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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25시] 정초신
자유의 향취를 뿌리는 영화계의 멀티플레이어
영화 <몽정기>로 재치있는 성 이야기 그려낸 감독
블로그 폐인 자청, 통통튀는 의식으로 젊은이에게 인기


지나치게 세속적인 감독을 만났다.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완벽하게 성립되는 남자. 받은 만큼 일해주고, 노동에 대한 대가가 돌아오지 않으면, 쿨하게 돌아서는 그는, 석사학위 두 개를 소지한 최고급 룸펜이기도 하다. 우연히 연극영화과에 진학 해 20년 동안 영화와 인연을 맺고 산 이 남자는 자신의 영화 시나리오와 각색 작업까지 직접 참여하는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졌다. 그 동안 금기시 되었던 소녀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재치있게 그려낼 줄 아는 그는 몽정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감독, 정초신이다.

크다! 스타일 있어 보인다. 잘만 꾸미면 모델해도 손색이 없겠군… 도대체 몇 살이지?



- 전지현 보다 블로그를 좋아해?





9월 크랭크인에 들어갈 몽정기2로 요즘 한참 바쁜 정초신 감독의 첫 인상은 이랬다. 전체적으로 큰 체구에 큰 키, 큰 머리? 를 가진 그를 본 순간 감독 맞아? 라는 느낌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다. 감독보다 PD의 분위기가, PD보다는 시나리오 작가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 온 그. 브릿지를 넣어 염색한 머리며, 알록달록한 힙합 스타일의 바지며, 왼쪽 귀에서 반짝거리는 귀찌가 그를 그렇게 보이게 했다. 몽정기2 시나리오 각색작업으로 강남의 ‘무늬만 호텔’ 인 여관에서 날밤을 샌다고 하더니 역시나 부스스한 얼굴로 다가왔다. ‘아 역시 감독이란 직업은 이래서 피곤한 거구나’ 안쓰런 맘이 들면서도 왠지 웃음이 났다. 박학다식하고 유창한 언변으로 둘째 가라면 서운하다 싶을 만큼 끼 많은 그는 블로그 폐인을 자청하는 매니아였기 때문이다. 혹시 간밤에 블로그를 하느라 저리 피곤한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음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전지현 좋아하세요?” 라고 물으니 “아뇨, 블로그를 좋아합니다” 라고 둘러대는 그의 책상 앞에는 이미 전지현이 핀업걸이 되어 있었다. 전지현의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d라는 깜찍한 광고를 보고, “그녀의 미소 안으로 파고 들어가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고 고백한 그의 글을 이미 읽은 적이 있다. 정작 영화감독이면서 영화에 대한 기사보단 블로그를 예찬하는 기사가 더 많은 그는(지금 당장 검색 창에다 정초신을 누르면 확인 된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감독의 이미지를 깨어 버린다. 뭐랄까? 꼭 감독이 아니어도 여러 가지를 잘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누구와 이야기 해도 말이 잘 통할 것 같은 사람. 그의 블로그, ‘감독으로 사는 법’이라는 방에는 자신의 일상과 인생 철학이 낱낱이 공개되었고 또한 맛깔스럽게 담겨져 있다. 어린 시절 꿈이 시인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그의 문장은 감수성이란 빛깔로 칠해져 있었다. 코미디만을 다루었던 그의 영화를 생각하면 의외일 만큼 시적이다.

“불행하게도 감독은 일종의 공인이다. 영화를 만들어 놓고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인격모독에 가까운 비방을 듣거나 읽어야 할 때 감독은 공인이라는 소름이 돋는다. 좋은 영화를 만들면 어디 가도 목에 힘이 들어갈 수 있지만 혹여 관객의 외면을 받거나 언론의 공격을 받은 영화를 만들게 되면 조용히 고개 숙인 채 죄인처럼 지내야 한다.”

일기 형식의 그의 글에 영화감독 지망생이나, 익명의 이웃들은 위로의 답 글을 달아놓기도 한다. 그가 블로그에 중독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따뜻한 익명의 손길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힘을 주고 있는 블러거들 모두가 누군가 또 다른 블러거들에 의해 희망의 비에 젖게 되길 바란다”라고 말할 정도니까.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블로그 안에서, 감독은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역시나 그 안을 헤엄쳐 다니다 보면 그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놀라울 만한 문장력과 장애인을 돕기 위해 경매활동까지 하는 그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블로그 안에 살아 숨쉬고 있는 깨어 있는 의식 때문이다. 그의 나이는 올해로 마흔 셋이다.


