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물건에 새 생명을…새로운 형태의 재활용 환경운동 펼치는 녹색가게, '부활'의 현장

국내 최초 리폼동아리 <풀빛 살림터>
버려진 물건에 새 생명을…
새로운 형태의 재활용 환경운동 펼치는 녹색가게, '부활'의 현장


“아이구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어느 부위에 시침을 해야 하는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가을비가 추적 추적 내리던 11월 10일 오전 서울 강북구 미아8동 주민자치센터 지하. 30,40대 여성 3명이 스커트 만드는 법을 배운다며 탁자에 둘러앉아 골몰하고 있었다.

강사 신덕래(48)씨는 “양재용 ㄱ자(尺)도 처음 잡아보는 주부들이라 옷 만드는 법을 익힌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의욕이 대단하다”며 “기본 양재 기술을 배워서 몸에 잘 맞지 않거나 유행에 뒤떨어져 입지 않는 옷을 손 봐서 입을 생각에 다들 열심이다”고 말했다.

- 수선기구 이용, 스스로 재생방법 익혀

국내 최초의 재생 전문 작업장인 ‘풀빛살림터’. ‘풀빛’은 환경 운동을, ‘살림터’는 재활용을 의미한다. 새로운 형태의 녹색가게로서 지역 풀뿌리 시민 단체인 ‘녹색 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이 문을 연 것은 지난 4월이었다.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1999년부터 시민 운동을 펼쳐 온 기존의 녹색가게가 재활용품을 팔고 사는 ‘교환’의 형식이었다면, 풀빛살림터는 하찮게 버려지는 물건을 직접 고쳐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키는 ‘부활’의 현장이다.

싫증나거나 망가진 것들을 고쳐 쓸 수 있도록 이곳에는 미싱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 수선기구가 고루 갖추어져 있다.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오전 11시 ~ 1시에는 ‘생활 미싱 강좌’가 열려 풀빛살림터 이용자들이 스스로 재생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하고 있다.

이 강좌 수강생인 주부 박미정(40ㆍ수유2동)씨는 지난 6월 우연히 전단지에 난 리폼(Reform·수선) 강좌 공고를 보고, 의류 수선비라도 아낄까 하는 절약 정신에서 의류 리폼에 도전했다. 마침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것을 만드는 DIY(Do It Yourself)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창조한다는 점에도 끌렸다.

“안 입는 바지를 줄여 두 아들의 고무줄 바지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큰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인데, 기성복으로는 고학년용 고무줄 바지를 구할 수가 없거든요. 그렇다면 집에 쓸모 없이 쌓아둔 옷을 이용해 내가 직접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박씨와 이웃에 살고 있는 유인숙(38) 주부 역시 “경제가 어려운데 돈도 아끼고 직접 만드는 기쁨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강좌에 참여했다가, 이제는 리폼 마니아가 다 됐다. “솔직히 처음에는 ‘싼 것 하나 사 입고 말지, 귀찮게 뭘 수선까지 하나’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실제 만들어 보니 애착심이 생기더라고요.” 유씨는 손수 만든 녹색 손가방을 들어 보이며 “10만원이 넘는 비싼 가방은 집에 다 놔두고 이것만 들고 다닌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만든 가방은 5학년짜리 딸 아이에게도 자랑거리라고 한다. “나도 하나 만들어 달라”며 친구들이 조를 정도라고. 또 “바자회에서 1,000 ~ 2,000원의 가격에 싸게 구입한 바지를 줄여서 식구들에게 보여 줬더니 가족들이 경탄을 한다”며 “간단하게 돈 버는 것 같다”며 흐뭇해 한다. 때문에 요즘은 헌 옷가지 등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 한다. 꼼꼼히 디자인을 뜯어보며 ‘이렇게 고치면 예쁠텐데…’라며 리폼을 구상한다. 올 겨울에는 다소 난이도가 높은 치마바지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이같이 주부들은 한결같이 리폼 강좌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준다. 주부 박희숙(33)씨는 “대안 생리대와 장바구니를 만든 것이 특히 재미있고 유익했어요. 안 입는 원피스와 남방을 가져와 새로운 작품을 만드니 시각적으로도 예쁘고, 사람들도 신기하게 본다”며 “개성 있는 옷을 입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이런 강좌가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의류·가구리폼과 폐품 이용한 장식품도

풀빛살림터는 비단 이 강좌 수강생이 아니라도 관심 있는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구비된 재봉틀과 실, 다리미 등의 기본적인 의류 리폼 도구는 한 시간에 1,000원으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또 주부들이 가장 높은 관심을 보이는 의류 리폼 외에도 가구 리폼이나 폐품을 활용한 장식품 등도 접해볼 수 있다.

풀빛살림터 입구에는 커다란 나무 탁자 위에 그 동안 이용객들이 만들어 놓은 재활용 창작품들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다. 길가의 굴러다니는 돌은 분위기 있는 수저 받침대로, 헌 군복은 아이들을 위한 보조가방으로, 가지치기된 나뭇가지는 예쁜 휴대폰 고리나 목걸이로 바뀌어 있다. 헌 벽돌 틈에 꽂아둔 이름 모를 풀은 어느 예술가의 미술품보다 멋스러울 정도. 이곳에서는 양재 전문가나 서양화가, 실용 공예 전문가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자원 재활용에 관한 효율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풀빛살림터 간사인 이소연(26)씨는 “어려운 경제 여건 외에 환경 운동과 나만의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 나면서 리폼에 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풀빛살림터를 찾는 많은 이용자들은 약간의 흠 때문에 버려야 하는 물건들을 다시 쓸 수 있도록 수선하는 방법을 물어 온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리폼에도 기본 원칙이 있다”며 “조금 유행이 지났거나 망가졌다고 무조건 리폼을 권유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버려지는 물품으로 또 다시 쓸모없는 제품을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예컨대 무릎이 헤진 바지를 잘라 작은 가방을 만드는 것보다는 바늘로 꿰매 입는 것이 자원의 최대 활용 측면에서 바람직할 수 있다. 또 아무리 촌스러워 보이는 옷이라도 중고매장에 내놓으면 사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그는 “리폼이란 제품이 심하게 훼손돼 도저히 원래의 모양과 기능을 살릴 수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 중 하나”라며 “어찌 보면 새 것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작업일 수 있지만, 효율적인 자원의 재활용과 환경 운동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11-17 12:00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