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 위의 인생, 희망역으로 가다생의 밑바닥을 짚고 일어선 굴곡의 삶 "희망의 지표가 되고 싶다"

[화제의 인물] ㈜데코리 강신기 사장
보드 위의 인생, 희망역으로 가다
생의 밑바닥을 짚고 일어선 굴곡의 삶 "희망의 지표가 되고 싶다"


‘포기’란 김치 담글 때나 쓰는 말이다!

바퀴 두 개 달린 스케이트보드인 일명 ‘에스보드’ 제조회사 ㈜데코리의 강신기(44) 사장. 그가 최근 성공 스토리를 담아 펴낸 책 ‘지구를 흔든 남자’(이가서 刊)에는 위와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도대체 얼마나 인생의 쓰고 단 맛을 맛보았길래.

㈜데코리는 2003년 4월 법인으로 출발한, 전체 직원이 12명에 불과한 벤처 기업. 강씨는 “회사 위치로 보나, 나이로 보나 자전적 성공 스토리를 책으로 펴내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고 운을 떼면서도 그러나 “IMF 이후 잔뜩 움츠려 있는 이때 ‘희망’의 지표가 되고 싶어 감히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에스보드로 성공신화 쓴 벤쳐인
그는 사실 올해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은 벤처인이다. ‘에스보드’ 하나로 2004년 세계적인 발명 전시회(INPEX)에서 대상을 비롯한 5개 부문을 휩쓸었으며, 수 백억원의 로열티 계약을 이끌어냈다. 드라마틱한 성공 신화는 이 뿐만이 아니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은 그 이상의 화제를 뿌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12월초. 한 일간 신문의 귀퉁이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단신 기사가 실렸다. ‘지하철 선로 뛰어든 노숙자 구사 일생’. 기사 내용은 제목 그대로. 추위가 닥치자 거리 생활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으려고 지하철 선로에 뛰어든 노숙자가 구사 일생으로 살아났다는 것이었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면 강씨의 마음에도 먹구름이 낀다. 불과 3년 전까지 그 역시 서울역 바닥을 전전했던 노숙자였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누울 곳을 찾아 이곳 저곳 기웃거렸고,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필사적으로 무료 급식 장소를 찾아 다녔다. “때로는 정말 죽고 싶었죠. 전국에서 몰려든 노숙자들이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술 먹고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이리 저리 옮겨 다니기도 하고….”

그는 입에 풀칠 하기도 어려운 충남 부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스물 다섯 살 되던 해 상경했다. 이후 서울 봉천동의 초라한 봉제 공장에 취직해 고생하다가 한때 가맹점 12곳을 거느린 건강침대 회사 사장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 IMF는 그의 사업을 송두리째 삼키고 빚쟁이에 쫓기는 신세로 만들었다. “서울역 지하도로 걸어 내려 갈 때는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삶의 밑바닥을 쳐 보자’는 오기도 있었죠.”

그러나 거리 생활이 오기로 시작할 일은 결코 못 된다는 걸 절감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노숙 첫 날, 그는 뼛속까지 사무치는 찬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사우나로 도망치듯 몸을 의지했다. 그러나 다음날 다시 그는 서울역으로 돌아갔다. “사업 부도 낸 저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혼자 편하자고 사우나에 있는 것은 사치잖아요.”

사람은 어떤 환경에도 버틸 수 있는 적응의 천재라던가. 노숙 생활 이삼일이 지나자 그럭저럭 추위 속에서 잠을 자는 요령을 터득했다. 하지만 추위보다, 배고픔보다 그를 오래도록 적응이 힘들게 했던 건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이었다. “한 식당에서 음식 배달을 하려고 했더니 ‘뭘 믿고 맡기냐’고 박대하더군요. 이제 모든 사람한테 손가락질 받는 인간으로 전락했구나 하는 비애가 제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죠.”

지나가는 행인들이 던져 준 몇 푼의 돈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던 강씨. 자꾸 무너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노숙을 하면서도 새벽 인력 시장을 찾고 틈틈이 신문을 탐독했다. 어려운 가운데도 집에 꾸준히 생활비를 보냈다. 가족은 그의 버팀목이었기 때문이다.

노숙자에서 벤처기업 CEO로 인생역전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2001년 어느 햇볕 따스하던 봄날, 그는 아이들이 뭔가 열심히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킥보드였다. 한 눈에도 조잡했다. 발판은 겨우 발 하나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좁았고, 바퀴도 약해보였다. ‘가만, 저걸 어른들이 탈 수 있도록 만들면 어떨까.’ 태권도 공인 4단 등 만능 스포츠광인 그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즉시 고물상을 찾아가 고장 난 킥보드 하나를 얻었다. 여기에 스케이트 보드의 장점을 접목했다. 재기의 발판인 에스보드 발명의 시작이었다.

스케이트 보드에서 두 바퀴를 떼어 내고, 360도 회전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일명 ‘흔들어서 나아가는 구름판’으로 특허를 등록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실제 제품을 만들어낼 돈이 없으면 무용지물인 법. 한 번 ‘망가졌던’ 이력 탓에 주변인의 도움을 얻는 대신 최대한 정부 지원을 활용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3,000만원을 지원 받아 디자인을 개발한 뒤, 2003년 ‘대한민국 특허기술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한국기술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무려 15억원이라는 거액을 대출 받아 제품 개발에 박차를 기할 수 있었다. “정부 지원이 이렇게 많은데 그걸 몰라서 활용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널리 홍보 되면 좋겠어요.”

삶에 충실하면 기회는 온다
공고 출신인 그는 지난 8월에는 서울대 강단에 서기도 했다. 스포츠 마케팅의 성공 사례를 들려주기 위한 특강 자리였다. 2시간 짜리 강의에서 올해를 빛낸 이 행운의 사나이는 기회를 잡는 법을 이렇게 소개했다. “기회는 평생 세 번이 아니다. 무수히 왔다 흘러간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관심 있게 바라봐라. 그러면 뭔가 다른 시각이 보일 것이고, 그것이 성공의 열쇠다.”

덧붙여 그가 제시하는 팁 하나. “빚이 1억이다 2억이다 하면, 로또 대박 터트려 한 방에 인생역전 할 생각하는데 그러지 마세요. 큰 것만 쫓으니까 안 되는 거예요. 우선 잘 먹고 건강 유지하는 작은 일부터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겁니다.” 불황기 ‘희망’ 전도사 강씨의 메시지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12-16 17:25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