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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지대 르포] 옐로 하우스, 노을 속에 지다
인천 학익동 사창가 11월 자진폐쇄 방침, 보상문제 등 불씨 남아

“끽동으로 가주세요” 내년이면 ‘끽동’이라는 말이 사라져 택시를 타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끽동’은 인천 학익동에 위치한 집창촌을 지칭하는 속어로 오는 11월 자진 폐쇄될 예정이다. 2007년까지 전국 집창촌을 전부 폐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실현되는 첫 번째 대상이 끽동’인 것.

폐쇄를 몇 달 앞둔 끽동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정부의 집창촌 폐쇄 정책이 과연 실효성 있게 진행될 수 있을까. 무더위가 전국을 강타한 2004년 8월, 끽동의 위태로운 여름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주안역에서 택시를 타고 “끽동으로 가주세요” 한마디 하자 운전기사는 “혼자 가세요?”라고 물으며 슬쩍 미소를 짓는다. 택시가 도착한 곳은 인천 외곽의 조용한 주택가 도로였다. 부근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택시에서 내린 곳은 학익초등학교 정문 앞 길. 그리고 그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자그마한 골목이 바로 끽동 집창촌이다.




- 40년 역사의 대표적 윤락·사창가

인천의 외곽지대였던 학익동의 변화는 끽동이 더 이상 이 공간에 머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최근 신설된 인주중학교와 끽동의 거리는 고작 몇 백 미터에 불과하고 학익초등학교에서는 도로 하나만 건너면 바로 끽동이다. 게다가 인근에 들어선 대형 아파트 단지까지, 끽동을 둘러싼 학익동의 전체적인 변화가 40여년을 지탱해온 끽동 집창촌에게 이제 그만 떠나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끽동 골목으로 들어서자 업소마다 윤락녀들이 나와서 “여기서 놀다가”라고 외치며 호객 행위를 시작했다. 윤락녀들은 20대 초중반의 늘씬한 여성들로 서울 집창촌에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몇몇 윤락녀들은 세라복까지 착용하고 손님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가지 눈길을 끈 부분은 불이 꺼져 있는 가게가 상당수라는 점. 끽동 골목의 양 쪽 입구 부근 가게는 대부분 영업 중이었지만 골목 안쪽의 가게는 절반 이상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미 자진 폐쇄가 이뤄지고 있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불이 꺼진 업소는 대부분 여름 휴가를 떠난 업소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한 구멍가게 앞에 모여 있는 업주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업주들에게 다가가 취재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자진폐쇄 시한이 다가오는 데 어떻게 준비 중이냐고 묻자 이들은 “폐쇄는 말도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보상을 전제로 도장을 찍었지만 그 이후 보상 관련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지 않다는 것. 오히려 계속되는 불경기와 정부의 집창촌 폐쇄를 위한 움직임으로 자신들만 사면초가로 내몰고 있다는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학익동 집창촌에서 3년째 윤락업을 하고 있다는 업주 김 모씨는 “처음 갖고 들어온 1억 7천만원을 모두 날리고 빚까지 1억원을 졌다”고 하소연하며 “죽어도 끽동을 떠나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권리금 3천 5백만원에 보증금 2천만원으로 학익동 집창촌에 업소를 마련한 김씨는 그 동안 6명이나 되는 윤락녀가 도망을 가면서 이들에게 선불로 준 돈 1억여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게다가 계속되는 불황으로 매달 2백만원씩 나가는 집세도 못 내 빚까지 끌어 쓰며 지금의 처지에 이르렀단다.

“애들(윤락녀)이 모두 도망가고 이제 한명 데리고 장사를 하고 있다”는 김씨는 “이제 여기서 나가라면 도대체 어디를 가라는 얘기인지, 방 한 칸이라도 얻을 돈은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며 한숨을 내쉰다.


