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넷에 사명감 여섯의 삶뜻밖의 사건·사고에 긴장의 끈 놓지 못하는 24시간

[우리시대의 2군] 119 구급대원 황윤희
체력 넷에 사명감 여섯의 삶
뜻밖의 사건·사고에 긴장의 끈 놓지 못하는 24시간


직업을 택하려면 멀리 10년, 20년을 보고 결정하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적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고, 부모 등 주위의 바람에 영향을 받고, 돈 잘 벌고 취업 잘 되는 인기 학과ㆍ직종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현실이다. 인기 있는 직업과 직종의 순위표에 따라 결혼 배우자감의 순서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우리 삶의 한 모습이다. 10년 후, 20년 후를 보려면 어떤 요인들을 고려해야 하나. 말은 쉽지만 간단치 않다.

‘2군’들을 만나며 10년 후, 20년 후에도 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먼 훗날의 불확실한 인기 직종이나 잘 나갈 직종을 예측해 나아가는 모험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여곡절ㆍ방황 끝에 나이 40을 전후해 방향 전환을 한 삶도 있지만 그 전에 그 길에 들어서 있다는 것은 복이다.

- 하루 10~20번 출동, 체력은 필수

황윤희(28)씨는 소방서에서 일하는 119 구급 대원이다. 소방서라면 치솟는 화염과 연기, 새빨간 불자동차와 방염복을 입은 남자 소방관이 생각나는데 황 씨는 양 어깨에 물줄기를 상징하는 이파리 두 개를 단 소방사다. 주황색 구조복을 입은 황 씨는 작은 키에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지만 말과 행동이 당차다.

소방서의 경방(화재 진화)ㆍ구조ㆍ운전ㆍ구급 등 4개 분야 중 황 씨의 일터는 119구급 차량의 구급 대원이다. 응급 환자가 발생, 119를 누르면 달려 오는 119구급차량 안의 구조사다. 우리나라 소방서의 2교대 근무 체제에 따라 황 씨는 24시간 근무를 하고 24시간 쉬는 생활을 한다. 밤을 낀 하루 24시간동안 평균 10건 안팎의 출동을 하고 많을 때는 스무 번 출동하기도 한다. 체력이 있어야 버틴다. 가냘파 보이지만, 살아 남고 이기기 위해 체력 단련은 필수다.

황 씨가 소방서를 일터로 삼은 데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나 전력이 있을까. 1995년 대학의 특수 교육학과 진학을 목표로 했다가 2년제 대학에 신설된 응급 구조 학과로 방향을 돌렸다. 학비 부담도 있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는 의기와 호기심 등이 어울렸다. 많은 동료들처럼 졸업 후 4년제 대학으로 편입도 생각하다가 마음을 돌려 응급 구조사 양성 교육을 받고 기업체 등에 소방 실습 교육을 나간 지 2년,

1999년 소방서 119 구급 대원 특채에 응시, 체력 검사와 필기ㆍ면접 과정을 거쳐 소방관이 됐다. 1남 1녀의 외동딸이지만 부모님은 “ 잘해라, 하고 싶은 일 끝까지 잘 해보라”고 격려해 줬다. “ 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것과 응급구조사로 일하는 것 모두 누군가를 돕는 같은 일이잖아요. 모태 신앙 기독교인으로 중고교 때도 양로원이나 중증 장애인들을 찾아 도움이 돼 왔던 일의 연장이었던 것 같아요.”

‘올챙이 소방관’으로 불리며 종로소방서 세종로파출소에서 근무한 지 5년, 황 씨는 지난 9월 대학로 한국방송통신대 맞은 편의 연건 소방파출소로 자리를 옮겼다. 아침 9시 출근 전, 8시30분에 차량과 무전기 등의 점검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갑반인 황씨 조가 이미 24시간을 근무한 을반 동료들과 업무 인수 인계를 한다. 출동이 있기까지 119 구급 차량의 한 팀원인 구급 반장과 구급 대원, 운전 요원 등 3명이 번갈아 가며 2시간씩 소내 근무를 하며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연락책 역할을 한다.

응급환자 발생 출동에 정해진 시간이 있겠는가. 누군가 어디에선가 119를 누르면 남산에 있는 소방 방재 센터에 연결되고 곧 바로 해당 지역 소방서 상황실과 구급 차량에 출동령이 함께 떨어진다.

- 신고 때 환자상태 얘기해주면 큰 도움

출동…. 출근길 갑자기 쓰러진 직장인도 만나고, 노숙자도 있고, 아들 딸 떠나보내고 혼자 살던 할아버지 할머니를 실어 나르기도 하고 온갖 응급 환자들을 만난다. 구급차량 안에는 이동 들것과 산소소생기ㆍ심실재세동기ㆍ심전도 기록장치ㆍ흡인기ㆍ소독기 등의 장비가 갖춰져 있다.

