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더 이상 참고 못살아!"사회인식 변화로 노년기 가족해체 늘어"늦었지만 내 인생 찾겠다"…자녀들이 이혼 권하는 경우도
가부장적 가족개념 붕괴, 황혼이혼 급증 "이전 더 이상 참고 못살아!" 사회인식 변화로 노년기 가족해체 늘어 "늦었지만 내 인생 찾겠다"…자녀들이 이혼 권하는 경우도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이모(58ㆍ여)씨는 최근 남편 김씨(60)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25년 전 중매로 결혼해서 1남 1녀의 자녀를 둔 이씨는 십여 년 전 남편이 직장을 그만둔 후 함께 가게를 열어 상당한 부(富)를 일궜다. 서울에 상가 서너 채를 갖고 있는 데다 시골에 부동산도 두세 군데 지니고 있다. 남들은 착실한 남편과 큰 가게를 운영하면서 부잣집 마나님으로 큰 소리치면서 산다고 부러워하지만, 그녀는 현실이 지긋지긋하다고 진저리를 친다. 이씨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이제라도 남편에게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 동안 아이들 혼인시킬 때까지는 꾹 참고 살려 했다”던 이씨가 급기야 참았던 울분을 터트린 것은 최근 친정 조카에게 장난감을 선물한 것을 두고 벌인 부부 싸움이 원인. 남편이 자기 허락도 없이 선물을 사 주었다고 이씨를 마치 도둑처럼 몰아 갔기 때문. 젊어서부터 남편 형제들이나 시어머니 일이라면 빌려서라도 아낌없이 목돈을 마련해 주면서 집안 살림에는 유난히 인색하게 구는 남편의 태도에 시달려 온 이씨는 “일생 함께 일해서 번 돈인데 10원까지도 전부 남편이 관리하면서 푼돈도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하고, 일거수 일투족을 통제 받는 생활을 더는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법률구조법인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이 지난해 9월부터 올 8월 말까지 1년간 면접으로 실시한 이혼 상담 306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년 넘게 혼인 생활 을 유지해 온 부부가 전체 상담건수의 24.2%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 동기 18.7%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특히 이혼을 희망하는 60대 이상 상담자 수는 전년 3.9%에서 이번에는 6.2%로 증가해 이혼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차츰 높아지고 있는 추세를 보여 줬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은 이 같은 상담 결과에 대해 “이전에는 연령과 비례해 혼인 기간이 오래될수록 이혼에 소극적이었고 부부갈등이 표면화하지 않았지만, 최근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부부 갈등의 문제도 고령 인구를 중심으로 증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예전에는 자녀들의 장래를 생각해 이혼에 주저하던 분위기도 점점 달라지고 있다. 자녀들이 오히려 “우리 부모를 이혼하게 해달라”고 나서 변호사를 수소문해, 상담을 의뢰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들이 자주 다투는 것을 보고 자랐다는 대학원생 박모(25)씨는 얼마 전 부모의 부부 싸움을 참다 못해 어머니에게 먼저 이혼 얘기를 꺼냈다. “장성한 자녀들 앞에서 어머니를 구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수없이 이혼을 생각하면서도 자식들 생각해서 못했던 부부들은 이같이 자녀의 권유를 받을 때면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김수진 변호사는 이에 대해 “황혼 이혼의 증가는 달라진 이혼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진단한다. 외도와 구타 등 충분한 이혼 사유가 있었음에도 참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과거 세태와 달리, 여성의 지위 향상과 이혼자에 대한 사회의 낙인이 크게 줄어 들면서 이혼에 대해 소극적이던 자세가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나 교수는 “노년기의 문제로 경제적인 부분만이 부각되면서 남성들이 퇴직 후 가정에 안착하기 위해 준비가 부족한 것이 노년기 갈등의 주 원인”이라면서 “황혼의 가정 해체를 막기 위해선 퇴직 전후 남성들의 배우자 및 자녀와의 새로운 관계 형성을 돕기 위한 교육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4-12-0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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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