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인생, 나는 행복한 목수전문번역가·목공 두 가지 삶, 돈벌이 보다 '자기 일'에 보람

[우리시대의 2군] 고재운씨의 아름다운 도시탈출
살맛나는 인생, 나는 행복한 목수
전문번역가·목공 두 가지 삶, 돈벌이 보다 '자기 일'에 보람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갖거나 사업을 해, 정년을 맞고 자수 성가한 평탄한 삶도 있지만 시행착오와 반전을 거듭하는 보기에 고단한 삶도 있다.

변화와 부침이 하루가 다른 인생사와 세상사에서 평생직장은 점점 옛 말이 되고 평탄한 삶의 자리도 점점 좁아 드는 것을 보며 이제 제2, 제3의 출발을 하는 모습들이 낯설지 않다.

고위 공직에 있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위해 자리를 털고 집으로 돌아온 이야기가 아직은 우리에게 먼 곳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직장에 장기 무급 휴가원을 내고 전셋돈을 빼내 온 가족이 해외여행에 나서고, 늦게 자신의 일을 찾아 안정된 자리를 박차는 파격들이 잇달고 있다.

전문 번역가인 고재운(41) 씨의 삶의 터전은 경북 경주시 안강읍 하곡리의 오래 전 폐교된 하강초등학교 안 목공방이다. 그에게 번역 일은 생계수단이며, 목공 일은 뒤늦게 자신을 발견해 1년 전 시작한 자신의 일이다. 고 씨는 한 달에 한 번 시골 삶에서 서울로 나들이, 출판사에 들러 번역 일거리를 상의하고 자신이 목공예를 배웠던 경기도 광주의 공방을 찾아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일본 소설 등을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번역하고 한 공중파 방송에는 일본 드라마를 우리 글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방송사가 일본 TV드라마를 녹화한 테이프와 대본을 그가 사는 공방으로 보내오면 고 씨는 드라마를 보며 번역해 이메일로 보낸다. ‘골든볼’‘고쿠센’‘이상적 결혼’‘오버타임’‘사랑을 몇 년 쉬었습니까’‘동물병원 선생님’‘사랑하고파’등이 그의 손을 거쳐간 작품이다.

일본 소설 등 번역 작업은 공방의 일을 마치고 혼자가 된 밤시간에 컴퓨터와 만나서 한다.


- 마흔살까지는 내 일을 찾아 방황

고 씨는 나이 마흔이 돼 시작한 목공 일 이전의 시간들을 ‘자기 일을 찾으러 방황해온 세월’이라고 했다.

건축 일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경북 의성과 경기 부천, 대구 등지로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옮겨다니며 농촌과 자연 속의 삶에 정이 들었던 고 씨는 고려대 철학과를 다녔던 1984∼88년에는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한 운동권 학생이었다. 취업 준비 보다는 시위에 앞장섰고 집시법위반으로 징역 10월ㆍ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아 방위로 군복무를 마치고 학교 추천으로 한 기업컨설팅 회사에 첫 직장을 얻었다. 고 씨의 표현대로 늘 고정된 업무에 별 비전도 없는 것 같아 1년 만에 그만두었다.

1991년 당시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중국에서 철강과 시멘트를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는 무역회사에 취업했으나 자금 유용과 부도 등 경영진에 대한 불신으로 동료들과 함께 2년 만에 회사를 나왔다.

3년이란 짧은 직장생활에서 회의감과 한계를 느낀 고 씨는 일본 유학으로 탈출구를 찾았다.

전공인 철학관련 사상사 공부를 하기위해 1년간 일본어 공부에 이어 동경대 대학원 연구과정에서 2년간 공부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3년간 밤새워 레스토랑 보조 일을 하다 현지 무역회사에 일자리를 얻으며 계획한 공부도 뜻같이 되지 않았다.

5년 가까운 일본 생활을 접고 서른 다섯에 귀국한 고 씨는 직장생활 대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일본어 전문 번역가가 됐다. 그가 원하던 자유직이었다.

