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 혼 뺀 '옛사랑의 향수'연애감정 일깨워준 준상에 일본 중년여성들 매료최고의 상품성, 배용준 일본도착 모습 헬기까지 동원한 생방송 파격

열도 휩쓴 욘사마 광풍
아줌마들 혼 뺀 '옛사랑의 향수'
연애감정 일깨워준 <겨울연가>준상에 일본 중년여성들 매료
최고의 상품성, 배용준 일본도착 모습 헬기까지 동원한 생방송 파격


11월 24일 오후 나리타 공항. 3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의 여성들이 출국장 로비로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100여명의 이들 ‘점잖은 여성’들은 자정이 넘어도 좀처럼 떠날 줄 몰랐다.

이튿날 오후 2시. 선글라스 낀 채 경호원을 대동한 ‘욘사마’가 손을 흔들며 출국장으로 나서자 3,500여 팬들은 욘사마를 연호하는가 하면, 비명을 지르며 열광 했다. 중년 여성의 품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날 나리타 공항은 개항 후 최대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언론사의 취재 경쟁도 뜨거웠다. 일부 방송은 배용준의 일본 도착 소식을 생방송으로 전했다.후지 텔레비는 인천 공항에서부터 배용준을 따라 나서 기내에 기자를 동승 시키는 것은 물론, 나리타 공항에는 카메라 11대와 취재 헬리콥터도 띄웠다.

TBS는 16대의 카메라와 취재 오토바이 3대를 동원한 것도 부족해 헬리콥터로 배용준을 호텔까지 뒤쫓았다. 헬기에서 촬영한 화면을 정규 프로그램 화면 한 켠에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특정 연예인의 동정을 헬기에서 생방송 중계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니혼 TV는 배용준의 1㎙ 근접 촬영권을 얻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에 담는 행운을 얻었다. 니혼 TV는 배용준의 일본 체류 4박 5일간의 취재 영상과 독점 인터뷰 등을 29일 저녁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수퍼 TV’를 통해 방영했다.

• 욘사마 가는 길마다 인산인해
하지만 극성 팬들의 열광 때문에 급기야 사고도 발생했다.

26일 낮 12시 10분께 배용준이 묵었던 호텔 뉴오타니 역시 욘사마의 ‘생(生) 모습’을 보기위해 날을 꼬박 샌 팬을 포함, 1,000여명이 운집했다. 호텔을 나서는 배용준을 조금 더 가깝게 보기위해 밀어 닥친 팬 때문에 10여명이 넘어져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공항, 호텔 등 배용준이 가는 길에는 밀려든 팬들의 벗겨진 신발, 휴대폰, 머플러 등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당초 배용준의 방문 목적지이자 사진전 개최지인 록본기 모리타워. 개막 이틀 전부터 철야로 대기하는 팬들을 포함 26일 오전 9시의 직전에는 3,000명 이상의 팬이 장사진을 이뤘으며, 당일 배포한 정리권 4,000매는 눈 깜짝할 순간 동났다.사진 전시회장에서는 안전 사고를 우려해 배용준이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사진만 보고도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는 팬들도 눈에 띄었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욘사마에 열광하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중년 여성들”이라며 “이들은 욘사마의 연인이 돼야 할 지, 욘사마의 어머니가 돼야 할 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도쿄발 기사를 보냈다.

• 향수를 찾아 준 욘사마

욘사마 열풍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일본에 한류 열풍의 불씨를 당긴 것은 ‘겨울 연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벌써 네 번째 방영을 앞두고 있는 ‘겨울 연가’ 에서 ‘준상’(배용준 역)의 순수한 이미지는 일본 팬들에게 잠재돼 있던 향수를 끌어 냈다. 특히 40, 50대 중년 여성들에게, 잊혀졌던 연애 감정을 다시 일깨워 준 것이다.

닛칸 스포츠에서 배용준 등 한류 스타를 전담 취재하는 야마우치 다카키 기자는 욘사마 열풍의 근원으로 ‘옛사랑에 대한 향수’를 꼽았다. 그는 “젊은 시절 마음껏 연애를 할 수 없었던 일본의 40, 50대 중년 여성들이 배용준을 보며 하나같이 연애 감정에 젖는다고 한다”며 “겨울 연가는 한동안 일본에서 자취를 감춘 복고 정서를 다시 끄집어 내는 기폭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불황으로 지친 일본인들이 고도 성장기였던 ‘쇼와 시대’인 1950~70년대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다.

최근 일본은 TV 시청률 저하, 음반 시장의 침체, 영화 관객 감소로 문화 컨텐츠 시장 전체가 큰 어려움을 겪자 결국 음반계와 영화계도 욘사마를 벤치마킹, 불황 타개책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 소설 등 대중 문화에서 향수를 자아내는 복고풍이 대히트 하고 있다.

음반 사업에서는 흘러간 명곡ㆍ팝송 편집 앨범이 인기를 끌고, 영화계에서는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제작 붐이 일고 있다. 올 여름 영화관를 석권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대표적인 예다.

