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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25시] 뮤지컬 감독 구소영
"창작의 고통과 희열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죠"





“저는 무대 앞, 뒤, 옆, 그늘진 곳에서 환호나 박수조차 어색한 그곳에서 배우들의 숨소리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두 시간 내내 함께 연기하고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뮤지컬 음악 감독 구소영(34).

얼마 전 성황리에 막을 내린 창작 뮤지컬 ‘소나기’의 음악 감독을 맡았던 그녀는, 1999년 ‘명성왕후’ 음악 조감독을 시작으로 ‘드라큘라’(00),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01), ‘한 여름 밤의 꿈’(02), ‘카르맨’(03), ‘달고나’(04) 등 창작 뮤지컬을 주로 맡아온 젊음 음악 감독이다.

“창작 뮤지컬은 치열함에서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창작 뮤지컬 음악 감독은 뮤지컬이 탄생부터 마감까지 함께 하거든요. 한편의 뮤지컬이 잉태되기까지 전과정을 함께 하죠.

산고의 고통을 느끼는 산모하고도 같구요. 성장하면서 변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는 부모 같기도 하죠. 때론 인생의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동반자 같기도 하고, 공연이 목적이면서 동시에 과정이고, 막이 내리는 순간, 전쟁을 같이 하고 살아 남은 영웅 같기도 하답니다.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고 나면, 서로가 알몸을 보인 것처럼,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동지가 되는 거죠.”구소영을 사람들은 창작 뮤지컬 전문 음악 감독이라고 부른다.

"음악감독은 팔방미인이 돼야"



“외국 뮤지컬처럼 이미 완성된 작품에는 음악 감독의 역할이 거의 없어요. 작품에 손을 대지도 못하게 하는 작품도 많거든요. 제가 개척할 수 있는 장르가 좋아요. 창작의 고통에서 느끼는 희열도 좋구요.”

뮤지컬에서의 핵심은 음악이다. 한국에서 뮤지컬 전문 음악 감독이 생긴 건 불과 6~7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뮤지컬에서 음악 감독은 연기는 물론이고 가수처럼 노래도 잘 불러야 하고, 음악에 맞는 춤도 잘 추어야 하죠. 노래, 작곡, 편곡, 연기 등 음악과 관련된 일에선 음악 감독은 모두 전문가여야만 해요.”

배우 선정도 직접한다는 그녀에게선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배우들 연습 과정을 지켜보고, 악단 연습 총 지휘를 맡으려면 적당한 카리스마는 기본일 것 같다고 말하자, 그녀는 웃으며 “글쎄요, 저는 카리스마보단 배우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스탭들과 같은 위치에서 움직여요. 다들 편하게 생각하는데요” 라고 말하는데, 마치 성악가가 아닌가 싶을 만큼 우렁찬 목소리에서 그녀의 카리스마가 직접 느껴졌다.

창작 뮤지컬 음악감독은 작곡가 선정과 편곡을 맡기도 하고, 대본 작업을 작가와 같이 한다고 하는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작품은 연출 선생님과 저만 빼고, 전 스탭이 모두 바뀌었어요. 지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창작 일지 쓰라면, 저 당장 써낼 수 있어요.” 이렇듯 음악 감독은 만능이어야 한다.

배우들에게 맘 좋은 누나 역할을 하는 그녀에게 제자들은 묻는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선생님이 가진 걸 다 주려고만 하죠? 조금씩만 줘야 선생님의 권위가 유지되고, 높아지는 거 아닌가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진정한 귄위는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 외형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란다.”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러시아 유학 시절 만난 그녀의 지도 선생님 뽀뜨르 알렉세이비치의 영향이 크다.

러시아 국립 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하던 시절,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그녀에게 진정한 예술은 인격에서 나온다는 것을 몸소 실천해 주신 선생님. 언어도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휘를 처음 배운 그녀에게, 선생님은 마임을 하면서까지 그녀를 가르쳤다.

눈빛으로 말하고, 자신감을 북돋워주고 그녀의 가능성을 애써 발견해 주려고 했던 선생님. 그녀가 러시아인들 속에서 의기소침해 하면 “우리 한국 음식 먹으러 가자” 고 그녀의 기분을 전환시켜주는가 하면, 그녀가 자신감을 잃을 때엔 “2차 세계 대전때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데, 소영을 만나게 해주려고 신께서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해 주었다” 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던 그 분.

