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한 푼수의 매력이 가을무대를 유혹한다뮤지컬 에서 도발적 매력 발산

[감성25시] 뮤지컬 배우 김선경
섹시한 푼수의 매력이 가을무대를 유혹한다
뮤지컬 <크레이지 포유>에서 도발적 매력 발산


햅번을 닮은 여자를 만났다. 장난기 가득한 동그란 눈동자에 진한 눈썹, 마른 듯한 늘씬한 몸에서 풍기는 묘한 관능미, 비음이 썩힌 코맹맹이 허스키 목소리는 로마의 휴일의 앤 공주를 연상시켰다. “로마의 휴일 앤 공주가 아니라, 섹시하고 도발적인 악녀 아이린이예요.”

뮤지컬 크레이지 포유에서 작지만 매력적인 역할을 맡았다고 소녀처럼 자랑도 한다. 레드빛 빌로드 소재 리본이 달린 귀여운 모자를 쓰고 섹시녀 흉내를 내는 그녀. “어때요? 이만하면 나, 섹시해 보이지 않나요?” 다소 느끼한 목소리로 섹시한 척, 못된 척 해도, 귀엽기만 한 그녀는 CF에서 많이 보아 더욱 익숙한 뮤지컬 배우 김선경(36)이다.

- "섹시해 보이지 않나요?"

브로드웨이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크레이지 포유’. 이 뮤지컬이 주목받는 이유는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알려진 신상옥 감독이 총예술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뮤지컬 배우 1세대라 불리는 가수 윤복희 씨의 복귀 무대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수잔 스트로만의 화려한 안무도 빼놓을 수 없는 화제 거리 중 하나다.

남자 뮤지컬 배우의 일인자라 할 수 있는 남경주의 탭 댄스 실력은 무대를 열광의 도가니로 빠트리기도 했다. 초호화 캐스팅에 작은 역할은 자칫 그늘이 될 수도 있는데, 그 중 반짝하고 빛나는 조연이 있었다. 아이린으로 분한 김선경의 등장은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끊임없이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무대에 활기를 불어넣는 분위기 메이커 김선경. 넌센스 잼보리(03)에서처럼 푼수 같기도 하고, 장난꾸러기 같기도 한 그녀는 세속적인 여자 아이린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정말로 섹시하지 않단 말이죠? 아이린은 돈과 섹스만 밝히는 여자에다, 주인공의 사랑을 훼방 놓으려는 악녀인데, 왜 저만 등장하면 웃는 거죠? 큰일이네요.”

걱정하는 사람의 얼굴이 저리도 행복해 보일까. 방금 전 무대에서 팬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온 그녀다. 뮤지컬 대상에서 인기상을 두 번이나 받은 그녀. 인기의 비결은 무대에서 관객을 끊임없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애드리브로 관객을 향해 말을 시키는가 하면 장난을 걸기도 하니, 배우들에게는 당혹스럽더라도 관객은 개성 강한 배우에게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대는 그녀에게 맘껏 뛰놀 수 있는 광장 같은 놀이터다.

“어릴 때부터 엉뚱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수업시간엔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며 공상을 하는 아이였죠. 남들의 예상을 깨는 행동을 하면서 그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신나 했죠. 언제나 즐겁게 살자. 낙천적인 성격이었어요.”

그녀는 남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어했다. 그때는 자신에게 춤과 노래, 연기 실력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때였다. 중학교, 사춘기 시절은 지나치게 조숙해 같은 또래 친구들이 이해할 수 없는 철학서적을 들고 다니며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한 시절이기도 했다.

현실적이지 못한 이 낭만 소녀는 성악을 전공하다가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KBS 특채 탤런트가 된다. (89년 KBS 드라마 ‘비극은 없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의 주제곡을 부르는 게 눈에 띄어서 뮤지컬 배우(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 역, 91년)로 데뷔하고, 미디어라는 닫힌 공간보다는 무대 같은 초원이 자신에게 맞다고 느낀 순간 뮤지컬 배우로 한 우물을 팠다. 벌써 배우 경력 15년째다.


