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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추는 아이들 B-BOY
브레이크댄스 마니아 '20세기 아이들', CF 모델로도 활동
"발레나 재즈처럼 예술의 한 장르" 자부심 대단






강렬한 비트로 천장을 꽝꽝 울리는 힙합 리듬에 맞춰 젊은이들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는다. 두 다리를 쭉 뻗어 빙글빙글 회전을 하는가 싶더니 ‘ ㄱ’ 자 모양으로 다리를 꺾으며 순간 멈춤(freeze). 그러다 이내 팽팽하게 탄력 받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8월 19일 오후 7시께 서울 지하철 4호선 사당역내 ‘ 열린 마당’. 구내 TV로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던 시민들의 눈길이 일제히 쏠린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 관중들은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에서 중년 아주머니들과 양복 차림의 넥타이 부대까지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다. 순식간에 몰려든 200명 가까운 관중들이 무대를 겹겹으로 에워 싼다. 65세의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할머니는 “ 젊은이들이 너무 잘 해요”라며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위치를 찾기 위해 인파 속을 헤치고 들어 갔다. 회사원 박광호(33)씨는 “ 가냘픈 체구의 젊은이들이 고난이도 기술을 펼치는 게 놀랍다”며 환호를 보냈다.


- 2001년 독일 힙합댄스대회 우승

‘ 비보이(B-BOY)’. 브레이크 댄스를 전문적으로 추는 마니아들의 공연이다. 아직 일반인들에게 낯설지만,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을 갖췄다. 2001년 독일에서 열린 힙합댄스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국제 대회마다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날 단독 공연을 가졌던 ‘ 20세기 아이들’(비보이의 한 팀 이름)은 휴대폰 광고 ‘스카이’를 비롯해 CF나 뮤직 비디오 등에도 자주 등장하는 유명 댄스 그룹. 고3때부터 비보이로 활동해온 이형안(22) 군은 “2~3년 전과 비교하면 비보이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크게 좋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연을 보러 오는 분들의 2/3는 비보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나면 이들의 온 몸은 땀 범벅이다. 손바닥에 두텁게 굳은 살이 박혀 있을 정도로 단련된 몸. 여기저기 멍이 들지 않은 곳이 없다. 웬만큼 삐고 멍 드는 것은 부상 취급도 안 한다. 장마철 습기에는 자칫 손목이 돌아가 다치기 쉽다. 바닥이 얼어 붙고, 근육이 굳는 겨울은 더욱 위험천만하다. 이 군은 “ 평균 년 2회 정도는 부상을 당해 깁스 신세를 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상 기간에도 연습을 중단하지는 않는 게 불문율. 그것은 곧 다른 비보이들의 춤을 보면서 하는 ‘ 이미지 트레이닝’의 시간이기도 하다.

격렬한 춤 동작을 구사하는 만큼 통상 비보이들의 수명은 짧다. 20대 중반이면 이 세계에선 ‘ 노장’. 2002년 3월 결성된 ‘ 20세기 아이들’ 멤버 6명 중 3명은 22살 동갑내기. 다소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리더 박형준(22) 군은 “ 춤을 추는 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며 “ 춤이 활성화된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40대 비보이들의 활동이 왕성하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부천 상일중 1년인 막내 비보이 신현국(16) 군은 반에서 3등 안에 드는 우등생이다. 파워 무브가 특기인 대학생 최용원(20)군은 현재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유치원과 초등학생 대상 비보이 강좌를 맡고 있다. 그 같은 ‘이중 생활’은 다른 멤버들에게서도 확인된다. 오전에는 영어나 일어 같은 외국어를 공부하다, 오후에는 춤 연습을 하는 식이다. 모범생급이다.

“ 각종 공연과 CF, 강좌 수입 덕에 모두 집에서 지원을 받지 않고 생활을 꾸려 갑니다. 지금은 춤만 잘 춰도 밥을 굶지는 않거든요. 또 매일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춤 연습을 하지만 오전 6시 30분에는 일어나 영어 학원에 다니는 등 규칙적인 생활을 합니다. 처음에는 외아들이 춤꾼 된다고 걱정이 대단하셨던 부모님도 예전보다 오히려 착실해진 생활 태도를 보고는 믿어주시더군요.” ‘ 너클’이란 닉네임으로 잘 알려진 멤버 박진성 군(22)의 말이다.

사실 ‘ 20세기 아이들’은 비보이들 중 꽤 형편이 좋은 축에 속한다. 학교나 복지회관 걋?곳에서 춤 연습을 하는 다른 비보이들과 달리, 전용 연습 공간이 있다는 점은 큰 자랑. 지난해 12월 지하철 공사에서 사당역내 전용 연습공간을 마련해 준 것.

지난 2년 여 동안 지하철 등지에서 순회 공연을 무료로 꾸준히 벌여온 덕이다. “ 비보이들 중 초창기에는 지하철 바닥을 안 쓸고 다닌 아이들이 없었어요. 빗자루가 아니라 온 몸으로 말입니다. 마땅히 연습할 공간이 없다 보니 지하철 구내의 빈 공간만 보이면 자리를 틀고 바닥에 몸을 비벼댈 때가 많았죠.”


- 창조적 예술성에 스스로 열광

그렇게 춤에 푹 빠져 살다 보면 나이를 잊는다는 게 멤버들의 한결 같은 생각이다. 또래의 젊은이들처럼 미팅 하고, 술 마실 시간이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멤버 중 이성 친구가 있는 사람은 단 1명. 팀 전체의 회식도 겨우 한 달에 한 번 꼴. 이때도 체력을 생각해 멤버들 모두 담배와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 추다 보면 세월 가는 걸 몰라요. ‘어제 그 친구, 춤 예술이더라’ 하며 온통 춤에 대한 관심 뿐이죠. 그런데 주변에서는 여자 구 어쩌구 와이프가 어쩌구 하니 거리감이 느껴질 수 밖에요.” (박진성)

이처럼 비보이들이 여자 친구나 술, 담배보다 브레이크 댄스(비보잉)에 열광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구사할 때 느끼는 창조성의 구현을 꼽는다. 어른들은 길거리 아이들의 ‘불량한 짓거리’로 치부할 지 모르지만 ‘ 발레나 재즈처럼 예술의 한 장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들의 연습실 칠판 하단에는 ‘ 이마엔 땀을, 가슴엔 뜻을, 손에 바닥을’이란 문구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가슴에 품은 그 뜻을 묻자 멤버들은 입이라도 모은 듯 일제히 답했다. “브레이크 댄스가 발레나 재즈처럼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모을 겁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건성으로 생각하듯 10대 아이들의 얼치기 문화로 그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발전적 예술 활동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이들은 신발끈을 조여 맸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4-08-2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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