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조선목수의 예술혼최고의 기타 '브라만'탄생시킨 악기제작가

[감성25시] 조선 목수 곽웅수
장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조선목수의 예술혼
최고의 기타 '브라만'탄생시킨 악기제작가


올해 내한한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롤랑 디용은 브라만(Brahman) 기타 애호가다. 세계 어디를 가든 그는 브라만 기타만을 고집한다. 그의 연주를 들은 기타리스트 베르타로하스는 내한 연주에서 브라만 기타로 연주해 보고 싶다고 특별히 주문까지 했다.

브라질 기타리스트 더글라스 로라와 조앙 루이스는 브라만 기타를 접한 후, 다른 기타와 영원히 이별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로베르토 아우셀은 브라질에서 안셀모 김의 브라만 기타를 보고 브라만을 만든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세계 기타리스트들이 이렇게도 열광하는 기타 브라만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그는 특별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브라만 기타의 마력이 기타리스트로 하여금 넋이라도 빼 가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Brahman 조선 목수 곽웅수.’ 그가 명함을 내밀었다. 브라만이란 고유한 기타 메이커를 탄생시킨 악기 제작가 곽웅수씨는 자신의 신원을 ‘조선 목수’ 라고 밝혔다. 그가 만드는 기타 라벨엔 ‘조선 목수’라는 문구가 분명히 새겨져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수십 년 동안 기타 문화를 배워왔어요. 하지만 이젠 우리도 그들 만큼 진보했고, 누군가에게 문화를 배우기만 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중심이 되어 문화를 보급해야 될 때라고 생각해요. 그런 분명한 의식을 제 기타를 통해 표현한 겁니다.” 한국의 기타 문화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기타를 제작한다는 그다. 그는 지난 세기 동안 약탈당했던 우리의 과거 문화 유산이 결코 허술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런 의식은 악기를 제작하면서 자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런 자신감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세계 예술계의 새 기준" 자부심
기타리스트 권대순씨는 브라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브라만은 다른 기타와 차이가 납니다. 소리가 부드럽고 음이 오래 남아 여운이 감돌거든요. 연주자에겐 최고의 악기죠. 저음부는 깊고 고음부는 지속성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한번 브라만을 접한 사람은 눈에 브라만이 어른거려 다른 기타를 쓰지 못한다고 하는데, 분명히 브라만에는 혼이 담겨 있는 게 분명하다. “제 기타는 기술을 넘어 정신력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 예술계의 새 기준이라는 확신이 이제 실천을 통해 증명되어 지고 있는 거죠.”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기술이 세계로 뻗어 나간다니 이보다 더 뿌듯할 수가 없다. 곽웅수씨야 말로 예술혼을 지닌 장인이다.

“기타는 세계의 가장 소중한 물건들이 모여 이루어진 거예요. 기타를 보면 세계가 한눈에 보인답니다.” 세계가 한눈에 보인다니 그것만큼 경이로운 말은 없을 터였다. 그가 웃으며 말한다. “기타 하나 만들기 위해 전부 수입한 나무들만 써요. 그걸 구하기 위해 직접 해외로 나가기도 하구요. 기타 앞판은 가문비나무, 옆 뒤는 로즈 우드, 줄은 상아 등으로 만들었죠. 아프리카, 인도의 재료도 같이 섞였구요. 제 기타는 최고의 나무만으로 만들거든요.”

그래서일까. 기타를 주문한 사람들은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의 심정처럼 설레인다고 한다. “하하, 그렇죠. 물론 산타할아버지가 아이에게 선물을 줄 때처럼 기쁜 것도 없겠죠. 제 악기로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볼 때가 사실 가장 행복해요. 과연 제가 탄생시킨 악기가 제가 생각했던 소리를 낼까 조마조마 하면서 말이죠.” 그는 기타가 만들어지면, 직접 악기를 들고 주문한 사람의 집까지 찾아 간다고 한다. 그땐 자신의 아이를 입양 보내는 부모의 심정이란다.

음악에 심취한 철학도의 기타사랑
그의 기타 사랑은 대학교 때부터였다. 철학도였지만 음악을 좋아해 학과 공부는 제쳐두고 고전 음악 감상실을 전전하며 클래식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바이올린 첼로 기타 등 여러 악기들에 관심이 많았지만, 기타가 유독 그의 맘을 끌었다. 말이 없고 사색적인 그의 성격을 닮았기 때문이다. ‘내 기타를 만들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예일 악기 공장에 아르바이트 견습생으로 들어간 그는 그 시절부터 기타에게 인생을 빚진거나 다㎨愎鳴?말한다. “진리는 책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삶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기도 하죠. 철학 공부는 상아탑에서가 아니라 악기를 만들면서 했으니까요.”

