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특별법 철퇴에 나가요 걸에 기대어 사는 나가요 촌도 초토화

[이색지대 르포] 나가요 촌-"어디든 나가야 먹고 살죠"
성매매 특별법 철퇴에 나가요 걸에 기대어 사는 나가요 촌도 초토화

요즘 강북으로 이사 가는 강남 주민들이 급격히 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논현동 역삼동 등지의 특정 지역에 거주하던 20대 여성들이 대거 강북으로 거주지를 옮기기 시작한 것. 이들 지역의 경우 빌라 건물 한 채 당 평균 세 가구가 빈집이고 상가들 역시 대부분 가게를 내놓은 상태다.

술집 접대부 내지는 집창촌 윤락녀, 소위 ‘나가요 걸’이라 불리는 이들이 거주하는 원룸이 밀집해있는 ‘나가요 촌’이 바로 그 문제의 지역. 계속되는 불황에 최근 시행된 ‘성매매 특별법’으로 유흥업계가 결정타를 맞으면서 그 영향은 당장 ‘나가요 촌’ 풍경까지 뒤흔들어 놓고 있다.

- 월세도 못내는 언니들 수두룩

인적 끊긴 나가요 촌.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나가요 걸들이 씀씀이를 줄이자 주변상가도 덩달아 극심한 영업난을 겪고 있다.

역삼동의 나가요 촌을 찾은 지난 12일 오후 6시. 취재진은 너무나 낯선 풍경에 다소 놀랐다. 미용실과 의상실이 밀집한 나가요 촌 번화가에 들어선 경찰 치안센터가 눈길을 끌었고 출근 준비에 바쁜 나가요 걸들의 부산한 움직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텅 빈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미용실 안에도 한 두 명의 손님만 눈에 띌 뿐이었다. 낯선 나가요 촌 풍경에 대한 해답은 인근 부동산중개소에서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절망적”이라고 현재의 심경을 밝힌 중개소 사장은 “이 지역의 경기는 나가요 아가씨들이 좌지우지해 왔는데 지금 상태는 최악”이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인해 벌써 이곳을 떠나 월세가 싼 강북으로 이사가는 이들이 종종 있어 왔는데 최근 성매매특별법이 시행에 들어가며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현재 관리하고 있는 600개가량의 원룸 가운데 월세 안 밀린 집이 단 한군데도 없다. 그렇게 6~7개월이 지나면 어느새 보증금을 다 까먹게 되고 그러면 하는 수 없이 이곳을 떠나게 된다. 현재 건물 한 채 당 세 가구는 빈집이다.”

나가요 걸들의 위기는 부동산을 물론 인근 상가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출근 시간을 앞둔 나가요 촌이 조용한 이유는 나가요 걸들의 미용실 이용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 매일 저녁 미용실에서 출근 준비를 해오던 나가요 걸들이 이제는 출근 준비를 자신의 집에서 한다. 머리를 만지기 위해 미용실을 자주 찾는 것은 변함없지만 그 횟수가 매일에서 2~3일에 한번 꼴로 줄었다. 당연히 미용실 수입이 급감할 수밖에. 이는 의상실이나 슈퍼마켓 등도 마찬가지다.

“아가씨들이 이사 갈 때는 거의 도망치듯 몰래 빠져나간다. 그러면 이들에게 공기청정기나 정수기 등을 임대해준 업체 관계자들도 망연자실해진다. 임대해준 물건들을 그대로 가지고 떠나버리니 이들은 가만히 앉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루가 지난 13일 저녁 6시. 이번에는 최대 규모 나가요 촌으로 알려진 논현동을 찾았다. 역삼동 나가요 촌이 조용한 주택가인데 반해 논현동 나가요 촌은 유흥가와 맞붙어 있어 다소 번잡한 분위기다. 나가요 걸들이 출근을 위해 부른 모범택시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하나 둘 출근을 위해 나서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논현동 나가요 촌 역시 미용실이나 의상실은 한가한 분위기였다.

논현동 소재 미용실 관계자들 역시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미용실에서 만난 한 나가요 걸은 “우리가 하루 출근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10만원 정도”라면서 “지금처럼 2차가 안되고 손님도 없어 하루 두 테이블 정도만 뛰어서는 그 경비도 못 댄다. 그러니 미용실에 오는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며칠에 한번은 반드시 가야 하는 미용실에 반해 손님의 발길이 아예 끊여 버린 의상실은 더욱 울상이다. ‘텐프로(강남 일대 최고 수준의 나가요 걸을 지칭하는 속어)는 이미테이션을 입지 않는다’는 말도 이제 옛말. 수입 명품 판매가 거의 중단된 상황에서 명품 이미테이션 제품만 한두 벌씩 팔리는 수준이라고 한다.


- 떠도는 자살소문, 논현동 괴담으로 번져

나가요 걸들이 거주하는 강남의 원룸들. 출근으로 붐빌 저녁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썰렁하다.

취재 과정에서 취재진은 소위 ‘논현동 괴담’이라는 놀라운 소문을 하나 접했다. 불경기로 수입이 많이 줄어든 가운데 성매매 특별법으로 2차까지 나가지 못하게 된 요즘 상황을 비관한 나가요 걸들의 자살이 줄을 잇고 있다는 것. 경찰이 쉬쉬하고 있어 알려지지 않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가요 걸의 자살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논현동의 한 의상실에서 만난 여직원은 “나가요 아가씨 가운데 빚 없는 애들은 아무도 없어요”라며 “그런데 더 이상 돈을 갚을 수 없게 되자 이런 상황을 비관해 죽음을 택하는 이들이 많은가 봐요”라고 말한다. 이런 소문의 진원은 단연 나가요 걸들. 의상실 단골손님인 나가요 걸들에게 “아는 언니가 자살했다”는 얘기를 거의 매일 듣고 있다고.

하지만 소문의 실체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인근을 순찰하던 경찰은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이런 소문이 사실 무근이라고 얘기한다. 또한 강남경찰서 출입 기자들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불안한 현실이 이런 근거 없는 소문을 급속도로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급속도로 공동화 현상이 벌어지는 강남 일대 나가요 촌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나가요 걸이라는 특수한 직업의 여성들이 밀집해 있던 특수지역에서 보통 주거 지역으로 변모해 갈 것이라는 긍정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나가요 촌이 무허가 집창촌이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관측도 접할 수 있었다.


- 재택 매춘, 또다른 집창촌화 우려

편의점에서 만난 한 점원은 “아가씨들이 새벽에 퇴근할 때 남자 손님을 데려오는 경우가 급격히 많아지고 있다”면서 “아예 가게에 나가지 않고 남자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애들도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이런 방식의 재택근무가 많아질 경우 나가요 촌은 무허가 집창촌이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가장 아찔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다만 역삼동 소재의 한 부동산 사장은 “예전에는 몇 백만원 가량의 보증금을 대신 내주고 가끔 찾아오는 스폰서 개념의 남성들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물주를 잡기도 힘들 정도로 불황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월세를 아끼려고 2명 이상이 한 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아져 남자 손님을 집으로 불러들이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실체없이 난무하는 여러 소문에서 현재 나가요 촌이 ‘과도기’의 심한 열병을 앓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나가요 촌뿐만 아니라 한국 유흥산업 전체가 겪는 열병일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가 이런 과도기의 열병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성매매 근절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정부의 적절한 처방과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입력시간 : 2004-10-1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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