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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25시] 노석미
"행복해져라, 얍!"
글과 그림 버무린 '그림소설' 화가
상처받는 여심 소재로 여성팬 환호
여섯 번째 개인전시 '즐거운 주문'걸어


“우연일까…. 나는 우연이 좋다. 더 깊게 얘기하자면 복잡해지는데다가 다른 이물질이 쉽게 끼어 들어오기 때문에 나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연히, 복잡한 인사동 골목을 걷다가 흑백 텔레비전 속의 컬러처럼 빛나는 포스터를 발견하였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무더운 여름, 전시장은 마치 해변가의 열대과일처럼 컬러풀했다. “나는 니가 행복했으면 해.” 순간 멍한 기분이 들었다. 속내를 들켜버린 것 같은 심정이랄까. 미리 말하지만 이미 행복한 사람들은 이 전시회에 갈 필요가 없다. 화가 노석미의 여섯 번째 개인전 “나는 니가 행복했으면 해” 전은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마법을 걸어주는 전시회니까.

노석미는 ‘그림 소설’을 쓰는 화가로 더 유명하다. 그림 소설을 쓴다? 좀 낯설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글과 그림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화가다.

“제 그림은 글에 대한 일러스트가 아니에요. 또한 글이 그림에 대한 설명도 아니구요. 그림에서 느낀 무의식과 영감으로 써내려간 글이죠.” 그녀의 그림 소설은 서로 다른 장르가 만나면서 피어난 신선한 꽃이다.

그녀는 인터넷 사이트 ‘인사동’에서 그림 소설 ‘실연’을 연재하면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글 솜씨까지 있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의 글과 그림은 모두 일상에서 출발한다. 그렇기에 여느 그림들처럼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골몰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유아스러우면서’ 단순하고 쉬운 그림들이다. 그것이 그녀가 대중과 친한 이유다.

젊은 층에게 유독 인기가 많은 이 화가는 공주 영상 정보대학에서 카툰과 일러스트 강의를 한 적도 있고, 엽기적인 글을 쓰기로 유명한 배수아의 소설 “붉은 손 클럽”의 책 표지 일러스트를 맡은 적도 있다. 또한 하이퍼텍 나다 영화관 잡지광고 이미지와 주간 영화잡지 씨네 21의 일러스트를 맡았는데, 모두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매체들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젊은 층의 인기를 확보해 나갔다. 그녀의 개인전은 “너무해” 전을 비롯해 “즐거운 가게”, “샤워” 전 등 이번이 여섯 번째다.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유발시키는데, 모두 생각의 발랄함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 세인의 관음증과 낯선 여자





삼청동의 갤러리 팩토리와 인사동 두샵 두 군데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좀 특별하다. 이 전시회는 그녀가 우리에게 거는 “행복”이라는 주문으로 시작된다. 전시회장에 들어서는 순간, 행복이라는 메시지에 전염되어 전시회장을 빠져 나올 때면 노석미의 첫 번째 에세이집 “나는 니가 행복했으면 해” 라는 책이, 어느새 손에 들려 있을 것이다. 그녀가 선사하는 “행복”이라는 책은 그녀의 작품 이미지와 그녀의 일기로 이루어진 그림 에세이집이다.

일기와 그림을 함께 세상에 공개한 여자. “일기라기보단 그냥 소박한 제 일상과 생각을 적은 글이죠.” 이렇게 말하지만 초록색의 책표지를 여는 순간 그녀가 만든 비밀의 화원은 화려한 색들의 꽃과 식물로 피어나, 어느새 각자의 화원이 되고 만다. 고백이라는 형식으로 써 내려간 낙서를 보는 재미랄까. 그녀의 일기는 마치 누군가의 비밀노트를 몰래 훔쳐보는 은밀함이 있다.

그녀의 일기를 살짝 공개한다.

“그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잠시 멍해지면서 세상이 정지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장들은 사랑에 빠진 여자의 내레이션처럼 들린다. “그와 함께 밤을 보내고 난 후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헤어지는 거다. 그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은 맘속에서 이별을 불러오기도 하며 “내가 질투라는 감정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며 그와 함께 한 주변의 모든 것을 적으로 느끼기도 한다. 내가 소유하지 못한 사랑을 그들은 가졌기 때문이다.

노석미에겐 유독 여자 팬이 많다. 여자들은 모두 그녀에게 열광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는 실연당한 여자들을 대변하는 못생긴 여자다. 그녀의 얼굴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녀는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에 나오는, 귀여운 소녀와 닮았다. 그녀는 실제 네 마리 고양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못생긴 건 그녀의 마음이다. 못생긴 여자가 하는 사랑은 못날 수밖에 없다. 실연이나 짝사랑, 기다림을 소재로 한 그녀의 글은 덤덤하다. 상처를 내색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너무 슬프게 다가올 뿐이다.


- ‘마음이 못생긴’ 여자들의 우상

혼자서 상처를 잘 견뎌내는 여자의 글은 도발을 꿈꾸게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지 않고, 헛간 같은 작업실에서 혼자 사는 못생긴 여자는 좋아하는 사람이 방문하겠다는 소리를 듣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를 마중 나간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혼자다. 그는 야속하게도 찬란한 햇살이 비칠 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장마비가 쏟아지는 축축한 날, 우산을 받쳐 들고 찾아온다. 이 여자는 그를 원망하지도 못한다. 기다리는 것은 늘 오지 않는 법이니까.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찾아와 놀래키는 게 바로 사랑이니까.

해서 이 여자는 사랑을 해도 짝사랑만 하고, 이별도 혼자서 한다. 지독한 마스터베이션이다. 이런 여자가 사랑을 만나면 “사실은 늘 두려워하고 있어요. 통과하지 못한 것에 대한, 허락 받지 못할 것에 대한, 그리고, 그렇게 날 떠나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며 청승을 떤다. 참 못났다. 하지만 그런 맘들이 가슴속에 속속 박혀 빛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런 여자가 행복이라는 너무도 낯선 물건 하나를 집어와 스스로도 민망해 하며, 살짝 건네며 하는 말. “인생에 유독 썰물의 시간이 많았다면, 당신에게도 행복이 밀물처럼 마구 밀려왔으면 좋겠어요. 빛나세요.” 그녀가 주문을 걸자, 내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행복이 가득 밀려와서 말이다.

정작 자신은 행복하지 않은 여자. 하여, 이번 개인전을 통해 타인이 또한 그들이 몸담고 있는 세계가 행복이라는 상상화로 색칠되기를 바라는 여자. 나는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나도 언니가 행복했으면 해”라고. 오늘밤 행복이 가득 밀려오는 바닷가에 가보고 싶다.

입력시간 : 2004-06-3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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