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속 性에 햇볕쪼이기 "섹스는 뽀송뽀송한 일상"실험연극 의 발칙한 주연배우멋지고 폼나게 섹스를 얘기하는 21세기 앨리스

[감성 25시] 연극배우 김영옥
이불 속 性에 햇볕쪼이기 "섹스는 뽀송뽀송한 일상"
실험연극 <오! 발칙한 엘리스>의 발칙한 주연배우
멋지고 폼나게 섹스를 얘기하는 21세기 앨리스


19세기의 호기심 많은 소녀 앨리스는 회중 시계를 보던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 들어가 어른들의 세상을 미리 체험하지만 21세기의 앨리스는 좀더 도발적인 여행을 원한다. 간 밤 언니가 몰래 읽던 야한 소설 속 성적 환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앨리스. 그 나라는 남자가 초경을 경험하고, 여자가 몽정하는 뒤집어진 세상. 자유를 꿈꾸는 미국 생쥐와 바람둥이 수탉이 있는가 하면, 거세당한 발발이, 여자만 상상하면 코가 커지는 뱀, 성의 자유를 외치며 혁명을 일으키는 빨간 당원이 된 가족들이 있는 곳이다.

새로운 성문화를 접한 앨리스가 꿈에서 깨어나 하는 말. “섹스는 이불속에서 몰래 보는 은밀한 게 아냐. 그늘 속에서 나와, 당당하게 햇빛과 비와 바람 속을 함께 활보하며 표현하는 뽀송뽀송한 일상인 거지.” 사춘기를 갓 넘긴 소녀의 깨달음치곤 좀 발칙하다. 솔직한 실험 연극 ‘오! 발칙한 앨리스’ 는 우리의 맘속에 살아 있던 앨리스를 불러내어 그녀로 하여금 금기시되고 뒤틀린 성(性)의 나신을 일광욕 시키기로 작정한 연극이다.

그룹 '動시대'의 배우
앨리스 역의 김영옥은 대학로에서 발칙하기로 이름난 그룹 動(동)시대의 배우다. 그녀는 2년전 같은 그룹, 같은 연극에서 이미 앨리스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2년 후 ‘오! 발칙한 앨리스’를 다시 상연하게 되었을 때, 좀 더 상큼하고 좀 더 발칙한 앨리스의 재탄생을 위해 연출가와 극작가만 빼고 배우들이 모두 바뀌었다. 하지만 그룹 동 시대 사람들은 앨리스 역에 다시 김영옥을 지목했다. 하나 같이 말하길, 배우 김영옥이야 말로 “누구보다 발칙” 하기 때문이다.

“앨리스와 저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닮았어요. 자신 앞에 새롭게 맞닿은 상황에 지극히 호기심이 많다는 것 하구, 두려움이 없는 면이 너무 똑같아요.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나, 어쩔 땐 사태 파악 못하고 무조건 달려드는 경향이 있거든요. 자기 감정을 숨기거나 감추지 못하고 표정에 다 드러나는 것두 어쩜 그리 똑같은지 몰라요.” 아삭아삭 신선한 샐러드 같다. 새내기 같은 풋풋함을 간직한 그녀는 어찌나 말을 귀엽게 잘하는지 이십대 후반의 나이가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다.

“앨리스는 정말 대단한 아이죠. 위험이나 곤경에 빠졌을 때도 무척 대범하고, 늘 낙관하거든요. 매사 긍정적이고 뚝심 있는 앨리스가 전 너무 좋아요.”

소위 강남 8학군에서 사춘기를 보낸 그녀에게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말 그대로 학창시절 놀이터였다. 댄디처럼 가볍게, 보헤미안처럼 거침없이, 애교 가득 섞힌 목소리로 먼저 사랑하고, 사랑 받았던 그녀. 패션지 화보 촬영을 할 때는 모델보다 더 시크(chic)하고, 섹시하게 어필할 줄도 알고, 포장마차에 가면 ‘엽기적인 그녀’보다 더 엽기적으로 놀 줄도 안다. 무대에선 실험 정신이 강해 자신과의 승부차기를 시도하는 그녀의 인생 좌우명은, 촌스럽지 않게 멋지고 폼나게 사는 거다. 가난한 연극학도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덕에 구김살 없이 밝게 자란 그녀야말로 천방지축, 낙천적인 앨리스나 다름 없었다.

CF에서 보여지는 커리어우면이 멋있어 보여 고등학교 때 이과반을 선택한 그녀는 CF를 볼 때마다 전문직 여성으로 살리라고 다짐까지 했다. 수학을 잘했고, 어릴 때부터 운동을 취미 삼아 한 덕에 못하는 스포츠가 없었고, 피아노, 기타 연주는 기본이었던 그녀는 학교 임원을 지내며 말까지 조리 있게 잘 해 학교에서 꽤나 유명한 학생이었다.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고 3이 되니까 막막한거예요. 이것저것 다 할 줄 아니 혼란스러웠죠. 진짜 원하는 것이 ゾ彫?진지하게 생각하던 중, 리더십 강하고 눈에 띄고 멋지게 사는거 없나? ?은 인생, 아주 뜨겁고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는거 아냐? 마음속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저를 자꾸 부추기는 거예요.”

