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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25시] 애희
사유의 틀을 갠 '작업女' 스스로 핀업 걸이 되다
대중문화의 통쾌한 비틀기 'Pin-up Girl 프로젝트'






아트선재센터 지하 주차장에서 아티스트 애희를 만났다. 그녀의 첫 번째 개인전 "Pin-up Girl Project"가 하필 음습한 지하 동굴에서 열렸다. 마치 그녀만의 아방궁에 들어간 느낌이었는데, 한쪽 벽을 차지한 아담한 침대와 푹신한 쿠션이 그런 내 상상을 거들었다. 잡지의 표지 모델로 익숙해 보이는 섹시한 여자가 아슬아슬한 유혹의 몸짓을 하고 있었다. 팬티가 보이는 짧은 교복치마를 입은 날라리 여고생부터, 그물 스타킹을 신고 과감하게 엉덩이를 보이는 섹시녀, 침대에 요염하게 앉아서 요플레를 빠는 소녀, 닭다리와 오이를 들고 엽기적 포즈를 취하는 Pin-up Girl들은 실시간으로 변신을 했다. 아! 그런데 이 Pin-up Girl 정체를 뒤늦게 알아챈 나. “맞아요. 벽에 걸려 있는 Pin-up Girl들이 모두 저라구요.”


- 순진한 야생화 롤리타를 닮은 그녀

가수이자, 배우인 마돈나는 ‘마돈나 되기’를 통해서 멀티플레이를 추구했다. 애희는 ‘Pin-up Girl되기’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직접 핀에 꽂힌, Pin-up Girl이 되어버렸다. 벽 속에서 나온 그녀의 실물은 짧은 단발머리에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애희의 이미지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인상을 풍겼다. 영화 제5원소의 밀라요보비치의 외계에서 뚝 떨어진 신비스런 마스크를 가진 것 같기도 했고, 베티블루 37.2의 베아트리체 달의 관능적인 자태를 보이기도 했다. 그보다, 순진한 야생화 롤리타의 웃음을 닮은 것도 같다.

애희의 이번 Pin-up Girl 프로젝트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는 자화상이라기 보다는 분열된 자아상에 가깝다. 대중문화 속 이미지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Pin-up Girl 로 분한 애희는 타인이면서 동시에 분열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이번 Pin-up Girl 프로젝트의 컨셉, 섹슈얼한 이미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속내를 들킨 기분이 든다. 어떠한 담론 없이 잘 팔리는 대중문화의 무기가 섹스 코드이듯, 우리는 알게 모르게 대중문화 속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애희의 Pin-up Girl 프로젝트는 그 자체가 기호였다.

이번 “Pin-up Girl Project” 개인전은 애희에게 아주 특별하다. 첫 번째 개인전인 것도 이유겠지만, 그녀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일년 동안이나 준비를 해왔다.

“처음엔 혼자서 사진을 찍었어요. 그야말로 셀프 포트레이트였죠. 게다가 의상도 제가 직접 만들어 입었죠. 이런 노력의 결과로 문예진흥원의 지원을 따냈어요. 그 후로 스텝들을 모집했어요.” 스틸 촬영 팀, 영상 팀, 웹 홍보팀, 의상 팀, 메이크업 소품, 인쇄물 관련 편집디자이너 등이 프로젝트를 위해 모여들었다. “이 팀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생하는 관계예요. 의상 디자이너는 옷을 만들어 나에게 제공하고 그들은 그 옷을 입은 저를 사진으로 찍어, 내 이미지를 사용하죠. 옷은 혼자서는 인격체가 될 수 없는 물질이죠.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한데 제가 그 옷을 입음으로 이미지를 실현한 거죠.” 각기 다른 분야의 일원들이 모여 분업화, 또는 융화됨으로써 대중성과 객관성을 취득한 것이 이번 개인전에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 작가가 혼자 작업을 하면 개인적이고 주관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기존 방식을 벗어난 공동작업 방식은 새로운 작업 활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일년동안 스텝들과 함께 공동작업, 분업화된 작업을 해 나가면서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생겼어요. 혼자서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서로 토론을 통해 객관화되고 이미지들을 만들어 나갔죠. 어때요? 사진들을 보면 실제 모델 같지 않나요?”