“소영은 남들보다 음악을 듣는 힘이 있다”며 타고난 재능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이다. 그녀가 그에게 배운 것은 사랑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제자湧?대하는 방식도 뾰뜨르 알렉세이비치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 그대로다. 친구처럼 연인처럼, 엄한 부모처럼. “승우(배우 조승우)는 어려울 때 저에게 전화해서, 누나, 이럴 땐 어떻게 하는거예요? 라면서 상담을 하죠. 승우가 제 작품이 아닌 다른 작품을 해도 저는 늘 마찬가지로, 호흡을 맞추어 주고, 충고를 아끼지 않아요.”

숙명과도 같은 음악인생



구소영을 보면 음악 감독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녀의 인생은 마치 뮤지컬 음악 감독이 되기 위해 긴 시간의 준비 과정을 밟은 것 같다.

“제가 바쁘게 사는 건 어릴 때부터 정해진 숙명이었던 것 같아요. 무용 학원에서의 수업과 연습, 그리고 때마다 계속되던 각종 콩쿨 대회, 게다가 여러 자선 모임 같은 곳에서의 공연들까지.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며 춤추고 피아노 치면서 산 게 제 어린 시절이거든요.”

한국 무용가인 어머니 덕에, 무용 학원이 딸린 집에 살았던 그녀는 또래 친구들이 동요를 듣고 부를 때, 가야금, 장고, 북소리와 더 친했고,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를 하는 보통 여자애들과는 달리 하교 후에 엄마 무용학원에 가서 상무를 돌리고, 장고를 쳐야만 했다.

“그때부터 저는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았어요. 엄마는 이미 이때부터 내가 무용이 아니라 음악을 택할 것을 예상하셨대요. 부채춤이나 살풀이를 시키면 시큰둥하다가도 장고춤, 북춤,소고춤, 농악 등 손에 소리 나는 악기만 들려주면 신바람이 났다나요.”

소리에 일찍 눈을 뜬 그녀는, 세 살 때 아버지가 사다 주신 소형 전자 피아노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CM송을 그대로 따라 치기도 했다. 음악 신동이가 아닐까 흥분한 그녀의 어머니는 옆집 피아니스트에게 레슨을 받게 했다. 운명을 거역하고 싶어 방황도 많이 했다.

그녀가 찾은 것은 밴드의 기타리스트나 연극 배우였다. 음악과 상관없는 것이 하고 싶어 찾으면, 언제나 예술 분야였다. 선교 활동을 목적으로 러시아에 갔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 선생처럼 교회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피아노와 노래를 가르치다가, 우연히 국립 음악원 시험에 통과하게 된다.

그녀가 선택한 과는 생전 처음해 보는 지휘과였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녀는 운명처럼, 음악, 무용, 연기를 총지휘하는 뮤지컬 음악 감독이 된다.

방황속에서의 자아 완성



“제 방황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어요. 생각해 보니 그건 방황이 아니라, 한 인간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러시아 유학 시절, 선생님에게서 배운 사랑으로, 음악 감독 일을 하는 그녀. 잠깐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떠난 이후로, 일이 발목을 잡아 아직도 러시아에 가지 못 하는 그녀다. 언제라도 가고 싶지만, 아직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너무도 많기에 쉽게 떠나지 못한다. 그녀의 제자인 배우들이 드디어 무대에 오르면 그녀는 언제나 맘속으로 편지를 쓴다.

‘얘들아, 너희들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너희들이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출 때,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작은 보면 등 하나를 의지하며 수십개의 큐를 행여 하나라도 놓칠까 때로 손을 떠는 작은 사람이란다. 처음 지휘를 시작한 초보자처럼 말이지. 내 무대엔 화려한 조명도 의상도 분장도 없지.

하지만, 내가 너희들을 바라보는 이 곳은 나만의 무대가 펼쳐지고, 나는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난단다. 어떤 이들은 내가 그 곳에 있었다는 것 조차 모르는 채 극장문을 나서겠지만, 나 역시 어색한 커튼콜 인사를 뒤로 한 채 빈 객석을 돌아 쓸쓸히 분장실로 돌아오겠지만, 나만의 소중한 무대, 소중한 내 음악, 내 피아노, 지휘봉, 난 그것들을, 너희들 만큼이나 눈물나게 사랑한단다. 사랑한다. 얘들아.”

젊은 음악 감독 구소영.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배우들의 가슴에서 하모니가 되어 울려 퍼진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빛나는 것은, 무대 뒤 그들을 지켜보는 그림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오늘따라 무대 언저리가 유독 빛나 보인다.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


입력시간 : 2004-11-2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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