나 이 예술 생산자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거칠다. 대중 문화, 더 정확히는 팝의 감성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룹 U2의 보노(‘3㎝의 우울’), 존 레논(‘ 아이스크림’), 너바나(‘채셔 고양이도 눈물을 흘릴까’), 에미넴(‘문신’) 등 시대를 풍미한 팝 스타들이 시의 재료로 천연덕스레 등장한다. 러미라나 분홍약 등 청소년 환각제도 혀에 피어싱 하는 소녀들에 뒤섞여 나타난다. ‘교복 입은 전인권과/자갈 언덕 위에서 섹스하는’(‘문신’) 꿈은 영화 ‘가위손’의 주인공인 에드워드의 환상과 교차하기도 한다(‘여름에도 눈을 뿌려줘’).

팝 문화의 세례를 듬뿍 받았다는 사실은 그가 갖고 있는 감성의 동시대성을 강력 입증한다. 96학번(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인 그녀에게는 수업 마친 후의 또 다른 일상이 있었다. “적어도 1주일에 두 번은 학교 끝나면 ‘언더그라운드’, ‘MI’, ‘도어스’ 등 홍대 일대의 록 클럽을 찾았죠. 5,000원에 밤새도록 맨발로 춤출 수 있던 곳이었죠. 2000년 이후 상업화의 습격을 받기 이전, 록의 순수성이 살아 있던 때.”

테크노나 힙합 , 상업화의 습격을 받기 이전의 클럽 문화를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같은 경험에서 자본주의의 허망함을 읽었다면, 그를 보다 근원적으로 규정짓는 어떤 상처가 그의 시 전편을 통해 읽힌다. “ 인식론적 단절감이요? 그런 게 분명 있었죠. 서울로 올라오고 난 뒤었어요.”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그것은 육체의 속성에 대해 눈뜬 사춘기적 경험이었다.

새를 특히 좋아하는 그의 부친은 소도시 김천의 집 방이나 창고에 온갖 조류를 다 키웠다. 문조 잉꼬 십자매 호금조 모란앵무 등이 200쌍도 넘었다고. 어릴 때는 거위를 타고 놀기도 했으나, 어느 날 그것이 고기로 변해 밥상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그 같은 포식 – 비포식의 법칙이 결국 세상을 작동하는 원리라는 이치를 깨닫게 됐다. 그러나 삶의 진실이고 생명의 역설이라는 깨달음은 그가 진학을 위해 서울로 거처를 옮기면서 더욱 깊어졌다. 그와 함께 건강은 나빠져 갔다. “뭣보다 육체적으로 많이 힘 들었어요. 청와대 옆에 살았었는데, 그 동네의 풍경처럼 고착돼 있었던 전경들의 방패를 쳐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가라 앉히는 것도 고역이었죠. 또 채 내리기도 전에 움직이는 버스 같은 것들….”



이제는 도시의 일상에 내재된 폭력성과 불평등이 그의 그물망에 포착되고 있다. “ 지금 사는 이 곳 봉천동에는 가난한 사람들, 특히 노점상이 많아 힘들어요.” 유복한 신축 아파트들과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이 한 데 어우러진 풍경이 묘한 기분을 불러 일으키는 곳이다. 정신적 고통이 육체의 괴로움으로 이입된다는 것은 이미 어린 시절 체감했던 바다.

그런데 이제는 그 아픔을 구체화시킬 수단을 얻었다. 언어는 영원한 동반자다. “산타나(기타리스트)의 ‘마리아’란 곡이 있죠. 도시의 빈자를 수난 받는 성모 마리아에 비긴 곡인데, 요즘 부쩍 많이 들어요.” 그들의 고통을 시로 쓰겠다는 얘긴데?

“그렇지만 계급적 시각으로 그려내는 것은 제 스타일이 아녜요. 제 작품에서 보이는 직설적 어투는 사회적 갈등이 아니라, 미적 쾌감을 위한 거니까요.” 질펀한 삶의 이야기, 사회적 이슈, 담론처럼 무거운 얘기를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것. “개인적인 것이 곧 사회적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은거죠.”


- 깊어지고 싶은 욕망 아닌 욕망

이제 막 한 고비를 넘긴 시인은 “깊어지고 싶다”고 했다. 그이가 말하는 깊어짐이란 이런 것이다. ‘어두운 떨림처럼 유리를 치고 달아나는 로랜드 고릴라/시멘트 바닥에 앉아 식빵을 먹는다.’ 문학사상 6월호에 발표될 신작 ‘슬픈 동물원’이다. “폭력성과 야만성이 가득한 도시에서 살아 남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의 상황은 곧 제 이야기예요. 도시에서 상처 받은 제 모습이죠.”

자기 인식의 확장이 곧 시대의 반영이라는 견고한 자기 인식이다. 그가 시인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것은 시적 진실(poetic truth)이다. 예를 들면 2003년 10월 쌈지 스페이스에서 있었던 ‘젊은 시인 – 읽기의 방식전(展)’이 그것이다.

함성호 차창룡 등 동년배 비디오 아티스트나 시인들과 홍대역, 동대문시장, 인사동 등지를 돌며 벌였던 해프닝이었다. 배낭대신 배터리로 작동하는 모니터를 등에 지고 도시의 인파를 비집고 천연덕스럽게 돌아 다녔다. 당시 모니터에 찍혀 나오던 글들이 바로 문혜진의 싯구였다. 이를테면 ‘당신 안의 깊은 우물을/바닥째 드러내 보이세요’ 등. “민망스럽기?했지만 그런 낯선 상황을 만들어, 시가 없어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요.” 당시 그는 배낭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시민들의 반응을 세세히 지켜 보았다.

아니, 그보다도 자신이 그 해프닝의 일부로서 시민들 앞에서 자신의 작품들과 함께 ‘ 이동 전시’됐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 않을까? 당시의 정황은 이번 시집에서, ‘심리 치료’라는 제목 아래 당시 사진과 함께 세쪽에 걸쳐 게재돼 있다.

도시의 일상을 단칼에 반성케 하는 선적(禪的)인 액션. 그 날의 해프닝은 곧 그의 시, 그의 미래였다.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옹골차게 문혜진이 세상 앞으로 나선 것이다.



정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4-06-0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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