- "어디로 가란 말이냐" 일부업주들 심한 반발

이렇게 심한 반발 의사를 보이고 있는 업주들이 11월 자진 폐쇄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업주 강모 씨는 “ 당시에는 분명한 보상이 이뤄진다고 했었지만 이후 아무런 얘기가 없다”면서 “정당한 보상이 없다면 자진 폐쇄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주 이모 씨는 “그 때 도장을 찍은 이유는 단 한 가지 ‘연말까지 단속을 안 하겠다’는 조건 때문이었다”며 “그런 사탕발림으로 도장을 받아가더니 정말 단속이 없어졌지만 보상 얘기도 전혀 없이 폐쇄 시한만 다가온다”며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주변 학교들을 고려하면 이 지역은 청소년 보호구역이어서 폐쇄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업주 박모 씨는 “집창촌 부근에 학교를 세운 것이 이상한 일이지 어떻게 우리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아가씨들의 반응은 대부분 “다른 데로 가면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이곳이 폐쇄된다고 해서 직업을 바꿀 생각은 없다는 얘기. 올해 2년째 윤락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최모 양(23)은 “여기가 폐쇄되면 다른 지방으로 갈 예정이다. 이번에는 남쪽으로 내려가 볼 생각”이라며 “한번 발을 들여놓기가 어렵지 그 다음에 옮겨갈 곳은 많다”고 했다.

세라복을 입고 손님들을 기다리던 박모 씨(24)은 성남에서 윤락녀 생활을 하다 몇 달 전 이 곳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세라복을 입는 것 역시 성남에서 일할 때를 응용한 것”이라는 박 씨는 “성남에서 같이 일하던 동생이 서울 답십리 남성휴게실에서 일하는데 그 쪽이 조금 힘들어도 벌이가 좋다는 얘기를 들어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독립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으로 화제가 된 출장마사지를 해볼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살인사건을 비롯해 많은 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기자의 얘기에 이들은 “어디 가나 위험하기는 매한가지”라며 대단치 않다는 반응이었다.


- 윤락녀 직업전환 프로그램 준비 중

오는 9월 23일부터 시행되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은 집창촌 폐쇄와 동시에 윤락녀들의 사회 복귀를 위한 직업전환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하지만 끽동에서 만난 윤락녀들의 반응은 대부분 “쪽 팔리게 그런데 뭐 하러 가냐”는 것이었다. 박 씨는 “정작 직업을 바꾸고 싶다면 혼자서도 다른 일을 배울 수 있다”면서 “다만 이만큼 큰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얘기했다.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시행에 대해 업주들은 “우리만 죽으라는 얘기”라며 한숨이다. 업주 박 씨는 “애들에게 절대 유리한 법이기 때문에 우리는 9월이 오는 게 두렵다”며 “보상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빨리 이 짓을 그만두고 싶다”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끽동을 떠나 돌아가는 길. 주안역까지 가기 위해 탄 택시 운전기사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미 2년여 전 끽동을 숭의동 383 일대의 속칭 ‘옐로 하우스’ 부근으로 옮기는 계획이 추진되다 실패했다는 것.

이 택시기사는 “옐로 하우스 부근으로 끽동 윤락업소를 옮기기 위해 5층짜리 원룸형 건물이 3동 들어섰는데 결국 계획은 무산됐고 이 원룸형 건물은 최근 저렴한 가격에 일반인에게 임대됐다”면서 “끽동에서 온 윤락녀들에게 손님 빼앗기는 것을 우려한 옐로 하우스 측의 반대 때문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복 이나 드레스를 입고 유리창안에 곱게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옐로 하우스는 비록 나이와 외모에서는 수준이 떨어지지만 더 뛰어난 서비스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미 인천의 사창가 선호도는 젊고 늘씬한 윤락녀들이 기다리는 끽동으로 넘어간지 오래. 이런 상황에서 옐로 하우스와 끽동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옐로 하우스가 치명적인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끽동 사람들은 옐로 하우스로도 갈 수 없는 상황. 결국 이들에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

“아무렴 끽동이 없어지겠습니까?”라는 택시 기사의 물음은 과연 인천시가 보상 등 산적한 당면과제를 해결해 끽동 폐쇄에 성공할 수 있을 지에 의문일 것이다. 아니 2007년까지 전국의 집창촌을 모두 폐쇄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여부를 묻는 본질적인 의문으로 들렸다.

입력시간 : 2004-08-1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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