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남부 잇딴 미제 살인사건 여파 해당지역 불안 떨어범행동기 모호한 데다 범인 윤곽조차 못 잡아 경찰도 당혹

서울서 되살아난 ‘화성의 악몽’
서울 서남부 잇딴 미제 살인사건 여파 해당지역 불안 떨어
범행동기 모호한 데다 범인 윤곽조차 못 잡아 경찰도 당혹


“하필 목요일이야.”

서울 강서경찰서 형사계 관계자는 6월 20일 관할지역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피살사건을 접하고 불쑥 내뱉었다. 올해 초부터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에서 비롯된 ‘살인괴담’에 대한 경찰 안팎의 반응을 엿보게 한다.

새해 벽두인 1월30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시작된 40대 여성과 2월26일 관악구 신림동 10대 소녀에 대한 살인미수사건에서 움튼 ‘괴담’은 4월 22일 구로구 고척동에서 20대 여대생이 피살된 것을 계기로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특히 5월 한달간 무려 5건의 여성 대상 살인사건이 발생했으나 범인의 윤곽조차 잡히지 않자 일부에서는 80년대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연상케 하는 서울판 ‘살인의 추억’을 거론하고 있다.

실제로 살인사건이 서울 서남부 지역에 집중되고, 특정한 날에 발생해 서남부 일원에는 흉흉한 소문마저 나돌고 있다. 지난 6월 20일 강서구 가양동에서 이모(21) 여성이 유사한 방법으로 살해당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분위기는 ‘괴담’ 수준을 넘어 ‘공포’로 이어지고 있다.


- 특정 요일에 유사한 수법으로 살해

이 여성은 혼자 사는 집의 안방 장롱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피살 추정 시간은 6월 17일, 비가 내리는 목요일이었다. 괴담의 시발점이 된 4월22일 구로구 고척동 살인사건 피해자 김모(20ㆍ여대생)양도 비가 내리는 목요일 새벽 2시경 귀가 중에 희생당했다. 5월13일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피살된 중국집 여주인 김모씨(39)는 친구들과 술을 먹다 잠시 화장실에 갔다가 범인의 습격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목요일이었다. 이에 앞서 피해자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2월26일 신림동 여고생 살인미수사건이 발생한 날도 목요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역을 중심으로 “비오는 날 목요일엔 외출을 삼가야 한다” “범인은 흰옷을 입은 여성을 노린다” “여학생들의 피해를 우려해 야간 자율학습이 사라졌다”등의‘괴담’이 확산되고 있다. 구로구 고척2동에 사는 주부 황모씨(28)는 “올 1월 근처인 구로동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데 이어 4월에는 지금 살고 있는 지역서 끔찍한 일이 벌어져 밖에 나가기가 두렵다”며 괴담 후유증을 토로하기도 했다.

문제는 경찰이 살인사건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한 상태라는 것. 서울지역에서 지난해 1월부터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중요 살인사건은 모두 13건(2003년 6건, 2004년 7건)인데, 2004년 사건은 모두 4~6월에 발생했다.

지난해 ‘살인의 추억’의 주요 대상은 노인이었다(미제사건 6건 중 4건). 강남구 신사동 70대 노교수 부부 살인사건(9월23일), 종로구 구기동 일가족 3명 살인사건(10월9일), 강남구 삼성동 전 군납업체 대표 부인 살인사건(10월16일), 종로구 혜화동 노인 및 파출부 살인사건(11월18일) 등이다.

피해자들은 서울의 부자동네에 사는 재력가들로 모두 둔기로 머리를 난타당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범인이 현장의 현금이나 귀금속 등 재물에 손을 안 댄 점도 특징이다. 경찰은 단순강도,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 재산을 노린 가족내부인의 소행 등 다각도로 범인을 추적했지만 뚜렷한 단서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강남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범행의 수법이나 대상 등에 공통점이 많아 동일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단순히 부유층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범행을 했다면 검거하기가 어렵다”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살인의 추억’은 대상이 여성인 데다 범행 수법이 잔인해 인근지역 주민들에게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범인의 정체와 살인 동기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양하지만 수사의 실마리는 찾지 못한 상태다.

범인의 윤곽은 2월 26일 신림동 여고생 살인미수사건과 5월 9일 동작구 신대방?보라매공원 여대생 살인사건에서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가까스로 살아난 여고생 박모(18)양은 40대 남성한테 당했다고 진술했고, 보라매공원에서 남자친구와 휴대폰 통화를 하고 가다 피습당한 김모(22)양도 숨지기 직전 “(범인이)40대 남자인데 모르는 사람”라고 말해 범인이 40대 남성임을 추정케 했다. 또 범인은 피해 여성들의 상반신 중 가슴과 배를 집중적으로 흉기로 찔러 살해했는데 상흔의 각도와 위치로 보아 오른손잡이라는 점도 확인됐다.

그러나 범죄의 동기가 불분명하고 범인이 비면식범들이어서 좀처럼 수사에 진전이 없다. 경찰은 강도나 성폭행의 흔적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면식범에 의한 범행에 초점을 맞췄으나 피해자 주변 용의자들의 알리바이가 입증되면서 벽에 부딪혔다.


- 동일범 연쇄살인 가능성 의견 갈려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 가능성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리고 있는데 경찰은 비중을 두지 않으려는 눈치다. 서울경찰청의 윤재국 형사과장은 “사건들이 외형상 유사할지는 몰라도 특징적인 차이가 있어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은 배제하진 않지만 확률상 낮다”고 말했다. 윤 과장은 5월13일 대림동에서 피살된 김모씨 사건의 범인은 중국동포로 압축되고 있고, 6월 20일 가양동 살인사건의 범인은 숨진 이양의 고향(광주) 연고지인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계속된 미검거 살인사건은 동기가 불분명한 ‘무동기 살인’이란 점과 노인과 여성을 대상으로 연속해서 ‘도미노식’으로 발생했다는 데 특징이 있다. 수사의 어려움과 괴담의 공포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경찰대 이형욱 교수(범죄심리학)는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무동기 살인’은 비정상적인(종래 분석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스타일의 범죄”라면서 “실업ㆍ빈곤층의 증대로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고 사회가 기대하는 수준에 뒤떨어진 데 따른 좌절감, 아동학대 등 개인적 경험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클 때 극한 분노와 흥분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살인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수사가 집중될 경우 범인은 ‘냉각기’를 갖거나 다른 지역에서 유사 범죄를 행할 수 있다(범죄의 전이현상)”고 말해 ‘살인의 추억’이 계속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 서울지역 주요 미제 살인사건(2003~2004년 6월말 현재)

2003년 4월 6일
5월 22일
9월 23일
10월 9일
10월 16일
11월 18일

송파구 삼전동 일가족 3명 살인사건
서초구 서초동 여공무원 살인사건
강남구 신사동 노(老) 교수부부 살인사건
종로구 구기동 일가족 3명 살인사건
강남구 삼성동 일반주택 노인 살인사건
종로구 혜화동 노인 및 파출부 살인사건
2004년 4월 22일
5월 9일
5월 13일
5월 22일
5월 28일
5월 30일
6월 20일
구로구 고척동 여대생 살인사건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공원 여대생 살인사건
영등포구 대림동 중국동포 살인사건
종로구 원남동 세용빌딩 노인 살인사건
성북구 정릉동 주부 살인사건(피의자 특정)
강남구 역삼동 여회사원 살인ㆍ방화사건
강서구 가양동 20대 여종업원 살인사건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7-07 12:07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