- 한국 미술계에 던지는 충격과 신선함

한성대 서양화과를 나오고 동 대학원에 다니는 젊은 아티스트 애희(26)의 등장은 한국 미술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녀의 등장에 드디어 올게 왔구나! 하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는가 하면 미국의 신디 셔먼을 모戀求?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견해도 심심찮게 들린다. 미국영화에 나오는 여배우들을 패러디해 자신이 직접 모델이 되어 스틸 사진을 찍어내는 셔먼을 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신디 셔먼은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예요. 하지만 저랑은 다르죠. 신디 셔먼이 60, 70년대 특정지역 여성들을 대변했다면 저는 오히려 그 반대편에 서 있어요. 저는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해 내죠. 셔먼처럼 여성들의 대변인이 아니라 금세 잊혀지고 다른 것으로 쉽게 모양이 바뀌는 대중문화의 속성이 바로 저예요.”

그림을 못 그려서 설치미술을 했다고 말하는 그녀는 비밀이 없어, 오히려 비밀을 만들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대학 4년 동안 언제나 정체성 찾기에 골몰했다는 애희. “제 작업들은 일관적이지 않았어요. 중구 난방식으로 여기저기 집적이는 작업을 했죠. ‘애희는 어떤 아티스트다’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무척 힘들었죠. 저 자신조차 저를 규정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녀는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유쾌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시작한 연출사진 시리즈는 현란한 사진기법보단 어떤 상황을 연출하고 가벼운 반전으로 마무리 짓는 형태로 작업을 했다. 그 결과물들 중 하나가 The use of a textbook이다. 제도교육의 상징물인 교과서가 해가 바뀌면서 쓸모가 없어지는 것을 재래식 화장실의 휴지 대용품으로 쓰여지는 상황으로 연출해 냈고, garbage는 연애에 빠져 있던 시절, 밤새 쓰다 버리기를 반복한 청승맞은 느낌의 연애편지를 상상하여 만들어 낸 작품이다. 퇴짜맞은 남자와 치한방지용 속옷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상황을 연출해 냈다. 모두 유쾌하고 가벼운 이야기들이다. 이때부터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자신이 모델이 되는 셀프 포트레이트를 하기 시작한 애희는 작업을 통해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저의 성향을 찾은 거 같았어요. 멀티플레이어… 저는 어느 한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현대 문화와 닮았어요. 분열된 자화상이 바로 제 작품이고 저인 거예요.”

얼짱, 몸짱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카메라 폰, 디카로 수시로 내 모습을 찍기도 한다. 나는 금세 모델이 될 수가 있다. 개인 미니 홈피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시대에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며 나는, 동시에 대중문화 속 이미지의 하나이기도 하다. 대중문화의 세태를 애희의 Pin-up Girl 프로젝트는 적나라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는 Pin-up Girl이 되고 싶다. 아니, Pin-up Boy를 사랑하고 싶다. 우리는 주목받고 싶다. 더 솔직히 말하면, 얼짱, 몸짱이 되고 싶다.


- 당신도 스스로 핀업걸이 되어보라

애희의 이번 Pin-up Girl 프로젝트는 어느 평론가의 지적대로 ‘사랑스런 계집-되기 프로젝트’ 이기도 하다. 직접 지하주차장에 가서 그녀가 마련한 침대에 편히 쉬거나, 소녀처럼 방방 뛰면서 자신이 한번 Pin-up Girl 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조심하라… 마음속의 음탕한 자아들이 튀어나와 벽에 착, 달라붙을지도 모르니까.

참 까먹기 전에 얘기한다. 애희에게 연락을 하면 그녀가 입은 옷을 살수가 있다. 남자를 얻고 싶은 여자는 “남자 여러 명 잡을 드레스”를 사면되고, 도발을 꿈꾸는 여자라면 “위험한 드레스”를 권한다. 섹시 스타일을 원한다면 롤리팝 스타일 원피스를 추천한다. 남자들에게만 귀뜀한다. 그녀가 입었던 속옷도 판매한다고 한다. (http://pinup-girl.wo.to)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


입력시간 : 2004-08-1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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