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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2군] 연극배우 김중기
무대 위의 코스모폴리탄
몸으로 세상을 표현하다
연극무대에서 행복을 찾는 운동권 출신, 연극계의 자유인




'슬픈 연극'에서 40대 부부로 출연할 김중기씨와 부인역의 이지현씨.



386세대. 30대, 80년대 학번,1960년대 생들이 우리 시대의 주력이라고들 한다. 그들은 우리 사회 변혁기의 한가운데 있었으며 변화의 동인이 됐다.

치열한 학생 운동을 담당했던 그들도 이제 기성 세대로 살아간다. 1987년 결성돼 대학가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은 민주화 운동의 조직력과 영향력 등에서 전설이 됐다. 운동권의 리더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사회 운동 등의 과정을 거쳐 정치계, 사회 단체, 학계와 화계로 진출했다. 더러는 법조계로 가기도 했고, 평범한 직장인도 적잖다.

연극인 김중기(39)씨는 운동권 출신 연극 배우이다. 연기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는 소속 극단이 없는 무소속 배우다.

틈틈이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북경반점’,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의 영화에도 주연 등으로 출연, 그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배우다.


- 운동권 투사에서 연기자로 변신

대학 운동권 투사에서 어느 날 배우로 살기로 작정하고 연기자의 길을 가고 있는 그는 서울대 철학과 85학번이다. 경북 안동에서 고교를 다닐 때도 공부만 하지 않고 음악 다방과 디스코텍에도 들락거리며 탈출구를 찾던 그는 대학에 입학해 서클 활동을 시작하며 자연스레 학생 운동 속으로 들어 갔다.

4학년이던 88년에는 김일성대학과 서울대간 체육 대회를 열기 위한 판문점 회의를 열 것과 국토순례 대행진 등 통일운동 재개를 공약으로 내걸고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 실패 책임론이 대두하며 NL계 후보였던 그는 PD계열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학생회장 선거 낙선 후 전대협 산하에 조국통일위원회를 구성, 위원장으로 통일 운동에 전념했던 그는 3개월 간의 감옥 생활과 함께 졸업 후 2년 간 전대협 지원 활동을 했다. 단기사병(방위)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나온 1992년은 학생운동이 전체적으로 침체기에 들어있었고 많은 동료들이 조직활동을 접거나 정리하던 시절이었다.

그 때 처음 “뭘 하며 살까”라는 고민을 했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할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학교란 조직과 틀 안에 들어가 공부할 생각은 없어 포기했다. 그런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연기를 하자, 문화 쪽 일을 하자”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짧은 3개월 간의 감옥 생활이었지만 그 안에서 소설과 시를 읽으며 ‘사회 과학을 하고 학생 운동을 하며 이제껏 생각해 온 사람과 세상에 대해 보다 더 넓게 보는 것이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갈 길을 정했다. 생각을 바꾸고 나니 많은 것이 새로웠다.

“연극과 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보면 살아 있다는 느낌, 삶의 희망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정한 이후로는 이제껏 한 번도 딴 생각 없이 연기자의 길만 걸어오고 있다.

93년에는 대학 동기이자 옥바라지(그는 ‘빵바라지’라고 했다)를 해 줬던 서클 친구 영문과 여학생과 결혼했다. 제대로 된 연기자가 되기 위해 94년 다시 4년제 대학의 신입생이 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에 입학, 98년 초 졸업했다.


- 영화로 데뷔, 얼굴도 꽤 알려져

그의 데뷔작은 영화였다. 학생 운동을 하다 러시아로 유학간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어쩌 자신의 삶과도 비슷한 저예산 독립 영화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에서 주연을 했다. 96년에 찍어 97년에 개봉됐다. 예술종합학교 재학 중 ‘둘 하나 섹스’, ‘북경반점’등의 영화에 더 출연했다. 첫 출연한 상업 영화 ‘북경반점’으로 그는 얼굴이 알려진 배우가 됐다.

아내가 공부하러 미국 유학 길에 오른 1999년 말부터 3년 간 이제 반대로 자신이 아내에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한 영화잡지의 편집장으로, 또 영화 프로듀서로 각각 1년 반씩 일했다.

처음으로 월급을 받는 조직생활을 하며 사람들을 챙기고 폭탄주도 마시며 적응하려 했지만 연기에의 미련을 떨치지 못해 틈틈이 영화에 출연했다. 2002년 말 비전향 장기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선택’에서 주연을 맡으며 직장 생활을 청산했다. 유학 갔던 아내도 돌아왔다.

그가 연극 무대에 섰다. ‘아가멤논가의 비극’(극단 동시대), ‘한씨 연대기’(연우무대)가 터 준 길이다. 이어 10월 1일부터 한 달간은 실험성 짙은 심야 연극 ‘슬픈 연극’(극단 차이무)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밤10시부터 1시간 여 연기한다.

자식 둘을 둔 40대중반의 부부, 불치병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남편 역을 맡아 부부의 하룻밤 이야기를 펼쳐나갈 예정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나무와 물’극장에서 올려질 이 심야 연극을 위해 김 씨는 맹연습 중이다.

짙은 눈썹에 마른 체격, 말과 외양에 군더더기가 없다. 차림도 간편하다. 척 한 눈에 그에게서 배우 티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극단에 소속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냥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고 제약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짧게 말했다. 운동권 출신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에게 주어지는 배역에 제한은 없을까,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영화에서 운동권 출신 유학생, 비전향 장기수를 맡기도 했지만 신부 역도 맡고, 회사원, 조폭도 여러 번 맡았어요. 그런 거 보면 이미지가 굳어져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자신이 걸어 온 길 반성은 많이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그는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을 형편만 되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만족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대학생 등 후배들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아야하고 좋은 차, 좋은 집 등 남들에 보여야 하는 성공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 능력을 갖고 자기 뜻대로 살 수 있는 삶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학생운동 시절이요? 생각과 생활에 다른 쪽을 열어 두고, 사람도 다양하게 만났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지요.”


- 연극만 하며 사는게 소원

오래도록 연기자로 살아가고 싶다는 배우 김 씨. ‘죽을 때까지 연극만 했으면…’하는 게 소원이다. 무대에 서고 그러기 위해 연습하고, 틈틈이 영화 찍고 책 읽고 그렇게 살고있는 김 씨는 “굶어 죽을 정도가 아니면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연극을 가난한 사람들이 하니까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또 대단한 문화예술인들이 연기하니까 봐야 한다는 것도 아니에요. 연극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문화 예술이라면 연극인들이 먹고 살 수 있게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관객 탓만 할 수는 없지요.”

“제가 세상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또 제 자신에 대해서도요. 이런 것들을 더 많이 받아 들이고 알아서 표현하는 것이 연기이고,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는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연기는 제 안에 있는 감성, 이해, 통찰력 등을 끌어내 표현하는 것인데 그래서 계속 성숙해지고 커나가고 싶어요. 욕심이 많지요.”세상과 사람, 자신에 대한 관심이 많아 운동권의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한 남자가 이제는 진지한 배우로서의 삶을 진지하게 산다.

밤10시 무대에서 열연할 그를 지켜보자. 죽음을 앞둔 남자의 마지막 하룻밤을 그가 어떻게 담아내고 표현해내는지, 두 남자의 삶을 들여다 볼 좋은 기회다.

입력시간 : 2004-09-2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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