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도 8할은 바람"일년의 절반은 여행, 나머지 기간은 여행준비

민병규, 안진헌, 최은단, 이가아
여행작가 4人의 '길 위의 인생'

"우리 삶도 8할은 바람"
일년의 절반은 여행, 나머지 기간은 여행준비


연일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후텁지근한 오후, 자꾸 짜증이 솟는다. 고만고만한 내 인생이 후줄그레한 와이셔츠 같기도 하고. 그 때, 눈에 띄는 여행 정보가 남의 이야기만 같다. ‘ 마음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새파란 바다, 그 위에 에메랄드빛 하늘. 그리고 그 끝에 나….’ 잠시 눈 감고 상상 한다. 여행이 내 직업이라면?

그들에게서는 바람의 냄새가 난다. 일년에 절반은 길 위에서 보낸다는 여행 작가들. 여행하지 않는 기간은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인 사람들. 민병규(33ㆍ‘트래블 게릴라’ 과장), 안진헌(33ㆍ‘동남아 100배 즐기기’ 작가), 최은단(30ㆍ ‘ 헬로, 시리즈 호주’ 작가), 이가아(25ㆍ‘헬로 유럽’ 작가) 씨를 만나 그들의 여행법을 들어 보았다. 여행, 그것은 곧 인생이었다


* 숱한 어려움 속에서의 행복찾기

-여행지에서 별별 일도 다 겪었겠다.

안:이스탄불을 여행할 때였다. 강가에서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는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그게 그들의 시나리오다. 그런 경우 세 시간 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건네는 콜라를 마시고 쓰러져 간신히 깨어나보니 남은 건 옷뿐이더라. 정말 재수 좋게도 여행 끝내고 돌아 가려는 한국 사람을 만나 간신히 왔다.

민: 2001년 인도의 서북쪽, 파키스탄과 국경 분쟁이 끊이지 않는 데 가서 진짜 전투와 부딪쳤다. 공포로 심장이 터질 정도였다. 시체들과 함께 있다가 군인에게 구조됐다.

이: 역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누누이 말하는데, 사실 나도 당했다. 어떤 남자가 유독 무거웠던 내 짐을 들어 주겠다고 하더라. 갑자기 나를 에워 싸는 어떤 사람들에게 사진, 카메라, 돈 따위를 넣어 놓은 트렁크를 몽땅 뺐겼다. 경찰서 가서 울면서 조서 썼다.

-그래도 취재한 자료 안 잃어버린 게 어딘가.

안:무거운 짐을 들고 최선의 태양 광선을 기다려 사진 한 컷 찍는다. 비닐로 된 싸구려 가방에 현지에서 산 잡지, 음식점 메뉴, 명함, 브로셔, 지도 등 10㎏ 이상인 데다, 지고 다니는 배낭은 6kg정도인데 역시 카메라가 제일 중요하다. 청소 아주머니가 쓰레기통에 쳐 넣는 바람에 쓰레기를 다 뒤져 찾아낸 적도 있었다.

-직업적으로 여행한다는 것의 의미는?

최: 귀찮은 일들이 너무 많다. 아프리카에서는 공항 세관들이 뇌물 안 주면 짐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 곧 비행기는 뜨고 사람들은 밀리는데 “ 100달러 달라”며 은근히 요구하는 직원은 참 성가셨다. 들은대로 가방 한켠에 돈을 놓지 않을 수 없었다.

안: 7시 출발이면 가이드는 5시부터 일어나서 준비해야 한다. 출발 전에 방값 내고, 공항 가면 자리 확인하고, 짐 몇 개 있나 확인하고, 입출국 카드 써주고, 숫자 세고…. 아무 것도 제대로 안 된다. 사람도, 기차도, 비행기도, 버스도 안 온다. 그럴 때는 화내는 사람이 바보다. 그냥 그러려니 넘겨야지.

이: 나는 취미로 여행을 하다, 대학 4학년 때 가이드북 필자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해 결국 여행작가가 됐다. 여행 경비 밖에 안 나오는 보수지만, 취미(여행)와 특기(글쓰기)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이 일에 행복을 느낀다.

