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은 세상과 통하는 삶의 공간 등 사람냄새 나는 전시 기획

[감성25시] 정민룡
골목은 세상과 통하는 삶의 공간
<아홉골, 따뜻한 담벼락 전> 등 사람냄새 나는 전시 기획


골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떤 사람은 꼬불 꼬불한 길 만큼이나 알 수 없었던 첫 사랑에 대한 느낌과 두근거리던 심장 소리 따위와 함께 첫 키스 장소로 떠올릴 것이고, 노상 방뇨했던 기억과 술 먹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싸우던 자신을 지켜 보던 전봇대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음유 시인인 당신은 이런 노래를 부를 수도 있겠다.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 보았지.’

골목길에 대한 추억은 제각각 다르겠지만 가슴 속에 살아있는 이야기,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아홉골, 따뜻한 담벼락 전’은 바로 골목에 대한 우리의 추억을 들추는 전시였다.

• "세상 모두가 아트 잖아요"
“중흥 3동이구요. 정다운 슈퍼 앞이예요. 정확히 252번지요.” 골목 이야기를 채집해 전시를 기획한 정민룡씨(34). “서울에 중흥동이란 곳이 있나요?” 서울 촌놈의 질문에, “여기 광주예요. 북구 중흥동. 점집이 많은 곳에서 우회전 하셔서 내려오면 정다운 슈퍼가 있어요.” 광주라고? 게다가 점집이 밀집한 곳을 지나 슈퍼를 찾으라고? 장소에서 느껴지는 낯설음은 이 전시를 더욱 참신하게 만들긴 했다. 갤러리에서 진행될 거라 믿었던 보편적인 생각을 깨고, 광주의 전형적인 달동네에서 열린 이번 전시에 대해 정민룡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홉골 따뜻한 담벼락전

“인간 냄새 풀풀 나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아트는 꼭 갤러리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잖아요. 도처에 숨어 있는 것이 아트죠. 작가는 주부이기도 하고, 아이들이기도 하죠.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죠.”‘아홉골, 따뜻한 담벼락 전’은 그의 말대로, ‘모두가 아티스트다’ 는 정신으로 기획되었다. 그렇기에 작가는 아이부터, 주부를 포함한 마을 주민 전체다.

올해 여름에 열렸던 참신한 전시인 ‘우리 집 살림살이 전’도 마찬가지다. 일상 생활사를 보여준 살림살이 전은 전시회장이 마치 전통 혼수 박물관이 아닐까 생각될 만큼, 생활의 때가 곳곳에 묻어 있는 낡은 소품이 대부분이었다. 그간의 삶의 체취가 묻어있는 것들 속엔 이야기가 숨쉬고 있었다.

재봉틀은 단지 옷을 누비는 기계가 아니다. 가족의 옷을 해 입히기도 하지만, 생활이 기울어지면 바느질을 해서 기울어 가는 가계를 일으켜야 하는 한 여자의 숙명을 대변하는 기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정민룡씨는 ‘북구 문화의 집’ 식구들과 함께 골목 이야기 프로젝트에 네 가지 이야기를 심었다.

“아이와 노인, 주부의 눈으로 본 중흥동 주민의 삶을 담은 전시죠. 그들은 모두 그 순간만큼은 예술가가 된 거예요.”

골목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아줌마들의 눈으로 본 골목과 그것이 연상시키는 자신만의 추억을 기록한 ‘삐툴 삐툴 골목에서 사람을 만나다’와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네 이야기인 ‘어린이 골목지리 탐험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녀의 역사 기록’은 홀로 사는 노인 7명의 생애를 영상 에세이로 만들어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한 ‘공동체 놀이 문화 체험’은 아이들에게 부모 세대의 놀이 문화를 알리고 직접 체험하는 놀이 축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마을 전체 주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전시 기간 내내 화기애애한 동네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정민룡씨는 “이번 전시의 꽃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구성된 ‘어린이 골목 지리 탐험대’예요. 첨엔 골목하면 뭐가 떠오르냐는 질문에 대책없이 똥이요, 똥개가 싼 똥! 이라고 말해, 웃음 바다를 만들기도 했죠. 한명이 웃으면 옆의 아이도 웃어서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또 골목이 뭐냐고 되묻는 아이들 때문에 한동안 난감하기도 했어요. 저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진행시키나 했죠. 하지만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발상에 제가 놀라고 말았어요.”

• 아이들의 눈에 비친 골목풍경
아이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랐다. 그들에겐 편견이라는 벽이 없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마을 지도에는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지 못한 소소한 것들이 포착되었다. 무서운 개가 있는 집, 아기 업은 할아버지의 평상, 나물 널린 집, 유리 박힌 도둑 금지 담벼락 등 볼 것 없는 평범한 골목길은 호기심 어린 아이들의 눈에 의해 재탄생되었다.

한편의 멋진 그림 지도가 탄생하자, 마을 주민들은 지도 앞에서 손가락을 짚어가며, 이건 누구누구네 집이네 하며 오히려 아이들보다 더 즐거워 하더랬다. 본질을 잃고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은 마음의 지도를 선물해 준 셈이다.