황 씨 등 구급 대원들은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구급차 안에서 소방 방재 센터에 상주하는 의사와 교신하며 환자의 출혈을 멈추거나, 호흡이 곤란한 환자의 기도를 뚫고, 심폐 소생술 등을 한다. 그렇게 매일, 뜻밖의 사건ㆍ사고에 동참하는 삶이다.

소방관 생활 5년을 종로에서 한 황 씨는 종로는 기업들이 밀집해 있어 직장인 관련 사건 사고가 많다고 했다. 한 열흘 전 황 씨는 새벽 5시 30분께 출근길에 함께 걷다 갑자기 쓰러졌다는 직장 동료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구급차 안에서 살펴 본 50대 직장인은 이미 의식과 맥박이 멎어, 심장에 충격을 주는 심폐 소생술을 했으나 심장 고동이 V자 파를 이어가다 평행선으로 이어졌다.

점심 시간에 직장에 있다 피곤하다며 당직실에 쉬러 들어간 직원이 오후 4시쯤 발견돼 의식이 없는 것으로 신고돼 출동한 일도 있는데, 이미 몸이 굳어있는 것이 숨을 거둔지 오래돼 보였다. 과로로 호흡이 가빠지며 호흡 조절이 안 되는 환자가 많은 것도 지역적 특성이다.

아침 출근 시간대 지하철 출동도 잦은데, 많은 경우 빈혈과 혈압 저하로 실신한 여자 환자라는 것. 아침 식사를 거르거나 다이어트를 위해 여러 끼를 굶어 갑자기 어지러워 쓰러져 신고가 들어온 경우가 많다고 황 소방사는 들려 주었다. 응급 환자가 발생해 119신고를 할 때 환자 상태를 좀 더 자세히 차근차근 설명해 주면 큰 도움이 된다. 그냥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다고 하기 보다는 어디에서 넘어졌는데 어떤 부분을 다친 것 같다고 신고해 주면 필요한 장비를 미리 준비해 가져갈 수 있어, 응급 처치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

- 남편도 소방관 "이틀에 한번 만나요"

일반 시민들이 심심찮게 보는 응급 환자 이송 차량의 비상음, 반대편 차선 질주 등 아슬아슬한 운전…. 119 구급 차량 운행에 어려움은 없을 까 물었다. “ ‘119구급대’, ‘서울시 소방 본부’라는 빨간색과 녹색 글자에 녹십자 표시를 새긴 119 구급 차량은 환자 이송 때 환자를 위해 또 교통안전을 위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경광등을 켜고 비상음을 울린다든지 반대편 차선으로 내달리지는 않는다”는 답이다.

황 씨는 소방관이 된 3년차 2001년에 소방서 특채 동기로 중부 소방서 구조대원으로 일하는 동료와 결혼했다. 소방관 부부는 딸ㆍ아들 하나씩을 두었다. “24시간 맞교대하는 근무 체제에서 결혼 직전 남편과 근무조가 달라 다른 세상의 삶을 산 적도 있지만, 남편이 근무조를 옮긴 덕에 요새는 24시간 일하고 쉴 때는 24시간 함께 있을 수 있어 좋아요.” 부부가 집에 없는 24시간 동안은 친정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 봐 주는 덕에 자신은 다행한 편이지만 결혼한 동료들, 직장 여성들의 육아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나 24시간 맞교대, 주 84시간 근무제의 소방서도 3교대 근무제로 변경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에 그를 비롯한 소방관들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소방관 57세 정년까지 일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즐겁게 최선을 다해 일하며 보람을 찾고 싶어요.” 후배들에게도 소방관직을 권하고 싶다고 했다. 단, 소방관의 일이 힘 든 만큼 특히 체력 단련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경험도 덧붙였다. 5년 전 소방관이 된 20여명의 여자 동료들 모두 한 사람의 낙오없이 잘 적응하고 있다고.

황 씨는 내년에는 물줄기 이파리 3개의 소방교 진급에 도전하고, 구급차에서 맞닥뜨릴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번역기에 의존하기 보다 자신이 직접 듣고 말하며 응급 처치를 할 수 있도록 일본어 등 외국어 공부에 힘 쓸 계획이다. 자신의 일에 즐겁게 도전하는 사람은 당당하다.

안재현 대기자


입력시간 : 2004-10-20 19:04


안재현 대기자 jhah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