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방 르포] 출장마사지


희대의 연쇄 살인 사건이 발발했다. 이른바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 이번 사건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20여명의 희생자 가운데 11명이 ‘출장 마사지’ 등 윤락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라는 점. 안타까운 사실은 이들 대부분은 살해됐다는 사실 자체도 우리 사회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만약 유영철이 잡히지 않았고 범죄 사실을 자백하지 않았다면 이들의 죽음은 여전히 ‘아무도 모른 채’ 묻혀 졌을 것이다.

출장 마사지는 사실상 아무런 보호막이 없는 윤락 행위다. 때문에 ‘출장 마사지’ 종사자들은 늘 수많은 위험 요소에 직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외줄타기와 같은 이들의 위태로운 삶을 따라가 본다.

7월 21일 열린우리당과 대검찰청, 경찰청은 당정협의를 갖고 불법 보도방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수사활동비 증액’, ‘인력 확충’ 등 근무 여건 개선이라는 ‘사탕’까지 약속됐다. 이런 분위기는 7월 21일부터 시작된 불법 보도방에 대한 대대적 단속으로 이어졌다. 결국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의 충격이 불법 보도방 전체로 번진 것.

하지만 불법 보도방 관계자 A씨는 이번 단속을 ‘잘못된 접근’이라고 항변한다. 피해 여성 대부분은 보도방 소속 여성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이다. 보도방에 소속된 여성들의 경우 대부분 로드(윤락 여성들을 승용차에 태우고 다니며 직접 관리하는 이들)가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살해를 당할 경우 금세 꼬리가 잡혔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영철의 경우도 대부분 보도방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여성들을 살해하다가 막판에 보도방 소속 여성을 살해한 것이 빌미가 되어 업주를 통해 검거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보도방에 소속되어 있는 윤락 여성의 경우 일할 곳을 꾸준히 제공받는 장점이 있지만 수입의 20% 가량을 수수료로 내야 한다. 반면 수수료가 아까운 여성들은 직접 홍보용 명함을 만돌리는 방식으로 ‘나홀로’ 출장 매춘을 해오고 았다. 이런 경우에는 최소한의 보호막도 없는 상황이 된다. 때문이 피해 여성 대부분이 살해는커녕 실종 사실 자체도 알려지지 않은 채 그 존재가 지워져 버렸던 것이다.

7월 19일 홍대 부근의 길거리. 여전히 주차된 차량 앞 유리마다 수많은 출장 마사지 관련 명함이 끼워져 있었다. A씨가 알려준 보도방 소속 여성과 소위 ‘나홀로 출장 여성’의 구분 방법은 가격이었다. 쇼트타임에 13만원 내지는 15만원을 받는 경우는 보도방 소속 여성들이고 10만원 이하를 부르는 경우는 대부분 보도방 소속이 아니라는 게 그 구분법이다.

이날 밤 11시경 명함의 번호로 전화를 해 합정동의 한 원룸으로 출장을 의뢰하자 30분쯤 시간이 흐른 뒤 출장 마사지사 김연희(가명ㆍ31ㆍ여)씨가 들어왔다. 취재를 위해 불렀다는 사실을 밝힌 뒤 인터뷰에 응해줄 수 있냐고 묻자 약간 머뭇거리던 김씨는 “오래 얘기할 수는 없다”며 취재 요청을 받아들였다.

지방 출신인 김씨는 서울에서 친구와 함께 살며 집에서 ‘080’ 서비스를 이용, 출장 마사지를 다니고 있다. 한동안 보도방에 소속되어 노래방 등지에서 일했던 김씨는 현재 그 곳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독립한 상태다.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이 보도된 뒤 ‘모방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 김씨는 친구와 서로서로 전화를 주고받는 것으로 나름대로의 ‘안전망’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인터뷰에 응하겠다며 자리한 김씨는 우선 사진 촬영이나 녹음은 안된다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출장 나오면 제일 먼저 몰카가 있는지 둘러봐야 한다”는 김씨는 “재미로 찍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팔아먹기 위해 일부러 찍는다. 그게 가장 두렵다”고 얘기한다.

수입은 변변치 않은 편. 요즘은 전문 보도방도 ‘애들을 돌릴 곳이 없어 고민’이라고 얘기할 정도다. 이런 형편에 홍보 명함을 돌리는 방식만으로 영업하는 이들에게는 불경기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손님들 대부분이 정상적인 관계보다 변태적인 요구를 해온다는 점도 문제다. “항문섹스나 구강 사정를 원하는 경우 사실 기분 더럽죠”라는 김씨는 “가끔은 때려달라는 부탁을 해오는 이들도 있어 난감해하곤 하지요”라고 말한다.

이런 변태적인 성향의 손님의 특성은 다소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점이다. 무언가 특별한 부탁을 해오는 경우 거절은 곧 폭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탁의 내용이 황당하다고 웃거나 면박을 주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즉각적인 반응이 난폭한 폭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김씨의 경우 ‘강간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부탁을 듣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가 심한 폭행을 당한 뒤 실제 강간을 당한 경우가 있었다고 얘기한다. 게다가 이날은 화대까지 받지 못했는데 이런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보도방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그런 위험은 조금 덜한 편이죠. 로드들이 따라다니니까요. 하지만 혼자 일하면서 그런 일을 겪으면 그냥 혼자 돌아와서 계속 울어요. 보도방을 나와 혼자 일하는 얘들 가운데 뒤를 봐주는 남자가 있는 얘들도 더러 있어요. 그러면 최소한 돈을 못 받는 일은 없는데 이 남자들이 뺏어가는 돈이 더 많다는 게 문제지요.”

몸을 팔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억울한 일을 겪었다고 해서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다. ‘출장 마사지’는 불법적인 윤락업으로 이 자체가 경찰의 단속 대상이다. 그러니 신고는 곧 자수하는 결과가 된다. 한마디로 이들은 현재 ‘법의 사각지대’에 서있는 셈이다.

얘기가 길어져 김씨가 온지 40여분 정도가 지나자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앞서 얘기했듯이 예상 시간을 넘었는데 김씨에게 전화가 오지 않자 우려 섞인 안부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친구가 빨리 나오라네요. 그 사람(유영철)은 경찰을 사칭했다는 데 기자라고 속이는 거 아니냐며 걱정이네요. 요즘 같아선 무서워서 이 일도 못해먹을 것 같아요. 꼭 보면 이런 거 흉내 내는 사람들이 생기잖아요.”

그래도 당장은 좋아졌다는 게 김씨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출장 마사지’를 잘 모르던 사람들이 이번 사건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인지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이후 출장 의뢰가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 단속은 시작됐다. 길거리를 가득 메우던 출장 마사지 홍보 명함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모방 범죄는 물론이고 폭행과 갈취에 노출된 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단속’ 뿐이다. 물론 이들이 또 다른 어떤 형태의 신종 윤락업으로 변해갈 확률이 크기 때문에 곧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되겠지만.

다만 그 동안 공권력은 무엇을 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이들의 홍보 명함이 길거리를 가득 메웠을 당시부터 경찰의 강력한 단속이 있었다면 우리는 11명의 희생자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황영석 프리랜서


입력시간 : 2004-07-30 11:14


황영석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