“프로도 아마추어도 아닌 동네 주민들과 함께 작업하는 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그것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어요. 제일 힘들었던 것은 시간 맞추기였죠. 요즘 애들이 어른보다 더 바쁘잖아요. 또 네 가지 이야기를 같은 마을에서 작업 하다보니 겹치는 부분이 많았어요. 한번 방문한 집에 골목 지리 탐험대가 들어가고, 다시 이미지 탐험대가 들어가고. 그래도 주민들이 싫은 내색없이 반갑게 맞이해 주어 따뜻한 이웃간의 정을 느낄 수가 있었죠.”

공동 지도를 설치할 때는 전문가의 손길을 빌려야만 했다. 전문가란 바로 마을 사람들이다. 마을엔 유독 목수 아저씨가 많아 다행이었다. 대형 공동 지도를 마을 앞 큰 골목에 펼치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 지도 설치하는 것을 도왔다. 망치와 스패너 빌려주신 동신 철물점 아저씨, 플래카드 설치를 도와주신 세탁소 아저씨, 공동 지도에 조명 전기 수시로 빌려주신 정다운 슈퍼아줌마가 있기에 일이 더 수월해졌다고 한다.

“중흥동은 1960년대 형성된 전형적인 달동네죠. 제목의 와우산 자락에서 경양방죽으로 흐르는 골짜기가 아홉 개가 된다고 해서 예로부터 아홉골이라 불린 곳이예요. 이곳은 저소득층 주민들이 살고 있고, 또 개발지와 미개발지의 틈에 아직도 살아 숨쉬는 유일한 곳이예요.”그가 골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향 완도를 떠나 혼자 타향살이를 하며 지냈던 자취방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그가 살던 광주의 자취방들도 아홉골처럼 좁은 골목이었다. 골목은 그에게 청춘이며, 방황의 시간이다. 그리고 삶의 소통길이다.

“골목 이야기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면서 골목이라는 공간이 주는 이미지보다는, 그곳에 사는 마을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골목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골목길의 평상과 아이들이 뛰어 노는 소리잖아요.” 그는 역시 휴머니스트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골목을 통해 보여주니 마을 사람들의 삶이 보이더란다. 골목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보여 주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 잃어버린 추억과 사랑을 되새김질

기억의 역사 새기는 5·18
우리동네사진관전
정씨는 기획자이기 이전에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였다. ‘우리 동네 가족 사진관’(03) 을 기획하면서 생활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영상, 미술 작가와 함께 광주 근교의 마을을 정해 돌며 마을 주민들의 가족 사진첩을 보면서 그들이 살아 온 이야기들을 채집했다. 그는 사진 속에 숨어 있는 진실들을 발견하였다. 일상의 거처에 평범하게 남아 있어 미처 발견하지 못하거나, 소중함을 알지만 살아가면서 너무도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바로 잃어 버린 추억과 사랑이었다.

어느 마을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잘려나간 반쪽 瑩坪?주인공 찾기, 처음 신혼 방 앞에서 찍은 사이 좋은 노부부의 기념 사진, 가족의 닮은 꼴 사진 등 인간의 일생이 사진첩 안에 담겨 있었다. 그는 그들의 역사와 생활을 보여 주려고 생활 박물관을 기획, ‘우리 집 살림살이 전’을 열었다. 그의 관심사는 점점 세상으로 향했다. 가족에서 이웃으로, 집안에서 골목으로. 골목 이야기 프로젝트는 그렇게 탄생된다.

“골목 이야기 프로젝트의 뒷얘기를 공개한 250쪽짜리 자료집도 나왔어요. 책으로 낸 이유는 비슷한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죠. 기획했던 사람의 생각이나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했으니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늘 그렇듯 숨어 있는 이야기가 더욱 재미있는 법이다.

12월, 곧 있으면 가족이 큐레이터가 되어 꾸미는 ‘꿈꾸는 아파트 전’이 열린다. 사진, 조형물, 영상, 그림이 전시가 되는데, 이번 전시회 장소는 아파트 단지다. 아파트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해체하고, 마음속에 꿈꾸는 아파트를 탄생시킬 준비를 하고 있단다. “내년엔 ‘아줌마 프로젝트’를 기획할 거예요. 골목 이야기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한편의 마을 스토리가 탄생하는 거죠. 아줌마를 매개로 풀어 나가면서 마을 축제로 이어지는 프로젝트 기대해 주세요.”아줌마들이 동네에서 풀어나가는 수다와 꿈꾸는 아파트 전, 그가 기획하면 포근하고 따뜻한 스웨터를 걸치는 기분일 것 같다.

오늘 저녁 귀가길, 그 동안 무심히 지나친 골목길로 들어가 보자. 골목에 당신의 추억이, 소중하지만 잊고 산 이야기가 숨어 있지 않은가. 골목은 우리네 삶이며,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거대한 예술품을 창작하는 예술가다.

골목은 세계로 통하는 비상구다. 북구 문화의 집 (062-269-1420)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12-02 00:09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