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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2군] 다시 일어서는 40대 가장
험난한 인생의 고갯길서 다시 희망을 새긴다
실직·전직의 아픔 딛고 정직과 정도로 새로운 발전




“요새 참 어려운 때입니다. 자기 집만 문제 없으면 모두가 그런 냥 무관심하지 말고 어떻게 식사는 잘 하셨는지 서로 물어보고 관심도 가지며 힘이 돼주세요”

‘아침 드셨습니까?’‘식사 하셨습니까?’란 오래 전의 인사가 유행처럼 다시 등장할 지도 모를 현실이다. 가장의 조기 퇴직과 대졸자의 취업난에 겹쳐 한 가정의 벌이는 여의치 않은데 쓸 데는 많다. 중ㆍ고등학생이나 초등학생을 둔 가정은 학원비 등 교육비를 세금처럼 따로 떼어놓아야 하고 1인 1휴대폰의 정보화 시대에서 집집마다 휴대폰 이용을 둘러싼 마찰도 적지 않다.


- 냉동기로 인생의 승부를 걸다

보통 가정들은 이래 저래 힘들다.

지난 4월 차량용 냉동기를 제조 판매하는 특장업체에서 8년간 근무하다 퇴사한 김준배(45ㆍ경기 용인시 수지읍 상현동 금호아파트)씨는 5번째 전직과 실직의 아픔을 맛보았다. 주위의 누구도, 부인도 선뜻 나서 도움이라고 권해줄 수 없었던 상황에서 김씨는 그간 했던 일, 즉 냉동기로 다시 인생의 승부를 걸기로 작정하고 일어섰다.

30대에 4번의 전직ㆍ실직을 맛보았던 것과 40대 중반에 겪은 실직의 상처는 달랐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김씨는 27세 때인 1986년 제약업체의 영업사원을 시작으로 병원에 약 공급을 담당하는 병원영업소장으로 수완을 발휘했다. 사람 좋아 사람을 좋아하고 일만 아니라 즐길 줄도 아는 멋쟁이였던 김씨는 업계에서 인기였다. 그래서 이듬해인 87년 기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한 살 아래 병원장 집 딸을 아내로 맞았다.

그러기를 8년, 김씨의 영업 능력을 높이 산 한 신생 화장품업체에서 김씨를 특채했다. 1년 반을 다닌 어느 날 지방에서 건설업체를 일으켜 사업을 확장하던 사장이 자금난으로 부도를 맞으며 화장품회사마저 문을 닫았다. 김씨는 타의로 직장을 잃었다.

의사 집안에서 의사 남편이 싫어 가난한 월급장이를 택했던 부인 김현주(44)씨는 “남편이 직장을 옮기고 처음 실직한 후 돈벌이보다 자기 일이 없는 것을 초조해 하는 것을 보고 남자에게는 자기 일이 있어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김씨는 3번째 직장으로 남성용 캐주얼 의류와 액세서리ㆍ가방 등을 제조 판매하는 의류업체의 영업본부장으로 영입돼 전국에 대리점 40여 군데를 개설하는 일을 해 냈다. 당시로는 적지 않은 보증금 2,000만원씩을 받고 대리점을 개설해준 후 물건을 공급하는 일이었다. 이 곳도 경영진이 문제였다. 당시 찜질방이 인기를 얻어 장사가 잘 되자 사장이 찜질방을 운영하다 부도를 냈다. 막판에 업주는 대리점을 만들어 놓고 문을 닫는 수법까지 썼다. 영업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땡 물건’ 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김씨는 시가로는 10억원 어치의 물건을 차떼기로 주고 1억원을 받는 장사에 내몰렸지만 대리점을 낸 영세 상인들의 피해는 만만치 않았다. 업주가 자취를 감추고 영업본부장이었던 김씨에게 모든 화살이 쏟아졌다. 돈을 받으려고 동원된 조직원 등에 의해 협박도 숱하게 당했다. 이 곳에서는 1년도 견디지 못했다.

자기 업종 외에 딴 데 눈을 돌린 참담한 결과였다. 김씨는 당시“사업은 전문업종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과 내가 사업을 하면 애꿎은 피해자들을 만들지 않도록 정도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 보따리 무역에서 쓴 맛

남의 밑에서 영업을 하는 일에 신물이 난 김씨는 영업으로 나선지 10년째인 95년 불안정하더라도 자기 사업을 해 보기로 결심, 러시아 하바로프스크로 보따리 무역을 시작했다. 김씨가 부인과 함께 가지고 간 남자의류, 액세서리는 중국산보다 품질이 좋아 대인기였다. 하지만 언어 소통 문제로 고려인들에게 중개를 맡긴 것이 문제였다. 물건은 팔리는데도 수금은 되지 않아 손에 남는 게 없었다. 자기 사업을 해 보겠다며 부인과 함께 나섰던 보따리 무역은 2차례로 막을 내렸다.

쓰디 쓴 경험을 한 김씨는 다시 영업 일에는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조용한 일’을 하며 순탄하게 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96년 경기 송탄에서 차량용 냉동기를 제조하는 회사의 총무부에 입사했다. 다섯 번째 직장이었다. 입사한 후 얼마되지 않아 회사의 기구 조정이 잇달으며 자재부로, 다시 생산관리부로 자리를 옮긴 김씨에게 입사 6개월만에 영업부 발령이 났다. 영업을 해온 전력이 문제였다. 처음엔 거절하다 할 수 없이 맡았다.