- 무정체로 정체성을 꿈꾼 괴짜?

그는 할리우드 키드가 아니었다. 그의 인생에서 영화는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중앙대 토목공학과를 3년 다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일년 재수 끝에 한양대 연극 영화과에 진학했다. 그때까지 그가 본 영화는 놀랍게도 주말의 명화까지 합쳐서 고작 13편에 불과했다. 어릴 때부터 글 솜씨가 좋았던 그는 연기력이 없음에도 논술시험에서 만점을 받고 당당하게 연극영화과에 입학한다. 그는 학부 때 전공이 무려 네 가지나 될 정도로 괴짜 학생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연극 영화 방송 광고. 학년이 바뀔 때마다 전공도 같이 바꾸었다는데 그는 이에 대해 “무정체로 인해 정체성을 꿈꾸었다” 고 변명한다. 프로듀서를 하다가 감독이 되었고, 동시에 시나리오 작가인 그는 멀티 플레이형 인간인 것이다.

영화에 대한 지식과 경험 없이 들어온 터라, 영화 ‘대부’를 논하는 자리에서조차 동기들의 대화에 끼지 못했던 그는 거기서 자극을 받고 그 후로 도서관에 있는 영화관련 서적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으면, 일본 독일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 타국의 대사관을 찾아가 그 나라의 영화를 보기도 했다. 조금 똑똑해진 그는 ‘조국에서 배울게 없어지자’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미 서부지역에서 영화매체학(NYU,1991)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 동부에서 영화제작학(USC,1994)을 공부한 후 95년 무작정 귀국해 영화 다섯편을 제작한다.(귀천도, 미스터 콘돔, 할렐루야, 퇴마록, 엑스트라) 98년부터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2년 동안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틈틈이 쓰던 시나리오로 영화감독 데뷔를 한다. 바로 영화 자카르타(2000)이다.

최근 그는 몽정기2 공개 오디션을 통해 신인 강은비를 주연으로 캐스팅 했다. 지금 신인 배우들을 데리고서 한창 리딩 연습 중이라는데, 영화의 내용은 몽정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학생이 교생을 짝사랑하는 기본적인 내러티브 안에 소녀들이 성에 눈 떠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 영화이다. 이미 그의 손을 거쳐 각색작업을 마친 시나리오가 더욱 재밌어진 이유는 성박사라는 그의 분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많아 성에 대한 지식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백과사전을 통해 이미 섭렵했죠. 포르노 영화를 예술 영화 보듯 했고, 또래 친구들에게 언제나 성 상담을 도맡아 하다시피 했죠.” 정초신 감독 아니면 몽정기를 연출할 자 또 있을까 싶은 말이었다.

“몽정기에 비해 몽정기2가 기대에 못 미칠까 그런 걱정은 당연히 하지만, 몽정기보다 더 나은 작품이 될 것입니다. 기대해도 됩니다.” 그렇다. 몽정기를 흥행으로 이끌기까지 감독의 계산된, 세심한 연출력이 한 몫 했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이번 몽정기2도 그의 손을 거치면 흥행은 따 놓은 당상이다.

지금까지 영화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영화를 남남북녀라고 말하는데, 이유를 묻자 “최근에 만들었던 작품이 언제나 애착으로 남아있는 작품이죠. 몽정기2를 끝내고 나면 아마도 몽정기2라고 답할 것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답하는 그.


- 깐느의 빨간 주단을 그리다

블로그에서 활동하는 그의 닉네임 ‘지중해’에는 그의 푸르른 꿈이 담겨져 있다.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시절 칸느에 갔을 때 보았던 푸른 바다, 지중해를 보고 언젠가 칸느의 빨간 주단을 밟을 날을 그는 꿈꾸었다. 칸느 비치에 누워 지중해의 따사로운 물결을 느끼며 따뜻한 지중해의 잔잔한 파도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게 되는 날을…. 그의 진정한 꿈은 더 낭만적이다. “내가 가는 길이 다른 사람의 꿈이 되는 것” 이보다 멋있는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마음이 아픈 자, 슬럼프에 빠진 자들은 그의 블로그로 산책을 가보라. 몇 분 안 있어 당신은 그에게 이웃이 되자고 프로포즈 할 것이다. 두고 보라. (blog.naver.com/chosinege.do)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


입력시간 : 2004-08-25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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