- 멋있고 쿨한 언니이자 형

데뷔 때부터 주연만을 맡았던 김선경이 아이린처럼 작은 역할을 맡은 데는 이유가 있다.

“대 선배들과 途?공연한다는데 의미를 두었어요. 그렇다면 어떤 역할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많이 보고 배우는 중이에요. 비중 없는 배역을 맡았다고 해서 그 배역이 무대에서 지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여자 후배들에겐 멋있고 쿨한 언니, 남자 후배들에겐 ‘형’이라는 불리는 그녀는 길들일 수 없는 야생마 같기도 하다. 단조로운 생활이 싫어 성밖을 뛰쳐나온 로마의 휴일 앤 공주(00)는 어느 날 세상을 탐험하고 싶어 수녀 복을 입고 푼수 연기를 과감하게 보여주는가 하면(넨센즈 잼보리, 로버트 앤 수녀 역, 03) 그 이미지가 굳혀질세라 킹 앤 아이(03)에서 지적인 이미지 애나 선생님의 역할을 소화해 냈다. 올 여름 파우스트에서 여자 악마 매피스토로 분해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크레이지 포유’에서 조연까지 과감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다음 변신이 무척 기대 된다고 하니 “크레이지 포유가 끝나면 확실한 변신 이벤트가 준비 중이에요.” 라고 말해 잔뜩 궁금하게 만들었다.

신장개업(99)이나 라이터를 켜라(02), H(02)등 가끔 영화에 출연한 그녀가 올해 11월 곽경택 감독의 ‘태풍’에도 캐스팅 됐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비밀 이야기 하듯 “실은, 결혼이란 이벤트를 하나 준비중이에요.” 라고 말하는 거다. ‘새 애기’를 보러 분장실로 들어온 시댁 식구들에게 싹싹하게 인사하며 재롱을 떠는데 마치 막내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애교 밖에 더 있나요. 남편은 6살 연하에요. 저보다 점잖고 듬직한 사람이죠. 절 아이 취급하는데, 그게 밉지 않더라구요.” 실제로 20대라고 해도 믿을 법한 그녀의 외모로 보자면 6살 연하쯤이야 감당할 수 있겠다 싶었다.


- 아직도 꿈 꾸는 서른 여섯의 헵번

그녀의 결혼소식은 신선한 이벤트로 다가온다. 취미가 오지 여행이라던 그녀, 호기심이 가득해 세상체험 하느라 무대와 결혼하겠다던 그녀였다. 한해에 4∼5편이 넘는 뮤지컬에 출연했고, 그것도 모자라 각종 CF와 영화, 게다가 대학원 공부까지 해내는 그녀가 슈퍼 우먼처럼 느껴졌는데, 그녀의 말. “아직 못해본 게 너무 많아요. 세상 체험을 더하고 싶은 걸요. 하고 싶은 것이 아직 얼마나 많은데요.”

그녀는 욕심쟁이다. “윤복희 선생님하고 있을 때 너무 좋아요. 연습이 끝나면 함께 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우리의 대화는 일상적인 이야기는 거의 없어요. 우리는 아직 못 이룬 꿈 이야기를 한답니다.”

꿈이라고? 아직도 꿈 꾼다고? 김선경 속에는 ‘꿈을 먹는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그 아이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아 무대에서 쓰러지더라도 링거를 맞고 다시 일어나는 독한 아이다. 평생 무대에서 춤이라도 추어야 하는 마법의 빨간 구두를 찾아내 기꺼이 신겠다고 나선 아이.

처음 느낌처럼 김선경은 성에서 탈출해 세상체험을 하러 나온 햅번이었다. 그레고리 팩 같은 듬직한 남자를 만나 12월 결혼을 앞둔 그녀. 하지만 아직도 꿈꾸는 그녀에게 무대는 그녀의 인생이자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다. 가끔 햅번처럼 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김선경이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을 보아야겠다.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10-05 19:01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