다시 영업맨으로 7년 여 자동차회사와 운수회사, 식품회사 등에 차량용 냉동탑과 냉동기를 팔기 위해 뛰어다녔다. 냉동차는 경기에 민감했다. 소비가 줄면 물동량이 줄고 바로 냉동차 수요에 반영됐다. 한 대라도 더 팔기 위해 덤핑 등 경쟁이 치열했다. 경기 침체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영업 부서에 대한 압박이 가중됐고 그 부담을 견디기 어려웠다.

올 4월 김씨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내와 고1 딸,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40대 중반의 가장으로 다시 원점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 막막했지만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회사가 어려워지며 “내 사업을 하겠다”는 소리를 자주하는 남편을 지켜 보아왔던 부인 김씨는 다시 시작할 굴곡의 삶이 두렵기도 했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한 번 사람을 신뢰하면 확실히 믿는 남편이 사업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지 않기를 소원했다.

다시 직장을 그만 둔 남편, 자기 일이 없어 초조하고 힘들어 하는 남편을 보며 김씨는 사업하다 집 하나 장만한 것 말아먹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저 사람 원대로 안 해 보면 이 세상 떠날 때 후회할 것 같은 걱정 등이 겹쳐 남편을 지켜 보는 길 밖에 없었다.

4개월동안 어디론가 사람과 일을 찾아 동으로 서로, 바다 건너 중국으로 부리나케 다니며 부인을 의아하게 만들었던 김씨. 그토록 손 떼기를 원했던 영업 맨 특유의 저력을 살려 차량용 냉동기 업체의 사람을 모으고 설득하고 중국의 한 업체와 합작 투자를 이끌어냈다.

김씨는 차량용 냉동탑과 냉동기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는 충남 천안의 한 특장업체에 냉동기 부품을 판매하기로 어렵사리 길을 뚫었다. 또 최근에는 ‘월드 써모’(World Thermo)란 회사를 만들어 사업자등록을 했다. 그 동안 뻔질나게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물정을 살폈던 중국 진출을 위한 발판이다.

결코 만만한 중국이 아니어서 주위의 우려도 적지않지만 김씨는 의욕적이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식품안전성에 관심이 높고, 이를 위해 냉동ㆍ냉장을 필요로 하는 식품 수송 등을 위한 냉동탑과 냉동기를 갖춘 차량의 수요가 늘 거라는 판단이다.


- 중국과 합작투자 성사, 의욕적 재출발

중국 산둥성 위펑시에 있는 중앙집중 냉방시설(공조) 업체와 합작 및 기술지원에 합의, 이 업체에서 차량용 냉동탑과 냉동기 제조공장시설을 완공하면 부품 공급과 함께 기술지원을 하고, 냉동기 공장이 자리를 잡으면 현지에 부품공장을 진출시킬 계획이다. 최근에는 중국 위펑시의 부서기, 투자유치주임, 기업체관리책임자, 투자공사 부주임 등이 김씨의 초청으로 한국을 다녀갔고 ‘합작관계가 진전돼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는 팩스도 보내 와 김씨는 큰 힘을 얻고 있다.

무언가에 골똘해 의욕을 보이다가도 침울해 하기도 하는 남편을 보며 “물어보는 것도 부담을 주겠다는 생각에 궁금하지만 안 묻는다”는 부인 김씨는 남편이 잘 될 때 겸손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부인 김씨는 틈틈이 대학 입시생 가정을 방문, 피아노교습을 한다. 지난 3월부터 남편이 월급을 가져오지 않지만 이제껏 한 번도 생계를 위해 자신을 피아노교습으로 내몰지 않은 남편에 게 감사하고 있다. “주위에서 걱정을 하며 피아노학원을 내라는 권유도 있고 그렇게 나서 볼 생각도 했다”는 김씨. 많은 학생들을 불러와 교습하며 건물 임차료 등 수지를 맞추고 남겨야 하는 학원은 자신의 일이 아닌 것 같아 고심 끝에 그만두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나누기를 좋아하는 김씨.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과 함께 나들이도 하고 외식도 하고 그렇게 이모처럼 가족처럼 지낸다.

새 삶을 열어가는 김씨 부부도 여느 보통 가정처럼 자녀교육 문제로 갈등하고 안도한다. 예진(17ㆍ고교1)과 예찬(10ㆍ초등3), 1남 1녀를 둔 김씨 가정은 일요일에는 온 가족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봉사한다.

“무슨 일이 닥치면 또 넘어야겠지요. 또 다른 시련이 온다 해도 같이 손잡고 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음악을 하는 사람이어선지 부인 김씨는 정이 많고 몸집 같지 않게 섬세하다. 눈물도 많다. 틈틈이 교도소 재소자 방문대열에도 동참하고 딸과 함께 꽃동네로 봉사활동도 간다.

다시 시작하는 이 땅의 많은 가정들처럼 40대 중반의 김씨 부부도 다시 새로운 길을 간다.

‘더디 가도 바르게 갔으면…’주위의 바람들처럼 열매 맺는 도전이 되기를 성원하자.



글·사진 /안재현 대기자 jhahn@hk.co.kr


입력시간 : 2004-08-1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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