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이야기로 남자들 인기 '꽉'영화사 씨네월드 대표 겸 감독'달마야 놀자';'황산벌'등으로 대박왕과 광대 소재로 또 한번 흥행 도전

[감성 25시] 이준익
남자 이야기로 남자들 인기 '꽉'
영화사 씨네월드 대표 겸 감독 '달마야 놀자''황산벌'등으로 대박


슬리퍼를 질질 끌며 빨간 모자를 꺾어 쓴 피부가 까만 사내를 만났다. 그와 함께 충무로를 걷는데 주변 사람들이 힐끔 힐끔 쳐다본다.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과 자유분방한 옷차림의 근로자들, 그들은 모두 남자였다. 잠시 동안 내가 연예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는데, 그들이 눈 여겨 바라본 건 내 옆에서 슬리퍼를 끄는 사내, 이준익 감독이었다.

충무로에 가장 오래 남아있는 영화사 ‘ 씨네월드’의 대표. 그는 1986년 서울 극장 기획실에서 선전부장 겸 도안사로 일하다가, 87년 영화광고 대행사 씨네 씨티를 창립하고, 92년에는 영화제작, 홍보, 수입, 배급사 씨네월드를 만들었다. 93년에 키드캅이란 영화로 감독으로 데뷔해 지금까지 충무로에 있는, 충무로 지킴이!

‘ 키드캅’의 실패 이후 그는 영화 ‘ 간첩 리철진’(99), ‘ 아나키스트’(00), ‘공포 택시’(00)를 제작하며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는데, ‘ 달마야 놀자’(01)의 성공은 드디어 그를 충무로에서 주목할 만한 제작자로 떠오르게 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후 코믹 사극 ‘ 황산벌’(03)로 기획ㆍ제작ㆍ연출까지 도맡으며 연속 대박의 행운을 가져온 운 좋은 남자였다. 실패와 성공을 오가며 충무로에 15년도 넘게 있었던 그는 이사도 그만큼 많이 다녔다 한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를 충무로의 유랑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 충무로의 유랑인

“ 유랑인의 피가 우리에게도 흐르고 있어요. 농경 사회가 정착 문화를 만들었지만,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몽고족, 기마 민족의 후예죠. 몽고 반점이 왜 생긴 줄 아세요? 말을 타다가 멍든 유전자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거예요.”

웃음이 났다. 하지만 반박할 수 있는 근거 또한 없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인정해 버렸다. 아, 그렇구나! 하며. 몽고 반점의 유래를 기마 민족에서 찾는 이준익 감독의 재치를 황산벌의 ‘거시기’에서 이미 확인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이 재기 발랄한 감독에겐 유독 남성 팬들이 많다. 그가 제작, 배급, 연출한 영화를 신경 써서 본다면 여자 주연이 없다는 것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 황산벌’도 그렇고, ‘ 달마야 놀자’(01)와 7월초 개봉한 ‘ 달마야 서울 가자(04)’는 모두 남자들의 이야기다.

그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일까? “ 아, 글쎄, 나를 보더니 달려와 뽀뽀를 하려고 하잖아!” 영화부 기자 ㅂ씨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의 표정은 무척 해피해 보였다. 이번에 시나리오 작업을 마친 영화제목도 ‘ 왕의 남자’라는데….

“사회적인 선입견과 벽을 허물고 싶어요.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거죠. 이쁜 짓을 하면 뽀뽀도 해주고, 얼마나 좋아요. 그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잖아요. 이 사회는 남자들을 억압하는 것이 너무 많아요.” ‘왕의 남자’는 기획, 연출 모두 이준익 감독이 맡았다. 9월쯤 창덕궁에서 크랭크인에 들어간다.

“감독님, 뒤에 포스터를 보면 여자가 한 명도 없네요? 감독님은 여자 배우를 그리 좋아하지 않나 봐요?”“하하하, 난 여자를 몰라요. 그러니까, 남자 이야기만 하는 거지. 별다른 이유가 있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고 만들 순 없잖아요.”


- “하하, 난 여자를 몰라요”

그는 모르는 것에 대해 아는 척하지 않는 겸손한 남자이고, 또한 못하는 것은 무모하게 덤비지 않는 현명한 남자다. 어딜 봐도 영화사 대표처럼 보이지 않는 소박한 차림새. 작은 체구 속에 숨겨진 끼와 재능, 그리고 그가 발휘하는 능력까지, 오늘의 씨네월드 대표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단지 생활고 때문이었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그는 자수성가한 사람 중 하나다. 그림 그리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세종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煇?형편이 좋지 않아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에 들어가야 했다. 대학교 때 그는 이미 두 아이의 아빠였기 때문이다. 화가라는 직업은 그에게 꿈같은 사치였고, 가장으로서 생활을 책임지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그림을 그리죠. 지금도 그림 그릴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해요.”

화가의 꿈, 젊은 시절 순수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던 청년은 이제 스크린의 여백을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래서 스크린 속에는 그의 인생 철학이 곳곳에서 숨 쉬고 있다.

“웰빙! 아파트라는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부암동으로 이사왔는데, 다시 태어난 느낌이예요.” 그가 말하는 웰빙은 가치관의 변화까지 포함한다. 지금 사는 부암동 마당 있는 집은 그에게 웰빙을 체험하게 해주었다. “ 정진영이 소개해 준 집인데, 살구나무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잠이 들어요. 바람에서 영혼들의 움직임을 느낍니다. 하지만 무섭지 않아요. 오히려 자유로운 느낌이예요. 이것은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죠.”


- 부암동 집에서 느끼는 ‘영감’

부암동의 달동네라 불리는 40년이 넘은 전통가옥. 인왕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비현실적인 물결을 만들고, 살구나무 잎사귀가 저희들끼리 살을 부비는 소리, 스윽 스윽, 수십세기 동안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의 영혼이 바람 속에 묻어 그에게 속삭인다. 왕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라고.

왕의 남자는 누군가요?

그가 함박 웃으며 말한다. “ 나의 페르소나, 정진영이 왕이고, 그의 남자가 바로, 광대예요. 최고권력자인 왕(연산군)과 최하층민인 광대의 만남이죠. 유랑인의 피가 끓는 광대가 끊임 없는 의심과 부정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이예요.” 돌아 오면서 내내 어서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왕의 남자’ 란 영화가 몹시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준익 감독은 무척 자유로운 남자였다. 속박을 싫어하고, 자유를 사랑하지만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 있는 남자. 미리 약속하고 정해 놓는 것을 싫어하고 즉흥적인 것을 좋아하는 남자. 그는 바람을 닮았다.

그의 집을 상상한다. 인왕산의 기가 센 바람이 불어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의 고양이 리무진이 나타날 것만 같은, 해서 그리워하는 곳으로 실어다 줄 것 같은 설레임이 있는 집.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이준익 감독에게 전화를 해보자. 사회적인 시스템이 완전히 해제되는 시간, 바람을 품은 고양이 리무진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말이다. 그는 순수한 사람에게는 기꺼이 자신을 내어 줄 수 있는 남자니까.

어? 바람이 분다.

유혜성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7-15 10:48


유혜성 자유기고가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