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풍요 누리는 감성부자들은빛선율에 매료, 이상세계를 꿈꾸는 열정의 연주가들

[동호회 탐방] 목관악기 동호회 <카스탈리엔>
정신적 풍요 누리는 감성부자들
은빛선율에 매료, 이상세계를 꿈꾸는 열정의 연주가들


정기 연주회장에 모인 회원들. 아마추어지만 연주회를 위해 연주복을 맞출 정도로 열정이 깊다.

어렸을 적 피아노 학원에 다니거나, 리코더로 음악 실기시험을 준비하며 가슴 떨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배웠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배웠든 나만의 악기를 다룰 수 있었던 음악시간의 추억은 대개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끝나버린다. 바쁜 일상에 쫓겨 그런 기억조차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늦게 음악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는 사람도 있기 마련. 다시 한번 악기를 배워보고 싶지만 피아노처럼 거창한 악기는 부담스럽고, 리코더나 하모니카 정도는 성에 차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음색이 매력적인 목관악기는 어떨까? 고운 플루트 선율이 맴도는 목관사랑 동호회 ‘카스탈리엔(www.freechal.com/woodwind)’에서 아마추어 연주활동의 매력을 들어본다.

- 평범한 생활인들의 음악사랑

1997년 유니텔 동호회로 시작해 2001년 프리챌로 이전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춘 ‘카스탈리엔’은 현재 목관악기 중에서도 플루트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통 40만원 대에 악기 구입이 가능한 플루트는 가장 저렴하게 시작할 수 있는 목관악기에 속한다. 클라리넷도 나무가 아닌 플라스틱 재질이라면 40만원 대에 구할 수 있다.

흔히 악기라면 ‘시간과 돈이 남아도는 일부 부유계층 사람들이 심심풀이 삼아 배우는 것’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카스탈리엔’ 회원들은 단지 음악을 삶의 일부분으로 즐기며 살아가길 꿈꾸는 평범한 생활인들이다. 이들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열정과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당당히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는 세상을 꿈꾼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유리알 유희》에 등장하는, 음악을 최고의 정신성으로 삼는 이상세계 ‘카스탈리엔(Kastalien)’에서 동호회 명칭을 가져온 것도 그래서다.

- 부담 없는 비용으로 레슨부터 연주회까지

처음 가입신청을 하면 온라인 회원이 되는데 정기모임에 2회 이상 출석하거나 오프라인 활동회원(앙상블 단원, 초보반) 신청을 하거나 10개 이상의 게시물을 작성하는 등 세 가지 요건 중 하나를 충족하면 정회원이 돼 악보나 기타 자료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목관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는 동호회이다 보니 가장 신경을 쓰는 것도 오프라인 레슨 모임이다. 오프라인 모임 회원 가운데 초보반은 목관악기를 전혀 다뤄보지 못한 사람들로 이뤄지며, 앙상블 단원은 매년 열리는 연주회 개최를 위해 결성된다. 현재 주중 연습팀(화요일), 주말 연습팀(일요일) 등 두 개의 소모임 게시판이 운영 중인데, 매달 레슨비는 4∼6만원 선으로 개인 레슨을 받을 때보다 훨씬 저렴하다. 나이 어린 회원들이 저렴하게 플루트를 배울 수 있도록, 1983년 생 이하는 레슨비의 50퍼센트를 할인해주기도 한다.

가장 궁금한 것이 목관악기를 불어 보기는커녕 만져보지도 못한 초보회원도 동호회 활동을 할 수 있느냐는 점. 혹시나 다른 실력 좋은 회원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어 활동하기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기 마련이다. 동호회 운영자 박현진(29) 씨는 “악기로 소리를 내는 건 일주일이면 할 수 있고, 아무리 늦되는 사람도 한 달이면 소리를 낼 수 있다.

연주에 몰입하는 이 순간만큼은. 어떤 유명 연주자도 부럽지 않다.

초보자라도 3개월만 열심히 연습하면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성실함이다”고 들려준다. 회원 중에 목관악기 전공자와 아마추어 연주자가 고르게 섞여 있고, 전문 강사를 초빙해 레슨을 받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 소리내는 법만 터득하면 나머지는 회원 각자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연주에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는냐에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10대 학생부터 40대 중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배의 동호회원들 중에서도 목관악기와의 만남으로 인해 독특한 경험들을 해온 사례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동호회원 우승덕(22) 씨의 경우, 목관악기란 한번도 다뤄본 적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우연히 동호회를 알게 되면서 멀리 경기도 이천에서 서울까지 연주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클라리넷으로 대학까지 갔을 뿐 아니라, 현재는 군악대에서 활동하고 있어 취미가 인생 전환의 계기가 됐다고.

- 내 손으로 연주하는 음악의 깊은 매력

또 다른 회원 김승건(26) 씨는 내심 예쁜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어 모임을 찾았다가, 엉뚱하게 애인 찾기는 제쳐두고 플루트에 홀딱 빠진 경우다. 낡고 오래돼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는 플루트 하나만 달랑 들고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아 동호회를 찾았지만 뒤늦게 배우기 시작한 플루트의 매력이 그만큼 강렬했던 것.

10월 초 유학을 떠난 김승건 씨를 위해 회원들이 모여 송별연주회를 열기도 할 만큼 회원간의 정은 돈독하기 그지없다. 학업과 생계로 바쁜 와중에 틈틈이 짬을 내어 연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들은 오랜 시간 준비한 연주회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해 연주복을 단체로 맞추기도 했다.

매년 9월 초 플루트 정기연주회를 펼치는 ‘카스탈리엔’ 회원들의 모습은, 오는 11월 6일에 열릴 ‘제1회 플루트 앙상블 연합연주회’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내년에 전국 규모로 시행될 연합연주회에 앞서 서울 지역 5개 아마추어 연주 팀이 한 자리에 모여 벌이는 행사로, 공연 외에도 악보 교환, 해외 교류 등 다양한 계획을 준비중이다. 이는 클래식 연주회의 대중화를 꿈꾸는 ‘카스탈리엔’ 회원들이 얻어낸, 작지만 큰 결실이다.

다가올 연합연주회 준비를 위해 여념이 없는 운영자 박현진 씨는 “내 안에서 공명하는 음악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낄 때, 또 그 선율이 화음이 되어 울려 퍼질 때의 아름다움을 몸소 경험한다면,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목관악기를 연주할 때의 매력을 전했다.

뒤늦게 악기를 배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진대, 아직까지 대중화되지 않은 목관악기를 배우는 것은 더군다나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어려운 만큼, 성취했을 때의 보람도 크지 않을까.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 플루트에 지그시 입술을 대고, 흘러나오는 선율에 몸을 맡긴 채, 나만의 열정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다.

고경원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10-20 18:46


고경원 객원기자 aponi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