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최광범씨, 아버지의 삶과 무술세계 담은 『This is 최배달』 펴내

목숨을 걸었던 무술인… ‘바람의 파이터’ 최영의
장남 최광범씨, 아버지의 삶과 무술세계 담은 『This is 최배달』 펴내

“맨손으로 소를 때려잡는 비결은 간단하다. 한 손의 새끼 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으로 턱걸이가 아니라 배꼽걸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로 쳐라. 스피드도 중요하다. 아주 추운 날 정권치기를 할 때 주먹이 지나간 선을 따라 하얀 선이 생겨날 만큼의 속도로 쳐라. 그 주먹으로 치면 소는 죽는다!”

17세의 나이에 홀홀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10년 뒤 도쿄무도대회 가라테(空手) 부문에서 우승하고, 극진가라테라는 실전 무술을 창시한 전설적인 무술인 최배달(본명 최영의ㆍ1922~1994). 47마리의 황소와 맨손으로 대결해 4마리를 즉사시키고, 나머지 소들의 뿔을 전부 꺾는 등 초인적인 일화를 남겼던 그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 우리에게 ‘바람의 파이터’란 별칭으로도 친숙한 최배달 무술의 근원을 아들 최광범(30) 씨가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최강의 훈련을 거친 분이셨습니다. 하나의 기술을 온전한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30,000회의 연습을 강조할 정도였죠. 또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아주 꺼려하셨습니다. 혹여 일이 잘못 돼도 빠져나갈 변명의 여지를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경기에 나설 때마다 항상 송두리째 ‘목숨’을 걸었습니다.”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 3년차인 최씨는 얼마 전 동생 광수(28), 광화(22)씨와 함께 최근 아버지 최배달의 삶과 무술 세계를 담은 평전 ‘This is 최배달’(찬우물 刊)을 펴냈다. 8월 12일에는 그가 자문을 맡은 영화 ‘바람의 파이터’(감독 양윤호ㆍ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도 개봉한다.


- 전설적인 무술인 최배달

평전이 생전 최배달의 무술 이론과 철학 세계를 충실하게 고찰하고 있다면, 영화는 최배달의 영웅적인 활약상과 강한 외면 뒤에 감춰진 인간적인 고뇌를 조명하는데 집중한다. 최씨는 특히 배우 양동근이 주연을 맡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말한다. “영화 개봉 후 아버지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영화 속 최배달의 인상을 고스란히 실제 최배달의 느낌으로 연결할 테니까요.”

무엇보다 배우 양동근의 연기력에 대해 최씨는 후한 점수를 준다. “아버지 무술 세계를 적어도 7,8할은 실감나게 그렸다”고 평한다. “촬영도중 배우 양동근에게서 젊었을 때 아버지의 모습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모습을 봤어요. 경기 후 허탈해 하던 인간적인 갈등까지… 생전 아버지에 대한 고찰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알려졌다시피 최배달에 얽힌 일화는 수두룩하다. 벽돌 격파를 하면서 거들먹거리곤 하던 어느 무술가와의 자리에서 벽돌을 두 손에 쥐고 비틀어서 부숴 버렸다고 하는가 하면, 술집에서 시비를 걸던 건달 앞에서는 뚝배기를 귀를 엄지와 검지로만 차례로 뜯어냈다고 하는 ‘무한’의 힘이 화제의 핵이다.

“중 3때 생일날 아버지께서 180cm에 90kg짜리 샌드백을 선물로 주셨어요. 저는 신이 나서 날마다 이마에 땀이 이슬처럼 맺히도록 치고, 또 쳤죠. 그렇게 2년이 흐른 어느날 ‘텅텅’ 소리가 온 마당에 울리도록 샌드백을 치고 있는데 아버지가 다가와 ‘그렇게 치는 거 아니다. 멋은 있지만…’하며 질책하시더군요. 놀란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죠. 아버지가 짧은 기합과 함께 뻗은 주먹에 그 육중한 샌드백이 ‘퍽’ 소리와 함께 반으로 접혀버린 겁니다. 당시 아버지 연세가 일흔에 가까웠어요.” 그때 아들은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아버지의 저런 ‘괴력’이 그를 전설이 되게 했다는 사실을.

흔히 무廈된??만화에서는 무예 고수들이 죽기 전엔 그의 후계자에게 평생 갈고 닦은 비법을 전수해준다. 그래서 그도 생전 아버지에게 최고의 고수가 되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졸라대곤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조용히 아들을 타일렀다. “주인공이 복수에 성공한 건 비법을 전수 받아서가 아니다. 마음에 칼을 품고 자신만의 기술을 익히는데 올곧게 정진했기 때문이다.”


- 마음에 칼을 품고 올곧게 정진하신 분

세인들은 종종 그런 아버지를 시라소니, 김두한 등과 비교한다. “최배달과 시라소니가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이 같은 물음들에 일일이 답변할 가치를 두지 않지만, 때로 은근히 부아가 치민 적도 있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모두 당대를 빛낸 뛰어난 기량을 갖춘 분들이었지만, 그런 식의 단순 비교는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무술인으로서 심신을 수련하며 ‘칼끝에서’ 인생을 사신 분입니다.”

세계 곳곳을 돌며 최고의 무예 고수들과 100여 차례 겨뤄 모두 승리를 거둔 전설적인 파이터로 사람들에게는 알려졌지만, 그의 기억 속의 아버지 최배달은 자식들에게 한없이 자애롭고 따뜻한 분이라는 무게가 더욱 크다.

“어린 세 아들의 머리를 감겨주길 좋아하셨어요.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게 하고 얼굴은 천장 쪽을 향하게 해서 눈에 비눗물이 들어갈세라 조심스레 머리를 감겨주곤 하셨어요.”

94년, 험난한 무술인의 길을 원치 않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 시험을 준비 중에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가족 가운데 누구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잠시 일본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떠난 뒤, 3주 만이었다. 말기 폐암이었던 아버지는 90여 kg의 몸무게가 마지막 순간에 60kg이 될 정도로 고통 받으면서도, 끝내 자식들에게는 “소를 때려잡던 강인한 아버지로 남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아니라 산을 잃은 심정이었습니다. 사랑했다기보다 존경했습니다. 앞으로 아버지가 평생을 바쳤던 무술과 철학을 올바르게 알리는데 열과 성을 다할 생각입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7-29 11:10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