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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劍 앞에 선 검찰
비리 정치인 잇따른 무죄·석방으로 검찰위기론 확산
위기돌파 카드로 대대적인 '10월 사정설' 흘러나오기도




“나 떨고 있니?”

요즘 검찰을 둘러 싸고 있는 심상치 않은 기류는 드라마 ‘모래 시계’에서 죽음을 눈 앞에 둔 태수(최민수 역)의 독백이 돼 검찰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 자금 수사에서 비리 척결을 앞 세워 쾌도난마식 질주를 했던 검찰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최근 검풍(檢風)에 스러졌던 이들이 하나 둘 살아나면서 검찰을 위협하고 있고, ‘중수부 폐지, 고비처(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을 내세운 정부 여당의 ‘검찰개혁론’이 탄력을 받으면서 검찰은 그야말로 태풍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지난 7월 21일, 대선 때 불법 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자민련 이인제 의원(충남 논산ㆍ금산ㆍ계룡)의 보석을 둘러 싸고 벌어진 검찰-법원-변호인 간의 신경전은 검찰의 현주소(위기)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검찰은 이 의원이 보석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강하게 반발했지만 법원은 변호인측의 보석 신청을 받아 들여 이 의원을 전격 석방했다. 법원이 무죄를 다투는 상황에서 보석을 허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이 의원 쪽은 “불법 대선 자금과 관련해 구속된 정치인 가운데 보석을 허가 받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거듭 ‘무죄’를 주장했다. 혐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을 보석으로 석방한 것은 사실상 재판부가 이 의원의 손을 들어준 것과 마찬가지라며 법조 주변에서도 무죄 가능성을 제기, 선고를 앞둔 검찰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 의원 석방 후 5일 뒤인 7월 26일, 현대건설로부터 비자금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법정 구속된 박광태 광주시장이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나 검찰에 또 한번 충격을 주었다. 대검 중수부의 한 관계자는 “피고인 스스로 자백한 혐의마저 (법원이)부인하면 어떤 증거를 제시하란 말이냐”며 불만과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인제 의원 사건을 포함해 현재 구속중인 다른 정치인 재판에도 영향을 줄까 걱정된다”고 속내를 털어 놨다.


- 정치인 줄줄이 석방, 검찰 위상 추락

대검 중수부는 지난해 가을부터 올봄까지 여야 비리 정치인을 무더기로 구속했으나 법원의 1, 2심 재판을 거치며 줄줄이 석방돼 검찰의 위상이 크게 추락했다. 특히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일한 인사들이 잇달아 ‘자유의 몸’이 된 점이 두드러졌다.

한화로부터 10억원 받은 혐의로 지난 1월 28일 구속수감된 이재정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 3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아 풀려났다. 불법 대선 자금 32억6,000만원을 모금한 혐의로 1월28일 구속 수감됐던 열린우리당 이상수 전 의원은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돼 7월 8일 석방됐다. 롯데그룹에서 3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이 떨어졌던 여택수 전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은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7월 8일 자유의 몸이 됐다.이 밖에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법정에 섰던 노 대통령의 오랜 지기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선봉술 전 장수천 대표도 지난 4월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다.

앞으로 구속중인 거물급 정치인들이 무죄나 집행유예로 풀려날 경우 검찰은 표적 수사를 자행한 ‘정치 검찰’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는 곧 검찰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당장 이인제 의원과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재판 결과가 검찰의 목줄을 쥐고 있다.

이 의원은 대선 직전인 재작년 12월초 자신의 공보 특보였던 김모씨를 통해 한나라당이 제공한 불법 자금 5억원 중 2억5,000만원을 전달받은 혐의로 지난 6월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최근 두 달여에 걸친 법정 공방에서 이 의원이 보석으로 석방되는 등 검찰은 불리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특보의 계좌 추적을 소홀히 해 재판부로부터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를 의심 받게 한 데다 김씨의 법정 진술이나 이 의원 집에 대한 현장 검증에서 검찰측 주장의 상당 부분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결국 8월 12일 재판에서 이 의원이 받았다는 2억5,000만원의 행방과 관련, 김씨의 계좌 추적?쟁점이긴 하지만 검찰이 종전의 상황을 반전시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7월21일 법원의 보석허가로 석방된 이인제 의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왕태석 기자

8월 13일 선고를 앞 둔 서청원 전 대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검 중수부는 7월 9일 대선 직전 한화그룹과 썬앤문그룹에서 각각 10억원과 2억원의 불법 정치 자금을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서 전 대표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추징금 12억원을 구형했다. 그러나 서 전 대표는 한화, 썬앤문 어느쪽으로부터도 돈 받은 사실이 없다며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서 전 대표측은 “한화그룹 10억원 건은 돈을 건넸다는 김연배 전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는 데다 검찰이 유력한 증거로 삼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미국발 팩스(10억원을 건넸다는)가 신빙성이 떨어지고, 썬앤문그룹 2억원 건은 반박 자료가 충분해 ‘무죄’를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에 체류중인 김 회장이 귀국을 수차례 번복하고, 8월 18일과 20일 중 김 회장의 출석을 전제로 재판을 진행하려던 재판부가 돌연 13일에 선고를 하겠다고 한 것은 서 전 대표에게 유리한 징후라고 해석했다.


- "개혁 빌미 될라" 검찰 노심초사

검찰이 이인제ㆍ서청원 두 거물 정치인의 재판 결과에 노심초사하는 것은 이들이 무죄나 집행유예로 풀려날 경우 검찰의 체면이 깍이고 두 정치인의 반격을 우려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여권이 중수부를 폐지하고 고비처를 신설하려는 검찰 개혁의 빌미가 돼 검찰 전체가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절박함이 커다란 부담이다. 중수부 폐지를 반대한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후임으로 송광수 검찰총장보다 사시 1기 선배인 김승규 전 법무차관이 발탁된 것도 검찰에 고민을 안겨 주고 있다.

최근 대검 중수부가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인 김진 주택공사 사장을 구속한 것을 두고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선 검찰 위기론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김진 사장이 임명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는 점에서 검찰이 전방위 사정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대선자금 수사때 선보였던 ‘검풍’을 재현, 검찰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고육책이라는 설명도 뒤따른다.

최근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10월 사정설’도 검찰위기론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즉, 8월부터 자료를 축적해 10월 즈음 정치인ㆍ언론ㆍ공직자 등에 대해 대대적인 사정을 한다는 관측으로, 이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 노선에 보조를 맞추는 행보로서 검찰 - 정부의 밀월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도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확실한 것은 검찰을 둘러 싸고 위기론과 돌파론이 난무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실은 분명 검찰이 위기의 계절을 맞고 있다는 상황을 방증하고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4-08-1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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