무대 안팎의 열기와 열정에 매료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백화점에서 단골 손님처럼 열렸던 어린이 연극 ‘스크루지’. 연극이 끝나고 나누어 주던 과자 때문이었을까. 라이브로 펼쳐지는 무대의 매력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는 힘이 그녀의 마음을 두근대게 만들었다. 막이 내리고 과자를 받으려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과 배우들이 건네는 따뜻한 손, 무대와 관객 사이의 소통에 매력을 느낀 그녀. 그게 다였다. 따로 연기 수업을 받은 적도 없다.

“연기는 진실 되게 느끼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면 되는 거 아냐? 라는 단순한 자신감 하나뿐이었어요. 실기 시험 때 처음 연기를 한 셈이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2기. 실기 위주의 전문 배우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커리큘럼에 매력을 느끼고 찾아 간 연극원은 그녀를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연기란 것이 정말 궁금해 미칠 것 같았어요. 현장에 가서 구경하자, 그래서 갔죠. 연습이 끝나고 쉬는 시간 틈에 물을 마시러 휴게실에 나온 선배들의 모습을 봤는데, 그 땀이며 숨을 채 가다듬지 못해 상기된 얼굴들이 왜 그리 멋져 보이던지.”

연극원 졸업 후 프리랜서 배우로 활동하다 그룹 동시대 배우로 활동하는 김영옥. 이름만 들으면 그녀가 대략 낯설 수도 있겠다. 실험 연극만을 주로 해 온 그녀는 한 해에 공연을 가장 많이 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젊기 때문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당당함도 다작을 하는 이유에 한몫 한다.

“대학로엔 무수히 많은 공연이 있지만 작품의 수준은 10년전과 비슷하거나 텍스트 자체의 힘에만 의존한 무기력한 작품이 많거든요. 저는 배우라면, 자신이 가진 재료만을 꺼내 놓고 즐기려는 태도를 넘어, 스스로의 한계를 실험하는 고통스런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험 연극은 인생과 닮았다. 인생 자체가 무대에서 펼쳐지는 모험이고 실험 아닌가. 실험 연극이 매력적인 것은 배우의 장점만을 부각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약한 부분까지 스스로 꺼내 극복해 가는 과정을 인내하며 기다려 주는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대라는 신비한 공간이 갖고 있는 매력이고, 배우는 무대에서 보여주어야 하는 진실이란 역할에 흠뻑 빠지게 되는 것이다.

"깊이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당찬 그녀에게 이번 연극 ‘오! 발칙한 앨리스’ 는 의미가 크다. 똑같은 역할을 2년전과 똑같이 연기할까봐, 배우로서 가장 경계하는 매너리즘에 빠질까봐, 긴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초연의 앨리스는 무척 신선했어요. 앨리스가 꿈 속 여행에서 겪게 되는 이야기라 여러 에피소드가 흥미롭게 다가왔죠. 앨리스가 여행 과정에서 느끼는 심정이 저와 일치했거든요.” 하지만 그녀는 첫 째 공연에서 놓치고 간 부분이 많다. 여행 사이 사이 앨리스가 느끼는 변화들, 모험을 적극적으로 찾아 가는 스스로의 의지, 더욱 깊이 있는 캐릭터 연구를 통해 완벽한 앨리스 만들기에 전념했다는 그녀.

“욕심과 자신감만을 무기로 삼았던 발칙했던 그 시절의 자신과 잠시 안녕이예요. 눈 밑 잔주름, 다크 서클마저 사랑할 줄 알고, 깊은 호흡과 현명함을 지닌 조바심 속에 나를 가두는 일이 없이 묵묵히 훈련하는, 서른 즈음의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오! 발칙한 앨리스가 배우 김영옥을 성숙하게 만들었다. 곧 서른이 되는 그녀가 세상의 모든 앨리스에게 하고 싶은 말. “소녀들이여, 성에 대한 상상과 경험이 칙칙하고 푸석푸석한 하다면 이젠 그 위에 앙증맞고 귀여운 꽃 한송이 하나 그려 보세요.” 이미 앨리스를 넘어선 그녀의 제안이다.

오! 발칙한 앨리스를 보러갈 땐 옷장에서 가장 눅눅한 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성(性)을 밝은 햇빛 아래 끌고 나와 상쾌, 경쾌, 유쾌하게, 곰팡이 진드기 다 죽게, 바짝! 말려주는 발칙한 농담이기 때문이다. (극장 혜화동 1번지에서 12월 16~1월 2일까지. (02)765-7890)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12-17 10:46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