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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영숙 숙명여대 교수
"TV를 끄면 인생이 켜집니다"
TV에 대한 잘못된 환상깨기 11년째, 1월 시민운동단체 발족






‘TV를 끄고 인생을 켜라(Turn off TV; Turn on Life)’. 이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맞아!’ 라는 반성의 감탄사를 자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아주 둔감하거나 혹은 반대로 아주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1931년 TV가 첫 선을 보인 이래 TV 중독으로 인한 부작용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바보 상자’, ‘리모컨 아빠’, ‘유아 비디오 증후군’, ‘카우치 포테이토 신드롬’, ‘TV 커머셜 비만’ 등 TV 중독이 개인과 가족, 사회에 끼치는 폐해를 설명하는 숱한 신조어들도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에서, TV에 대한 오해는 심각하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TV를 보면서 노래를 따라 하고 또 영어를 흉내내는 것을 보고 TV가 좋은 선생인 줄 착각한다.

이런 TV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깨기 위해 11년째 목소리를 높여 온 숙명여대 서영숙 교수 (52ㆍ아동복지학과). 서 교수는 숙명유아원 원장 시절인 1994년부터 유아원에서 시작해서 상급 학교, 교회 등을 대상으로 ‘TV 안보기 운동’를 전개해 오고 있다. 특히 서 교수는 11년째 펼쳐 온 이 운동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오는 1월 11일 ‘TV를 꺼야 삶이 살아난다’라는 기치 아래 범국민 시민운동 단체 를 발족시킨다(캐치프레이즈와 단체명은 cafe.daum.net/notvweek에서 공모 중).

TV에 내맡긴 아이, 학자로서의 책임 절감
서 교수는 “사실 나는 이런 단체를 조직할 만큼 그렇게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 동안 학부모들의 반응이 너무 좋은데 용기를 얻어 결심했다”며 TV 안보기 범국민 시민 단체를 결성하난 데 앞장 서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그는 “갈수록 늘어나는 맞벌이 가정에서는 아예 아이들을 TV에 내맡긴다”며 “TV 시처이 아이들을 말썽 없이 내버려 둘 수 있는 맞벌이 부부용 육아법”이라고 개탄했다. 아동복지학을 가르치는 학자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토로한다.

그가 주창한 ‘TV 안보기 운동’은 학자적 임무의 연장이었다. “마리 윈(Marie Winn)이라는 미국의 도서관 사서가 쓴 ‘TV를 끄라 (Unplugging the Pulg-in Drug)’라는 책을 1992년 번역 소개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어요.” 이후 미국의 상황을 그는 계속 추적해 왔다. “10년째 미국의 ‘TV끄기 네트워크(www.tvturnoff.org)’ 가 벌이고 있는 ‘1년에 1주일은 TV끄기 운동’ 캠페인에 지난 4월 1일, 전국적으로 약 760만 명이 동참했다죠.” 그의 목소리엔 ‘우리도…’ 하는 부러움이 묻어 있다.

1월 출범 예정인 ‘TV 안보기 시민운동 단체’는 이 캠페인이 걸음마 단계의 범국민 운동에 걸맞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주말을 제외한 ‘주 5일 TV끄기’를 어린이 주간인 5월 첫째 주와 독서의 달인 9월중 한 주 등 1년에 2차례 벌인다는 계획이다.

서 교수는 “이 운동이 많은 국민의 동참을 이끌어 내려면 부족한 점이 많다”고 전제한 뒤 “이 운동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삽화 등 이미지를 확보하는 게 당장 급하다 ”고 말했다. 화가들의 동참 등 외각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 또 앞으로 ‘TV끄기 운동 셔츠 입기’ 등 기금 마련을 위한 구체적 사업에 대해서 설명회를 갖고, 시민 단체나 언론계와의 연대를 모색하는 작업 등은 세부 행동 강령인 셈.

리모컨 아빠가 리모컨 아이 만든다
서 교수가 각별히 주목하는 대목은 유아 교육과 가정의 복원에 있다. “유아기 때 TV에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오감(五感) 중 시각과 청각만 사용해 언어 발달 장애 등 심각한 병리 현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경고가 그래서 나온다. 그는 또 “조사에 의하면 TV는 70% 이상이 혼자 본다”며 일반적 시청 행태를 지적하고 “그 결과, TV가 부모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하는가 하면 나아가 부모를 성가신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 말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엄마와의 대화(상호 작용)가 부족하고 수동적으로 TV를 많이 본 아이들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해져 학력 저하에 시달렸다는 것. 심할 경우, TV 중독으로 자폐증까지 유발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요즘 대학생들이 글쓰기나 토론 능력이 미숙한 현상도 ‘성장기 TV 과다 노출’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모의 TV 시청 시간과 아이들의 시청 시간이 정비례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서 교수는 “아이들이 TV을 많이 보게 되는 현상은 두 말할 필요 없이 부모들의 책임”이라고 못박는다. ‘리모컨 아빠’라는 냉소적 신조어가 말하듯 서 교수는 “가정에서 부모들의 무절제한 TV 시청이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고 있는지 반성해야 된다”며 반성을 촉구했다.

서 교수의 ‘TV 안 보기 운동’에는 서구 일각에서 전개되고 있는 ‘반(反) 문명 운동’ 식의 극단적인 목표는 없다. 서 교수는 “나도 집에 TV가 있다. 드라마도 재미있게 본다. 다만 TV를 보되 ‘의식을 두고 조절해서 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TV를 볼 수 밖에 없는 현대 사회의 현실을 인정한다는 것. 기존의 비타협적 반(反) TV 운동이 아니다.

“흔히들 TV의 폐해를 ‘바보 상자’ 등 저질 내용에 초점을 두고 프로그램 개선을 촉구하고 말죠. 우리의 운동은 TV의 내용 개선을 기다릴 게 아니라, 시청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겠다는 보다 적극적인 시민 운동을 지향해요.” 기존의 TV 비판 운동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TV를 끄고 살아 보기’를 경험한 가정들은 먼저 금단 현상을 염두에 둬야 한다. 당장 TV를 못 보게 되자, 아이들은 “TV를 켜 달라”고 짜증을 내고, 남편과 아내도 할 일을 못 찾고 안절부절하게 된다. 서 교수는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다들 저녁시간이 이렇게 긴 줄 몰랐다’, ‘심심풀이로 애들과 뒹굴고 놀고 책 읽는 시간도 훨씬 늘었다’, ‘거실의 소파 배치가 기형적이란 걸 느꼈다’, ‘무엇보다 애나 어른이나 자연스레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더라’ 등 고백이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TV를 끄니 진짜 인생이 켜지더라는 것.

"먼저 1주일만 버텨보세요"
이 운동이 전개되면 가장 난감한 것은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이다. 그나마 TV 보기가 소일거리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TV를 끄자고 쉽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서 교수는 “이 경우는 더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전제하고 “우선 노부모님들도 참여시켜 옛날 놀이도 살려내는 등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라”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모든 가족을 위한 가장 확실한 실천 방안은 무엇일까? “일단 리모컨부터 치워 보세요.”

인터뷰 끝날 무렵, 서 교수가 건넨 말. “한강을 장식한 화려한 조명을 우리는 가끔 보니 좋은데, 물고기들은 불면증 걸리지 않겠어요?” 새해에는 정말 TV를 끄고 인생을 한 번 켜 보자는 당부가 화두처럼 던져졌다. TV 끄고, 1주일 버타면 성공적이란 얘기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


입력시간 : 2004-12-2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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