나무의 성질을 통해 이성간의 사랑, 이별, 결혼, 이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기 때문이다. 나무를 접착제로 붙이다 보니 접착력이 강하면 아무리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더란다. 나무의 결을 통해 자식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제법 그럴싸하다. 나무엔 저마다의 결이 있어 안 깎이는 방향으로 억지로 깎아 봤자 좋은 나무 하나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자식을 가르칠 때 한가지 교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면 잘 될 아이도 틀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그는 나무를 깍으며 터득하였다.

“견습생이었을 때 폼 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사포질만 시키는 거예요. 자존심이 상했죠. 고급 기술을 익히러 왔는데 종일 사포질만 시키니 원망스러울 수 밖에요.” 하지만 악기를 만들면서 사포질이야말로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인생도 마찬가진 거 같아요. 고급 기술에 의해서만 사회가 돌아가는 건 아니잖아요. 사회가 원활하게 잘 돌아가려면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야 하잖아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기타를 통해 배웠다는 그다. 기타가 그를 만든 셈이다.

곽씨는 ‘클래식 기타’라는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경기가 안 좋을 시기여서 실패한 사업이긴 하지만 아직도 ‘클래식 기타’는 기타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애독서다. 그에겐 가장 힘든 시절이기도 했다.

마땅한 공간이 없어 비닐 하우스에서 작업실을 차리기도 했고, 그 곳도 여의치 않으면 축사를 개조해서 기타를 만들며 살았다. 작업실 옆 텐트가 그의 집이었다. 최고의 기타를 만들어야 한다는 혼으로, 기타 만드는 일에 그의 전부를 바치던 시절이었다. 유혹의 손길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는 결코 한눈을 팔지 않았다. “기타 만드는 일을 포기하면 영원히 타성에 젖어 못 만들 것 같더라구요. 혹, 다른 일로 성공이라도 하면 그땐 기타와 영영 헤어질 것 같았어요. 손의 감각을 잃을까봐 불안도 했구요.”

그는 사실 손재주가 없는 목수다. 손이 굼떠 무얼 만드는 일엔 영 젬병이었다. 속도 또한 느렸다. 그가 가장 자신 있는 일은 공부하는 일, 생각하는 일이었다. 그는 학자 타입의 인간형에 가까웠다. 신기하게도 자신이 아니어도 누군가가 할 수 있고, 식은 죽 먹기 같은 일엔 도통 관심이 가지 않았다. 가장 못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일이야 말로 매력적인 일로 다가왔다. 팔자려니 생각했다.

인내와 고통의 기타 만들기
기타 만드는 일이야 말로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동반한다. 가구 만드는 일과는 또 달라 연주자의 감각을 지녀야 좋은 악기를 만들 수가 있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음악 감상에 치중한다. 목수라면 거뜬히 만들 수 있는 일이 그에겐 두 배, 세 배로 더디게 걸린다. 종일 작업실에서 음악을 듣고, 생각하고, 연구하기 때문이다. 원하는 소리를 내기 위한 명상의 시간도 갖는다. 그는 악기를 가장 늦게 만들기로도 유명한 제작가이기도 하다. 곧 탄생하게 될 악기가 궁금해 주문한 사람 애간장 다 녹이는데 선수라고 한다. 하지만 브라만 애호가들은 그를 떠나지 못한다. 기타를 받는 순간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이미 톡톡히 받았기 때문이다.

기타 제작이 그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중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도맡아 하는 일만을 한다는 그는 어릴 적 등대가 있는 외딴 섬에 살았던 기억을 들추어 낸다. 대자연속에 혼자 놀면서 섬 전체를 자신의 것 마냥 누리고 살았던 그는 자신이 섬의 왕자라고 착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주인 의식은 거기서 싹텄다. 섬 전체를 자신의 영지라 생각한 소년은 커서 기타 공장의 공장장이 되었고, 기타를 빚어내 생명을 불어넣는 조물주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곽웅수씨는 기타 문화의 위상 정립을 위해 기타매니아(www.guitarmania.org) 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내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주체 의식, 세계 기타 문화의 새 중심이 되기 위해 만들었어요. 친구들과 작곡, 편곡을 하고 작품을 만들어서 연주를 합니다. 이 사이트를 통해 자체적으로 참여자의 작곡과 연주를 악보로 출간하고 음반으로 만들어요. 친구들끼리 음악을 들어주고 평해주며 세계 기타 문화의 새 중심으로 진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이트죠.”기타 매니아의 모토는 ‘세계 기타 문화의 새 중심, 통일 조선’이다.

사이트 저변을 흐르는 강력한 힘은 기타를 세계의 중심이 되고, 세계가 하나로 통일되는 바람, 그것이다. 곽씨의 이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의 귀로 듣고 우리의 귀로 판단합니다. 이제 기준은 우리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큰 변화입니다.”

조선 목수 곽웅수씨의 세계로 향한 진보의 발걸음은 계속되어야 한다.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12-22 15:46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