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마법사가 만든 소인국으로의 낯선 초대끼와 파격으로 똘똘 뭉친 미술계의 스타

[감성 25시] 함진
공간의 마법사가 만든 소인국으로의 낯선 초대
끼와 파격으로 똘똘 뭉친 미술계의 스타


함진을 만났다. 처음은 아니다. 어느 늦은 밤 홍대 앞 기찻길 옆에서 아티스트 패거리 들 속에 그가 끼어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스타일리스트였다. 가죽 샌들에 힙합 스타일의 옷을 입은 그는 춤추는 비보이 같이 보였다. 실제로 댄스 가수가 되려고 했을 만큼 춤과 노래에서 수준급이라고 했다. 머리를 하나로 묶은 모습은 일본 사무라이 같았는데 어릴 적 검도선수를 꿈꾼 적도 있다고 말했다. 참 재능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맥도널드 햄버거가 두 입을 벌리고 사람을 잡아먹는 뒤집어진 이야기와 장미가 섹스하는 이야기를 하는 그가 범상치 않아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옆에 있던 아티스트가 그는 대학교 3학년 때 중견 작가들 틈에 끼어 단체전을 가진 신동이며 4학년 때 사루비아 다방의 후원으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대한민국 최초 군인신분으로 광주 비엔날레에 참가한 기록을 가진 미술계의 스타라고 귀띔해 주었다. 27살 나이에 비해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함진 공간의 마법사’라는 다음 카페의 회원이 되게 만들었다.


- 표류하는 인생 그려낸 다큐 <섬>

pkm 갤러리의 문을 여는 순간, 내 존재는 한없이 커 버렸다. 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이어도 돋보기를 들이대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초미니 인형들 속에서 나는 거인이 된 것이다. 친절하게도 갤러리 바닥에 돋보기가 미리 준비돼 있었다. 청바지 입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호기심으로 바닥에 엎드려 탐사를 시작! 공간의 마법사 함진이 만들어낸 소인국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까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섬’ 이었다.

걸리버가 소인국에 표류했을 때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인간들이 낯설고 기괴해 보여 외계인의 섬에 들어온 기분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네 인생, 그것이다.

“한 인간이 태어나 자라면서 겪는 과정이 ‘섬’ 안에 있어요. 타락하기도 하구요. 잘못을 저지르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얘네들은 그 안에서 쇼생크의 탈출처럼 탈옥도 해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섹스도 하죠. 모두 자유를 갈망하는 자유의지의 인간들이에요. 이번 전시회 제목도 ‘애완’이잖아요. 사랑하며 자유롭게 놀다.”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는 점토 인형들은 모두 함진을 닮았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조물락 거리며 만들기를 좋아했다던 함진은 찰흙을 갖고 놀며 순진한 유희정신으로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 후 함진은 완제품 대신 조립품을 사서 분열된 조각들을 주섬주섬 껴 맞추며 놀이에 빠져든다. 그의 손을 거치면 아름답다고 믿고 싶었던 형상들이 괴물처럼 일그러지기도 하고, 외눈박이가 되기도 한다. 그가 아무리 기괴한 것을 좋아하고 엉뚱하다고 해서 그 원인을 폐소 공포증을 비롯한 자폐증을 앓았기 때문일거라는 근거 없는 추측은 나이브한 생각일 뿐이다. “사물을 바라볼 때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이면을 발견하기도 하구요. 순간의 영감으로 작품을 만들기도 하죠. 비교적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통찰하려고 노력해요.”

그의 점토 인형들은 하나같이 눈알이 톡 튀어나오고 얼굴은 찌그러졌으며, 손과 발은 말라 비틀어진 외계인 이티와 닮았다. 하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점토 인형들은 태초의 인간이 태어날 때의 모습이다. 아기가 자궁에서 나와 울 때의 찌그러진 표정을 상상하면 된다. 함진의 작품은 깊게 생각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게 될 뿐이다. 단순한 유희정신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은 재미있는 발상과 사고의 전환, 뒤집기를 통한 유쾌한 반전을 노린다.

함진의 작품은 만드는데 재료비가 들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쉽게 말해 주변에 널려있는 것들, 죽은 벌레부터 머리카락 그리고 각질이나 손톱, 음식 쓰레기들은 작품 재료로 재활용된다. 일상적인 재료는 그의 손을 거치면 한편의 픽션이 되기도 磯?