원하지 않는 일,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직장생활로 다시 2년을 날렸다. 학술 컨텐츠사업을 하던 한 회사의 권유로 일본 도서 번역 계약 및 인터넷 서비스 일을 맡았으나 담당자들의 의견에는 귀를 닫은 채 독주하는 운영을 견딜 수 없어 나왔다.

실망감이 컸던 고 씨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번역 일은 솔직히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 죽을 때 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고심하던 고 씨는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릴 때 찰흙 공작을 즐기고 집에 있는 시계나 라디오 등을 분해하고 조립하던 자신이었다. 목공 일을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경기도 광주에 있는 ‘만드는 세상’이란 공방을 찾아가 목공 일을 배우며 2개월간의 창업 과정을 마치고 7개월을 더 눌러 있으며 익혔다.


- 좋아하는 일 위해 탈 서?

마흔이 되던 해인 2003년 탈 서울을 실행했다. 경북 포항 흥해읍에 ‘만드는 세상-포항만세’(‘만세’는 만드는 세상을 줄인 말)라는 목공방을 열었다가 올해 5월 경주시 안강읍의 폐교로 공방을 옮겼다. 이 곳에는 고 씨의 공방 외에도 통나무 집 짓기를 가르치는 통나무학교가 있다.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고 씨는 요새 살 맛이 난다. 자신처럼 목공을 배우려는 사람들을 위해 목공교실을 운영하고, 과정을 마친 사람들과 함께 작업도 하며, 이웃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목공 체험반’도 운영한다.

더러 원목 주문가구 제작 의뢰가 들어오면 탁자와 책꽂이 장식장 어린이침대 등의 맞춤가구를 만들어준다. 돈을 받지만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주는 것이 즐겁고 회원들과 함께 즐긴다.

목공 초보자도 하루 8시간 총 32시간의 1개월 과정을 마칠 때면 기계를 다뤄 나무에 홈을 파고 맞추는 일 등을 능숙히 해 낸다.

“일본에는 어른들이 모여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만드는 공방이 많아 목제 완구를 제작할 생각도 하고 있다”는 고 씨는 “앞으로 스스로 만드는 DIY에 관심이 높아질 것에 대비, 목공을 비롯한 다양한 DIY 품목을 개발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번역과 목공 일을 하며 두 가지 삶을 사는 고 씨는 낮에는 나무와 끌과 망치를 잡고, 밤에는 컴퓨터 앞에서 책과 씨름한다. 이따금 시골 공방에서 나와 서울행에 오르는 것도 영화 속 한 풍경같다. 오랜만에 경복궁을 찾았다는 고 씨는 막걸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번역가로서의 위치는 어디쯤 되는지…. “글쎄요 특급 1ㆍ2ㆍ3급 이렇게 있다면 한 1급 되겠지요. 방송국이나 출판사에서 안심하고 맡겨주니 그 정도는 될까요.”

고 씨는 보통 한 달에 한 권의 일본 책을 번역하는데 하루 10시간 정도를 들인다고 했다. 책 한 권이 보통 2백자 원고지 1천 매, 장 당 번역료로 1,500∼2,000원을 받으니 한 달 번역료 수입은 1백50만원∼2백만원 선이다.

“목공방을 운영해 얻는 수입은 별로 없습니다. 올해는 경제가 더 어려워서인지 작년에 10여명이던 목공교실 인원이 2∼3명으로 줄었어요.”

고 씨는 밤의 번역 일과 낮의 공방 일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번역을 하다 이따금 자신의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그는 언젠가 도시생활에서 못 느꼈던 자연 속의 삶의 이야기들을 책으로 쓰고 싶다고 했다.

돈벌이 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기뻐하는 고 씨는 시골생활이 씀씀이 늘어날 데 없어 좋고, 착하고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이 많아 좋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고, 잘 하는 일을 찾는 일, 늦었다는 생각보다 용기를 내 실천해 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입력시간 : 2004-09-15 14:0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