최: 솔직히 집에서 밥 먹여 주니까 여행 작가 했다. 힘든데도 가이드북을 쓰고 싶었던 건 기존에 나와있던 책들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자세하고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가이드북,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트래블 팁을 써서 누군가에게 길잡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 여행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알아야

-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해 줄 조언이 있다면.

최: 턱없이 무례한 사람들은 정말 곤란하다. 청소를 하나 안 하나 본다고 종이를 쫙쫙 찢어서 바닥에 뿌려 놓고는 나중에 그거 안 치웠다고 청소 안 했다고 펄펄 뛰던 환갑이 된 아주머니가 있었다. 왜 창피를 모르는지.

안: 얼굴 하얗고 잘 사는 나라 가면 괜히 기죽는 사람들이 안쓰럽다. 그런 사람들이 못 살고 시커먼 나라 가면 괜히 힘 준다. 순박한 그들의 행복을 봐야 하는거다.

이: 유럽 여행의 경우 남들 가는 데는 다 좋은 줄 알고 남들이 안 가면 안 좋은 줄 안다. 그러나 어떤 곳이 좋은지는 본인이 직접 그 곳을 가봐야만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관이 없는 여행은 안 하느니만 못 하다. .

민: 요즘 너무 쉽고 편하게만 여행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을 많이 본다. 최소한 자신이 갈 곳에 대한 사전 정보와 그 나라 문화 등 기본적인 것은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 가슴 뜨거워지는 느낌으로 돌아 오려면.

-유럽 최고의 코스라면?.

이: 빠리에서 TGV타고 렌느로 간다. 거기서 버스로 갈아타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몽생미셸에 도착한다. 바닷가 한 가운데 암벽이 있고 그 위에 우뚝 솟은 수도원이 장관이다. 다시 렌느로 돌아가 기차를 타면 생말로라는 자그마한 항구도시에 도착하는데 매일 아침부터 이른 오후까지 썰물 때는 바닷길이 열려서 주변의 작은 바위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 신비롭고 평화로운 곳이다. 사과 반쪽에 초콜릿을 넣고 구워낸 특이한 애플 파이도 놓치면 후회한다.


* 인도ㆍ티베트 등은 가슴벅찬 여행지

-잘 사는 데가 여행에 좋다는 말인가?

민: 아니다. 인도의 모든 것을 추천한다. 인생은 다양하다. 학교 나와서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다가 은퇴하는 우리 인생이 전부가 아니다. 빨래하는 집에서 태어나 학교도 못 가고 한평생 빨래하는 인생도 있고. 반면에 한평생 흙을 안 밟고 카페트나 밟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 한 번 신은 신발 두 번 다시 안 신는 인생도 있고. 또 인도에 가면 한국의 모든 습성에서 자유로워진다. 한국에서 이불을 두르고 돌아다니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겠지만 인도에서는 그렇지 않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한다.

안: 티베트에 많이들 가보셨으면 좋겠다. 자신들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도 망명갔고, 독립의 희망은 별로 없고, 산소도 부족한데 먹지도 못하고 그런데도 행복하게 산다. 그 사람들의 생활 자체가 종교의 실현이다. 무슨 삼보일배? 티베트 사람들이 하는 오체투지는 상상 이상이다. 한 걸음 걷고 조아리고 절 하고. 일생에 한 번,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산 넘고 물 건너며 오체투지로 그 나라의 가장 심장에 속하는 사원으로 간다. 그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만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은 막막할 정도로 파랗다. 보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다.

-최: 탄자니아에 있는 섬, 잔지바가 최고다. 깨끗하고 때묻지 않은 자연과 함께 독특한 아랍과 아프리카 문화의 조화를 볼 수 있다. 인도양에 있는 페르시아, 오만 등과 연결되는 거점 도시인데 그 섬을 거쳐서 수출되는 노예가 몇 만 명씩 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느리고 예상치 못할 사고가 늘 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답답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신기하다, 그 사람들이 보고 싶어진다. 막 화를 내고 그러다가도 한 번 웃으면 스르륵 풀린다. 내가 언제 자기들 친구였다고(웃음) “라삐끼, 라삐끼” 부른다. (라삐끼는 친구라는 뜻) 길 가면서 손 한 번 치면 벌써 친구가 되는 거다.

박소현 인턴 기자


입력시간 : 2004-06-16 11:11


박소현 인턴 기자 pest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