- 점토인형은 태초의 인간

어느 날 함진은 창가 미세한 틈에 죽어있는 풍뎅이를 발견하고, 본드를 발라 고정시킨 후 마른 나뭇가지 끝에 올려놓고 “날아라 풍뎅이”를 만들었고, 또 죽어 있는 파리를 박제로 만들어 꽃밭에서 인간과의 키스 장면을 연출한 “애완(러브, 셋)”도 있다. 그뿐인가. 머리카락을 이용해서 지은 집 한 채를 보면 우리는 돈 들지 않고 프로포즈할 수 있는 깜찍한 아이템을 하나 소개 받는 셈이 된다. 애인의 머리카락을 하나 훔치는 거다. 그리고 함진이 만든 것을 흉내내 집 한 채를 지어 애인에게 선물한다. 프로포즈할 때 멘트는 각자가 알아서 하길 바란다. 바보가 아니면 알아들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라면을 먹으면서 작품을 구상한 결과 농심 사발면 속에 들어있는 건더기 스프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컵 라면 용기 위에 파 머리를 한 점토인형과 어묵 머리를 한 점토인형이 찜질방에서 사우나를 즐기기도 하고, 풍덩 사발면 탕 속에 다이빙을 하기도 한다. 더 재밌는 작품도 많다. 어머니의 뱃살을 보고 반짝 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른 그는 뱃살 사이에 아기 부처를 집어 넣어 부처가 뱃살에 깔린 모습을 연출해 냈다. 익살스런 발상에 두 손 두발 다 들 지경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는 자신의 백일 사진을 하나하나 조합해서 ‘아기 함진’을 만들어 내었다. 배꼽 속에 인형을 집어 넣고 수십 배로 확대해 찍은 자화상을 보고 모태로 회귀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쩐지 익살이 개구쟁이 스머프가 안기고 가는 이쁘게 포장된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든다. 선물인줄 알고 뚜껑을 열면 펑하고 터져서, 모두 한방에 당하고 마는 유쾌한 폭탄선물 말이다.

그래선지 그의 작품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은 소유욕 마저 불러일으킨다. 갤러리를 방문한 사람들은 어느새 그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호주머니로 슬쩍 하나보다. 도난 당하는 작가의 작품 1호가 함진의 것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나면 똑같은 질문을 한다. 왜 이렇게 작게 만드냐고. 그의 대답은 늘 한결 같다. “엉뚱한 곳에서 아이디어가 생기는데, 그럴 때 작품을 손쉽게 만들려면 작아야 하죠. 운반하기도 편하고 늘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으니까요.”


- 작은 것에 매력 느낀 큰 아이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함진이 작품을 작게 만드는 이유를 안다. 함진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바로 거인병. 초등학교 5학년 때 그의 키는 170 센티미터가 넘었다. 12살에 성장이 멈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 후로 그는 아주 조금 밖에 크지 못했다. 또래 친구들 속에서 그는 언제나 거인이었다. 얼굴도, 손도, 발도, 몸통도 컸던 함진은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것들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이쑤시개나 핀셋 등을 이용해 사람 눈과 코를 만들어 초미니 사이보그를 탄생시켰다. 작은 레고판 같은 세상에서 함진은 인간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사이보그 인간들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오프닝 때 관람객의 부주의로 작품이 파손되기도 했어요. 작품이 작다 보니 보이지 않았던 거죠.” 부주의하면 우리조차 스머프 마을을 침범한 사나운 마법사 가가멜이 될지도 모른다.

그의 ‘섬’ 안에서 변태, 가학, 편집, 폐쇄, 자폐라는 심리를 읽고 동일시를 느꼈다면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심리 상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가 창조한 세계를 바라보면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누군가에 의해 재창조된 소인국 같다. 영화 투루먼 쇼의 그것처럼,

인생은 정말 한편의 ‘쇼’일지도 모른다. 함진이라는 공간의 마법사가 만들어낸 ‘쇼'에 가면 그 나라를 살짝 훔쳐오고 싶은 욕망이 든다. 이런 심리마저 그곳에서는 정상으로 인정받을 것만 같다. 그러자 함진이 한마디 한다. “점토인형이 탐나도 호주머니에 슬쩍 하진 마세요. 제 분신들이거든요. 잘 이야기하면 그냥 줄 수도 있으니까요.”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09-15 13:46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