• 수려한 외모, 다정다감한 이미지
배용준의 수려한 외모도 팬을 사로잡는 요인중의 하나다.‘욘사마의 어떤 모습이 좋냐’는 질문에 대해 일본 팬들은 “왜 그를 이토록 사랑하게 되는 지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인생, 보통 남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고 답변했다. 웃는 모습, 큰 키ㆍ눈ㆍ코ㆍ입술’ 등 외모가 수려하다는 답변도 빼놓지 않았다.

일부 언론은 만일 배용준이 작은 키에 볼품 없는 외모의 소유자 였다면 이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의 수려한 외모는 과거 10대 시절 ‘아이돌 스타’를 정신없이 쫓아 다녔던 지금의 40~50대 일본 중년 여성들에게 당시로 회귀한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만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보통 남자보다 큰 키와 근육질 몸매, 겨울 연가에서 보여준 그의 캐릭터는 일본 남편에 비해 훨씬 다정다감한 남자로 그려졌다는 해석도 있다. 또 서구의 스타보다 배용준이 같은 동양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일본인들이 더 큰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인기 요인중 하나이다.

배용준을 언어와 문화만 약간 다를 뿐 자신들의 현실 속에 있음 직한 ‘이웃집 왕자님’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공항에 몰려든 중년 여성들 중 일부가 질서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본 경찰과 보안 요원들에게 “키도 작고 못난 인간들…욘사마는 달라”라며 항의했다는 소식은 야릇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 효과 재창출해 준 기업과 매스미디어

광고 모델을 기용하지 않기로 유명한 소니가 배용준을 모델로 기용하면서 소니 매장에서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매장을 찾는 소비자들이 특정 상품 모델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욘사마 캠코더’를 주문한다는 것이다.

물론 배용준이 등장한 건강 음료, 초콜릿 등 각종 상품의 매출 규모가 광고 전에 비해 최소 30%이상 증가해, 배용준을 광고 모델로 기용한 업체 모두 ‘대박’을 터트렸다.

‘욘사마’가 ‘올해의 인기상품’ ‘올해의 단어’ 등으로 선정된 이유를 단정적으로 설명한다. 배용준의 열성 팬 90%이상이 가계의 ‘구매권’을 쥐고 있는 30~60대 주부다.

이들 주부는 수백만~수천만원을 써가며 한국에서 ‘겨울 연가 투어’를 즐기는가 하면, 일본 내에서도 배용준 관련 상품을 구매할 경제력을 갖고 있다. 일본 기업이 이들의 ‘헤픈 지갑’에 군침을 흘리는 건 당연지사. 방송, 신문, 잡지도 마찬가지다. 욘사마 소식이 전해져야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 잡을 수 있으며, 욘사마 사진과 관련기사 없이 잡지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해졌다.

이처럼 소비자(팬)를 구름처럼 몰고 오는 ‘욘사마’는 공급자(문화 사업, 광고주, 언론) 입장에서 최고 상품이다. 일본 기업이 ‘돈이 되는 욘사마’를 그냥 나둘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매스미디어는 자연스레 ‘욘사마’를 일본인의 뇌리에 재각인 시킨다. 이 각인(지명도)은 곧바로 업체와 배용준의 ‘매출’로 이어져 ‘또 다른 효과’를 창출 하고 있는 것이다.

• 철저한 팬 관리도 한 몫
팬들의 부상 소식 때문에 침울한 표정으로 기자 회견장에 나선 배용준을 일본 언론은 ‘미소 잃은 욘사마’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기자 회견에서 배용준은 부상당한 팬들을 ‘가족’으로 칭하며 눈시울을 적시며, 모든 치료비를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회견장에서 보여 준 그의 모습은 일본인들에게 ‘욘사마’라는 극존칭에 걸 맞는 ‘책임 있는 스타’의 자세로 받아 들여졌다. 기자회견장에서 일본 기자들은 배용준에게 “괜찮아요. 힘을 내요.”라며 오히려 위로 했다 한다. 일본 언론도 일부 팬들의 부상 소식보다는 배용준의 ‘사죄’(?) 소식을 더 비중 있게 보도했다.

배용준의 방문에 앞서 한 방송사의 토크 쇼에서는 배용준이 일본 방문 기간 중 혹시 모를 팬들의 부상을 위해 10억엔의 상해 보험에 가입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팬이)다쳐도 (치료비를 받을 수 있으니)좋겠다구?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물론 이 방송은 배용준의 ‘팬 관리’를 높이 평가했다.

큐슈대의 모우리 요시타카 조교수(사회학)는 “한 가지 이유때문이 아니라, 배용준의 개인적 매력과 옛 것에 대한 그리움 갖는 일본 팬들의 정서 등 수 많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해 욘사마 열풍이 일본 열도를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송두영 기자


입력시간 : 2004-12-02 15:14


도쿄=송두영 기자 dy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