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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25시] 사진작가 노순택
렌즈로 그려낸 일상의 수묵담채화
도시인의 삶을 찍는 기자출신 사진작가
그에게 사진찍기는 일상이자 직업






기자 출신 사진작가를 만났다. 노순택(33). 그의 사진 속에는 도시의 일상이 흑백으로 담겨 있었다. 도시라고 해서 서울 앤 더 시티를 떠올리면 오산이다. 그의 카메라는 도시의 화려함과 도시인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다른 사진작가가 더 잘 찍는다고 믿는 그다.

대낮부터 벌어지는 도시의 과격한 일상이 그가 찾는 테마다. 그것은 여의도 국회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진압하는 어린 전경들이기도 하고, 시민단체들이기도 하며, 서울 시청과 광화문 앞 집회에 모인 청년들이기도 하다. 우리의 깔끔한 일상에 매일 올려지는 신문이나, 저녁 무렵 가족과 더불어 따뜻한 불빛 아래서 전해 듣는 뉴스의 한 장면들이 그의 사진이다.

노순택의 사진을 보면 그 진지함에 잠시 고민하게 된다. 저널에서나 보는 일상들이 예술 작품으로 받아들여질까 하고 말이다. 5.18 광주 학살, 국가 보안법, 매향리 반세기의 신음, 한강 독극물 방류, 여중생 사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테러방지법 등이 그의 카메라가 찾아가는 테마이다. 얼마 전 끝난 노순택의 개인전 제목도 ‘분단의 향기’였다.


- 저널을 예술로 승화시키다

노순택에게 사진은 일상이며 동시에 직업이다. 사진작가로 데뷔하기 전 그는 오마이 뉴스의 사진 기자였다. 언제나 저널이나 사진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그는 보다 전문적인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그의 사진 앞에서 예술이냐, 저널이냐를 논할 필요는 없다. 저널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낡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도시의 가장 시끄러운 현장 속에 투입되어 사진을 담아내는 그의 삶 자체가 힘겨운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노순택의 사진을 보면 그가 기자였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사진에 붙은 캡션은 그의 내면을 엿보게 한다.

삼팔선의 철책 앞에 민간인이 서 있는 사진은 아름다운 풍경화로 보이는데 우스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너 간첩이지? 아닌데요. 그런데 왜 철책 앞으로 서성거려? 죄송합니다. 일단, 손들고 이리 와 봐. 죄송합니다.” 매향리 사진은 감쪽 같다. 매화향기가 넘실대서 이름 붙힌 곳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반세기동안 미 공군의 폭격 훈련으로 매캐한 화약 냄새만 진동하는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시체놀이’는 연출된 사진이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다. “뉴욕에서 9.11 테러가 벌어질 때 한국에서는 시체놀이가 유행했었죠. 워싱턴에서 재채기만 해도 서울은 감기몸살에 걸린다는 농담이 떠올랐어요.” 마침 한국 전력공사에서 테러대비와 화생방 훈련을 하고 있을 때 재치있게 도 그는 시체놀이를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가 찍어내면 무거운 현실은 가볍게 비틀어져 나오기도 하며 영화 속 한 장면 같이 보이기도 한다. 시니컬한 블랙코미디로 만들기. 그의 사진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하지만 그저 재미로만 느끼기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꽃을 들고 손을 흔드는 북한의 소년단원들을 보고 “아이들아, 너희들은 왜 귀엽지? 그 위장된 가면을 벗고 악마의 모습을 보여라” 라고 말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또한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소풍가는 남한의 유치원생들에게는 “전쟁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간다” 고 표현해 기겁을 하게 된다.

스스로 남한의 아이들은 자라나는 꿈나무이고, 북한의 어린이들은 악마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속내는 들킨 기분이다. 사진은 곳곳이 함정이다. 삼지연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사진에선 “악마의 나라에도 석양은 아름답다” 라고 말해 블랙코미디를 보고 실컷 웃다가도 갑자기 진지해지는 우스꽝스런 현상이 일어난다. 왠지 모를 서글픔도 느껴진다. 이것이 분단의 향기이다.


- 분단의 블랙코메디 사진에 담기









그는 왜 이런 비틀기를 시도했을까?

“분단을 말할 때 당위적으로 느끼는 분노와 슬픔을 뻔한 스토리로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멜로영화를 보고서 눈물을 흘리고, 극장을 나오면 따사로운 햇살에 즐거워하며, 방금 전까지 슬픔에 극도로 울었던 일을 까먹는 아이러니가 싫었어요. 저는 진부한 카타르시스를 거부한 거예요.”

사진을 보고 전시장을 빠져 나간 사람들이 작가의 모호한 입장에 의심을 가지고, 괜시리 석연치 않은 느낌을 들게 하는 것. 진보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불쾌하게 만드는 것. 분단이 만든 괴물의 모습을, 분단의 블랙 코미디가 던져주는 기분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노순택이 던지는 과제이다.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노래를 불렀어요.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 말이죠. 하지만 밥을 먹다가도 잠시 숟가락이라도 멈칫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제 사진들은 그런 물음을 던져주는 거예요”

대학교 때 윤금희씨 사건을 사진으로 접한 노순택은 한 여자의 육체가 미군에 의해 처참히 무너진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분명히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 조작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사건이 우리 눈앞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스울 뿐이었다. 그는 결국 집회에 나가게 되었고, 어느 날 친구가 신문 한 장을 들고 왔다.

성조기와 해골바가지가 그려 있는 플랜카드를 들고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신문 앞면에 커다랗게 실린 것이다. 노순택은 10년 후 기자가 되었고, 효순이 미선이 추모 집회에 참여한 여중생의 모습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다. 2003년 6월부터 8월까지 오키나와-오사카-도쿄-서울 등 4개 도시를 돌며 진행됐던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에 관한 기록과 기억-사진가 10인의 눈” 기획전 ‘아이들은 열 네 살이었다’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제가 찍은 14살 소녀들이 10년 후에 저처럼 기자가 되어 같은 집회에서 다른 누군가를 찍는다고 생각하면, 소름 끼쳐요.” 14살 소녀들은 바로 자신의 과거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자신의 사진 속 아이들이 사진작가가 되어 다시 시위현장을 카메라에 담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현실은 이렇게 아이러니한 것이다.

“김남주 시인이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도처에 널려있다고 말했죠. 상처 투성이인 근현대사를 들여다 보니 그곳엔 온통 폭력 뿐이었어요. 제 사진 작업은 이 거대한 폭력에 대한 한 소시민의 조소와 비웃음으로 시작 되요.”


- 전쟁과 폭력없는 세상에 대한 희구

현실이 더 드라마 같고, 영화 같다. 현실은 우리가 믿기 어려울만한 사건들이 터지고, 감당하기 힘든, 또는 황당한 일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는 우리다. 노순택은 ‘우리’ 야말로 가장 무서운 ‘괴물’ 아니냐고 묻는다.

전쟁과 폭력 없는 세상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사진작가 노순택의 사진 속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과 폭력의 일상들 뿐이었다. “폭력이라는 놈은 웃길 수밖에 없어요. 제 아무리 제도와 이성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악을 써 봤자 허탈함을 감출 수가 없죠. 저는 이것을 ‘대한 미국 코메리카 공화국’이라 이름 짓고, 열한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있어요.” 노순택의 가볍게 비틀기 시리즈가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고 싶어진다.

그의 바람은 딱 하나. “저처럼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사진이나 작가가 더 이상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 사회가 좋아지려면 말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이 정답인 거다.

입력시간 : 2004-09-2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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