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압구정동 등 강남 일대에 일본 가라오케 정착

[이색지대 르포] 한국 속 작은 일본세상
신사동·압구정동 등 강남 일대에 일본 가라오케 정착

한국이지만 한국이 아닌 공간. 이태원으로 대변되는 외국인 대상 유흥업소들은 한국 속의 외인 공간으로 그 자리를 확보해 왔다. 하지만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용산 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확정되면서 이태원은 다시 한국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뒤바뀌어갈 예정이다.

그렇다고 이태원의 몰락을 단순히 미군 재배치 때문으로 보기는 힘들다. 외국인의 경우 이태원이 아니면 갈 곳이 적절치 않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그들을 위한 유흥업소들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다양하게 형성된 것이 더욱 결정적인 요인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일본인을 상대로 한 가라오케다.

이태원 부근인 한남동과 동부 이촌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온 일본인 손님 전문 가라오케가 최근에는 강남 중심가인 신사동까지 진출하고 있다. 한국식 가라오케와는 전혀 다른 일본 정통 가라오케가 어느새 한국 유흥 문화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 일본인 손님이 많이 들기로 유명한 신사동 D 가라오케를 찾아 그들만의 유흥 문화를 만나 보도록 한다.

- 룸 아닌 개방형 홀 문화

강남구 신사동 D 가라오케. 골목에 위치한 D 가라오케는 소위 일본인 손님을 전문으로 하는 유흥 주점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손님이 일본인이고 가끔 오는 한국인 역시 일본인과 함께 오는 몇몇에 불과하다. 웨이터와 접대 여성은 한국인이지만 이들 역시 일본어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에 문 열고 들어서면 과연 여기가 한국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지하 1층에 위치한 D 가라오케는 내부 인테리어에서도 일반 가라오케와는 차이점이 분명하다. 룸은 하나뿐이고 홀 위주라는 점이 특이한데 사실 가라오케는 한국으로 수입된 일본의 유흥 문화이기 때문에 오리지널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단, 한국형 가라오케는 좀 더 높은 수입을 올리기 위해 룸살롱의 특성을 가미, 홀과 룸이 혼재된 비정상적인 형태이다.

D 가라오케에서 웨이터로 근무하고 있는 신승기(가명ㆍ남ㆍ 31)씨는 “ 일본 사람들의 술 문화는 룸 문화가 아닌 홀 문화”라며 “접대 여성이 손님별로 지정되지 않고 테이블을 이곳 저곳 오간다는 점도 한국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유흥 문화 역시 오픈되어 있다.


- 손님 대부분이 한국주재 상사원

D 가라오케에는 홀에 모두 7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다. 홀에서 접대 여성들과 함께 술 마시고 노래하는 정도가 D 가라오케 유흥 문화의 전부인 셈. D 가라오케 홀의 중심에는 대형 스크린과 노래방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온통 일본 노래들이 가득 들어있다. 8시가 넘으면 한 테이블씩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곧 일본 노래들이 들여오기 시작한다. 접대 여성들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대화를 주고 받으며 고향 생각에 잠겨 노래를 부르는 정도가 유흥 문화의 전부인 셈.

손님들과 접대 여성의 물리적 접촉(?)도 그다지 많지 않고 접대 여성들이 테이블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퇴폐적인 유흥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때문에 접대 여성에 대한 별도의 차지나 팁도 없다. 양주 한 병이 13만원 가량이고 안주는 6~7만원 수준. D 가라오케 등 일본인 손님 전문 가라오케는 7~8명 정도가 함께 오는 경우를 ‘ 단체 손님’이라 부르는데 이런 경우 술값이 100만원 정도 수준으로 그다지 비싼 편은 아니다.

결국 접대 여성들에게 돌아오는 월급도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업소의 접대 여성이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이들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모가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일본어까지 자유 자재로 구사한다는 점에서 단연 특 A급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로 고가의 2차를 통해 모자란 수입을 채워가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신씨는 “ 우리 업소에서 2차는 절대 허용치 않는다”고 말하면서 “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대부분 2차를 나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D 가라오케를 자주 찾는 일본인 손님들은 대부분 한국 지사로 파견 나온 일본인 회사원들이다. 짧게는 1~2년에서 보통 5~6년씩 한국에 머물러야 하는 일본인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외로움. 가족과 떨어져 한국에서 홀로 지내야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친구 내지는 애인이 필요한데, 이를 이런 업소의 접대 여성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 손님과 접대 여성의 첫 만남은 주로 공식적인 술자리에서 이뤄진다. 공식적인 술자리는 7~8명의 ‘ 단체 손님’이 찾아 오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는 일본 본사에서 출장 온 직원들을 위한 접대 자리가 대부분이다. 이런 자리에서 만남이 이뤄진 이후 접대 여성과 친해진 일본인들이 자주 찾아오며 단골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친해지는 두 사람은 조금씩 애인으로 변해간다. 쉬는 날 만나서 함께 영화도 보고 밥도 먹으며 데이트를 즐기는 것. 술은 이들이 일하는 가라오케에서 마시고 함께 호텔로 향해 자연스러운 2차가 이뤄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이 일본인 회사원들에게 일종의 ‘현지처’ 역할을 해 주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일본인 손님 전문 가라오케에서 일하는 접대 여성들은 적은 월급을 감수해 가며 새로운 일본인들을 소개받는 데 더 큰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신씨는 D 업소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끄는 접대 여성인 김예린(가명ㆍ여ㆍ27)씨의 경우 현재 일본인 애인이 3명이나 된다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다찌 아가씨’가 있다면 한국에 장기간 머무는 한국 주재 일본 회사원들에게는 이들의 가라오케 접대 여성이 있는 셈이다.

김씨는 일본 유학생 출신이다. 일본 유학 생활 도중에 한국인 손님 대상 가라오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유학 도중 집안에 일이 생겨 귀국하는 바람에 결국 일본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김씨는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이런 업소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그렇다면 일본에 있으며 한국인을 상대하는 가라오케와 반대로 한국에 있으며 일본인을 상대로 하는 가라오케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 매너 중시하는 깨끗한 술자리

그녀는 “ 일본에서 일하던 가게는 일본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결국 한국인 손님을 대상으로 해 한국 룸 살롱과 비슷한 분위기였다”면서 “ 반면 지금 가게는 일본에 있는 보통 일본 가라오케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말한다. 일본인들은 매너를 중시하며 깨끗하게 술자리를 가져가는 데 반해 일본에서 만난 한국 손님들은 접대 여성을 많이 괴롭히는 편이라는 게 김씨의 설명.

한편 신씨는 곧 가게를 그만 둘 계획이라고 얘기한다. 압구정동에 새로 생기는 가라오케로 스카우트가 됐다는 사실을, “ 비밀”이라며 얘기해 준다. 신씨는 “ 계속해서 이런 가라오케가 늘어날 것”이라며 “ 우연히 여기서 일하게 되면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해 주문을 받는 등 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한데 이것이 나름대로의 경쟁력이 된 셈”이라고 설명한다. 업무 관계로 국내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날로 늘어가고 출장 오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심각한 취업난 때문인지 일본어가 능숙한 젊은 여성 가운데 이런 업소에서 일하고자 하는 여성들도 급증하는 추세. 이렇게 또 하나의 유흥 문화가 한국 사회에 연착륙하고 있는 셈이다.

황영석


입력시간 : 2004-06-16 11:31


황영석 chemistion@my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