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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2군] 젊은 출판인의 충무로 블루스
"초심을 갖고 늘 새 희망을 품죠"
광고기획·출판편집 15년 외길, 작지만 전문영역에서 입지 다져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을 듣지 않고 자란 사람이 있을까. 이것 저것 기웃거리고 집적대다 헛탕치지 말고 하나라도 진득하게 이루어보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일이나 사업이 좀 잘 된다 싶으면 문어발식으로 뻗어 나가다 낭패를 겪는 일을 주변에서 적지않게 대하다 보니 한 우물 파기는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요새처럼 변화무상한 세상에서 한 곳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묵묵히 한 우물을 파는 사람들은 많다.

출판ㆍ인쇄업체가 밀집해 있는 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15년째 광고기획과 출판편집 일을 하는 신우기획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호 대표(41)는 스스로를 ‘2군’이라고 생각한다. 일찌감치 고등학교부터 공업계고교 인쇄과에 들어가 신구대학 출판과를 졸업한 후 오로지 이 바닥에서만 일했다. 초창기 일을 배우고 많은 일을 맡기 위한 욕심으로 새벽3시까지 근무하면서도 직원들 급여대기에 급급했던 어려웠던 시절에서 지금은 직원 7명이 안정된 일거리를 처리하는 중견 기획출판사로 성장했지만 김씨는 “늘 시작이라고 생각해 처음과 같이 일한다”고 했다. 1군이 되는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언젠간 메이저로 승격하겠지요"

2년제 대학(옛 전문대학)에서 현장ㆍ직업교육을 받고 생업에서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김씨는 철저한 역할과 능력 신봉자다. 학력이나 나이 등은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도 그도 1989년 창업 후 직원들 급여주기가 어렵거나 고생스러울 때는 식당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단다.

“대학 출판과 졸업생 중 10%만이 이 업계에 남아 일하고 있을 겁니다. 재학 중 실습을 나가 현장의 어려움을 보면 졸업한 뒤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한 경우도 많고, 목표의식을 갖지 못해 중도에서 포기한 경우도 많습니다. ”

작지만 자신의 전문 영역을 갖고 40대 초반에 사장 명함을 돌리고 있는 그는 요새처럼 구조 조정이다 뭐다 하며 명퇴 등 조기 퇴직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자신도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웃는다.

신우기획이 하는 일은 회사 이미지 등 광고기획과 사보 브로슈어 포스터 상품카탈로그 제작과 신문이나 도서 등의 편집.

김씨의 사무실 안팎에는 ‘신우기획’이란 사명 옆에 ‘노동조합 홍보연구소’란 이름도 커다랗게 붙어있다. 회사에서 만드는 사보처럼 노동조합이 발행하는 노보나 노조소식지 포스터 등을 좀 더 새롭고 전문적으로 만들어주려고 시도한 영역 확장의 일환이다.

노조 포스터 등의 단골 메뉴인 불끈 쥔 주먹과 팔뚝, 붉은 머리띠, 구호 등이 일반인들에게 강성 이미지를 주고, 눈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 김씨는 노조와 노조원들이 말하려고 하는 내용이 보다 잘 전달될 수 있는 홍보 방안과 기법을 찾기 위해 이 연구소를 지난 5월 만들었다. 곧 홈페이지도 만들어 이 곳에 있는 디자인 등을 노동조합들이 내려 받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도움을 주고 고객 확보에도 나설 계획이다. 금전적이나 인적 구성면에서 취약한 노조의 홍보력을 지원하고 수익도 얻자는 것이다.

노보의 편집단가는 사보에 비해 낮아 수익에서는 뒤지지만 노조와 사용자, 시민들 모두에 도움이 되는 노보를 만드는 일은 사보를 만드는 것보다 보람이 크다고 그는 말한다.


- 마케팅이 아닌 일로 승부하는 원칙주의자

신우기획은 국내 주요 은행들의 노보와 전단, 활동보고서 등의 제작을 대행하고 있으며 조흥은행과 신한은행의 합병을 반대하는 전단 제작 때는 여자노조원과 가족인 딸을 등장시키고 ‘대통령님 약속은 소중한 거래요’라는 제목을 달아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자기 틀과 관행?젖어 새로워지지 않으면 낙오한다. 늘 쓰는 글씨체와 편집도 새롭게 하도록 노력하자. 항상 처음과 같이 일하자”는 신조를 갖고 있는 김씨는 고교 입학 때 정한 삶의 방향을 그대로 밀고 가듯 원칙론자다.

“일거리를 따내기 위해 영업사원을 사용하는 등 마케팅 활동은 하지 않고 있어요. 마케팅이 아니라 일로 승부하려고 합니다. 일을 잘 해 놓으면 물어 물어 찾아오는 것을 경험하고 있거든요.”

적?인원으로 잦은 밤샘작업 등 근무조건이 열악하기로 소문 난 출판업계에서 그의 업체는 어떤가.“일이 몰릴 때는 밤 10시까지 근무하기도 하지요. 지난 3월부터 격주로 토요일을 쉬고 있는데 앞으로 주 5일 근무를 할 생각입니다. 같은 고생을 해 본만큼 직원들에게 잘해 주고 싶다”고 했다.

돈은 많이 벌지 못했지만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낀다는 김씨. 새로 자신의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당부도 잊지 않았다. “출판업이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쉽게 뛰어들었다가 쉽게 포기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돈벌이 보다 보람을 갖지 못하면 이 일은 힘들어요. 돈 벌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출판일, 기획일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머무르지 않고 늘 새롭게 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 보람을 찾으며 당당한 2군은 화려하지 않아도 우리 시대의 주역이다.



글·사진/ 안재현 대기자 jhahn@hk.co.kr


입력시간 : 2004-08-1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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