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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 탐방] 세상에 하나뿐인 책 만들기
"나만의 색깔을 담은 작품이죠"
고정관념 깬 자유로운 형태의 수제 책, 전시회도 열어


19세기 미술공예운동의 선도주자였던 윌리엄 모리스가 말년에 매진했던 분야가 있다. 그것은 건축도, 디자인도 아닌 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장정, 서체, 문양 등이 긴밀한 조화를 이뤄 비로소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는 제책 과정을 윌리엄 모리스는 ‘또 하나의 건축’이라고 불렀다. 1890년 문을 연 모리스의 켈름스콧 공방에서 유럽 3대 희귀장정본 중 하나가 된 ‘제프리 초서 저작집’(1896)이 탄생되자, 사람들은 이 고귀한 책에 ‘작은 대성당’이라는 별칭을 붙여 경의를 표했다.

이미 예술가로 이름을 드높인 노작가가 남은 열정을 모두 쏟아부었을 만큼 책 만드는 일은 매력 넘치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듯 과거 이야기로 돌아갈 것도 없이, 오늘날 한국에서도 개성 있고 아름다운 책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세상에서 하나뿐인 책 만들기’(handmadebook.cyworld.com) 동호회가 그곳이다.


- 소박함과 실용성 깃든 나만의 책



10월초 열린 수제 책 전시회에서 회원들이 직접 만든 책을 감상하고 있다.



2003년 1월 개설된 ‘세상에서 하나뿐인 책 만들기’(이하 ‘책 만들기’) 동호회에서는 손으로 만드는 책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룬다.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기본 장정에서부터, 직접 책을 실로 묶고 제본하는 방법, 재료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장소 등 유용한 정보를 함께 나눈다. 2년도 채 못 되는 짧은 연혁이지만 이처럼 아기자기한 손맛이 있어, ‘책 만들기’ 동호회는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회원 수가 2만여 명에 육박할 만큼 급속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흔히 예술장정이라면 고급 천연가죽 장정에 근사한 금박 문양처럼 값비싸고 구하기 힘든 재료를 연상하지만, 감각만 있다면 버려진 폐품 속에서도 멋진 책 재료를 발견할 수 있다. 젊은 감각이 톡톡 튀는 색다른 디자인의 책들은 ‘책 만들기’ 동호회가 지닌 가장 큰 재산이다. ‘내가 만든 책’ 게시판에 들르면 다른 회원들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담긴 책을 생생한 사진으로 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버려진 골판지를 주워서 오려내고 예쁜 그림을 그려 일러스트 북으로 만들어낸 책이라던가, 포장지와 광고엽서를 재활용해 만든 책 같은 경우는 굳이 비싼 재료비를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가죽 장정의 분위기를 내고 싶다면, 유행이 지나 쓰지 않는 가죽 코트나 가죽 가방을 뜯어 쓰는 것도 알뜰한 방법 중 하나이다.

기성품으로 나와 있는 하드커버 노트 위에 장정만 새로 덧입히는 경우도 있지만, 보다 이색적인 나만의 책을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은 종이 제작부터 제본, 장정까지 전 과정을 경험해 보자. 획일적인 책의 모양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형태 속에 나만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만들기’는 2003년 말부터 동호회 내 소모임으로 ‘제본연구팀’ ‘편집디자인팀’ ‘수제종이팀’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연구 결과를 공유해 왔는데, 현재는 수제종이팀 소모임만 남아 활동하고 있다.

조각보 책.



이들이 만드는 수제종이란, 종이 펄프를 곱게 갈고 물에 풀어 고운 철망으로 뜬 뒤에 말린 것을 말한다. 종이를 뜨기 전에 펄프 속에 다양한 재료를 넣으면 색깔과 모양에 변화를 줄 수 있어, 기성품 종이로는 낼 수 없는 다양한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컨대 펄프에 색 한지를 넣으면 고운 색이 은은하게 배어나오고, 꽃잎이나 솔잎을 넣으면 자연의 미감을 살릴 수 있어 운치가 넘친다. 실험정신이 투철한 회원은 커피나 녹차 가루를 섞어 독특한 색채와 문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모은 종이를 제본하고 장정을 덧씌우면 나만의 수제 책이 탄생한다. 수제 책을 제본하는 방법은 실로 종이와 종이를 묶어 완성하는 실 제본, 본드를 발라 책 낱장을 연결하는 떡 제본으로 나뉜다. 제작이 간편한 것은 떡 제본이지만, 보다 독특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것은 실 제본이다. 보통 제본하고 책 겉표지로 감싸지만, 실 제본을 활용할 경우 책등을 노출한 형식 등 다양한 변종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 ‘비법 창고’ 게시판에 들르면 실 제본 방식에 대한 동영상 강좌까지 마련돼 있어 초보자들에게 유용하다.

- 새책 제작 뿐 아니라 낡은 책 복원에도 유용해

수제 책 제작법을 한번 배우고 나면, 새 책을 만들 때뿐 아니라 낡아 너덜너덜해진 책을 복원하는 데도 유용하다. 집집마다 한 권씩 있는 오래된 사전 같은 경우, 두꺼운데다 자주 펼쳐보기 때문에 실이 낡아 끊어지기 마련이다. 이럴 때 실 제본 방식을 활용해 끊어져 있는 실을 이어 종이를 묶으면 말끔하게 쓸 수 있다. 힘들게 실로 종이 하나하나를 엮을 때는 언제 끝나나 싶을 만큼 지루하고 고생스럽지만, 막상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올 때의 희열은 무엇보다 크다. 그래서 ‘책 만들기’ 회원들은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하거나, 소중한 자료를 오래 보관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수제 책을 떠올린다고.

퀼트로 만든 헝겊.

이렇게 틈틈이 만든 책들을 그냥 집에 모셔두기엔 아까운 노릇. 회원들이 한 달 간 머리를 맞대고 수제 책 전시회를 준비해, 지난 10월 초에는 동호회원 21명이 모여 수제 책 전시회도 열었다. 평소 퀼트에 관심이 많던 30대 주부회원 박귀선 씨는 전시회 출품을 위해 자투리 천을 일일이 꿰매 육아일기 책을 만들었다. 또한 고전적인 조각보 패턴을 응용해 현대적인 분위기로 재창조한 하영유 씨의 수제 책이나, “책은 장난감”이라고 설명하는 이영진 씨의 레고북도 이색적인 모양으로 인기를 끌었다.

틈틈이 써둔 글을 의미있게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수제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운영자 오세윤(24)씨는 “흔히 수제 책이라면 요즘 한참 부각되고 있는 북아트를 연상하지만, 책을 예술활동의 대상으로 삼는 북아트는 우리 동호회 활동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고 말한다. 수제 책의 매력이란 “소수 계층만 향유하는 예술로서의 북아트보다, 누구나 직접 책을 만들어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모 대기업 회장의 예술장정 문집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이름난 금속공예 작가가 은으로 세공한 케이스를 만들고 5권 한정본으로 제작, 그 희소성을 돈으로 따지기 어려울 정도라 했다. 하지만 최고급, 최상품의 물건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간직하고 선물하는 수제 책에는 책 임자에 대한 정성 어린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책 선물 하기 좋은 가을, 한번쯤 수제 책 만들기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고경원 객원기자 aponian@hanmail.net


입력시간 : 2004-11-0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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