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女帝로 우뚝 선 '귀여운 악바리'"20살 전에 4대 타이틀 통합 챔피언" 야심SBS드라마 의 실제 모델

최연소 여자복싱 세계챔프 김주희
주먹女帝로 우뚝 선 '귀여운 악바리'
"20살 전에 4대 타이틀 통합 챔피언" 야심
SBS드라마 <때려>의 실제 모델


원ㆍ투ㆍ원ㆍ투ㆍ원투!

한숨뿐인 운명을 향해 때려!

눈물만 안겨 주는 사랑을 향해 때려!

못 믿을 세상을 향해 때려!

2003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SBS TV의 드라마 ‘때려’ 속 여고생 복서 ‘유빈’의 실제 모델 김주희(18ㆍ거인 권투체육관)가 지난해 12월 19일 최연소 여자 복싱 세계 챔피언(국제 여자 복싱 협회ㆍIFBA 주니어 플라이급)이 됐다. 김주희는 지난 1999년 육상을 하던 중2학년 때, 다이어트 하려 복싱을 배우던 언니의 심부름으로 권투장에 들렀다, 우연히 글러브를 끼었다. 그리고 6년 만에 세계를 눕혔다.

서울 문래동 사거리 허름한 체육관에서 만난 김주희의 첫 인상은 별명 그대로 ‘귀여운 복서’. 생글 생글 웃음기가 떠나지 않는 눈매, 키 160㎝도 채 안 돼 보이는 몸집, 복서라고 하기엔 너무나 곱고 작은 주먹…. 첫 눈으론 세계 챔프 김주희를 알아 보기 힘든다. 그런 기자에게 그는 “제가 김주희”라며 샐쭉한다.

김주희는 사실 이미 지난 2002년 여자 초대 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서 한국 제 1호 여고생 복서로서 대선배 이인영과 맞붙은 것을 계기로 크게 주목 받기 시작했다. 당시 이인영에 4라운드 TKO로 유일한 패배를 맛을 봤지만, ‘깡’ 있는 파이팅 덕택에 다음 카페(cafe.daum.net/foreverboxer)에 팬을 5,000여명 거느릴 만큼 ‘인기짱’.

챔피언이 된 뒤 속 편하게 쉬었냐고 말에 그는 “쏟아지는 인터뷰며 방송 출연, 해서 좋긴 좋은데 쉴 틈이 없었어요”라며 웃는다. 유명세 치르느라 지난 성탄절 때 친구들과 퇴계로 거리로 강아지 구경 간 것이 기억에 남는 외출의 전부라는 그에게는 세계 타이틀전의 긴장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하다.

지옥같은 훈련과 땀으로 이룬 감격
즐거운 수다를 하듯 바쁜 요즘을 전하는 그의 코 잔등엔 아직도 퍼런 멍자국이 역력하다. “휴가는 열흘 정도면 충분했어요. 1월 1일부터 다시 도전자로 돌아가, 더 독하게 샌드백을 치기 시작했다”는 목소리엔 세계타이틀 획득 뒤 더욱 불붙은 집념이 느껴진다. 김주희는 ‘20살까지 이미 딴 IFBA을 포함한 4대 타이틀 통합 챔피언이 되겠다’고 선언해 놓은 상태.

김주희는 세계 타이틀전에서 멜리사 셰이퍼를 심판 전원 일치 3-0 판정(1라운드 2분씩, 10라운드 경기)으로 꺾고 기자 회견 내내 울었다. 그 때 왜 그렇게 계속 울었느냐고 묻자, 그는 “죽을 것 같은 순간까지 쏟았던 땀의 대가에 스스로 감격했던 것”이라고 고백한다. 사실 그는 타고난 복서는 아니다. 한 스텝 한 스텝 지독한 연습으로 오늘을 이룬 악바리다. 경기 중 주저 앉고 싶을 땐 ‘지옥 같았던 훈련’을 생각하며 어금니를 악물었다고 했다.

정문호(46) 거인체육관 관장은 “내가 트레이닝을 맡은 5년 여 동안 단 한번도 연습을 빼먹은 적이 없다”며 복서로서 김주희의 최고의 강점으로 성실성을 꼽는다. 정 관장은 또 “가끔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났다는 선수가 있다. 그러나 겪어 보면 오래 못 간다”며 “사실 트레이너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의 선수가 바로 ‘악바리’ 김주희 같은 복서”라고 귀띔한다.

세계타이틀 매치를 준비하던 7개월 동안 김주희는 3,500㎞ 로드 워크와 스파링 400라운드를 소화했다. 무서운 연습량이다. 일부러 줄여서 말하기도 하는 것은 되레 의심이나 받지 않을까 해서다. 그의 경쾌한 풋워크와 날렵한 몸놀림, 압도적인 스태미나의 비밀이 새벽 5시에 시작해 밤 11시에 끝나는 꾸준한 훈련에 있었던 것.

김주희는 육상 선수 출신답게 빠른 발을 강점으로 하는 전형적인 아웃복서다. 한 방보다는 연타로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아웃복서다. 그는 자신의 복싱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 “손 수(手)가 많은 선수가 가장 무서운 선수라 한다. 상대방이 숨쉴 틈을 안주기 때문이다. 난 그런 선수”라 자부한다.

복싱 경기장을 직접 찾아 링 가까이서 경기를 지켜 본 사람이라면 실제의 복싱이 TV를 통해 편안히 감상하듯 보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안다. 주먹이 날아들 때 복서들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쉬잇 쉿’ 하는 면도날 같은 호흡이며, 간간히 사방으로 튀는 핏방울…. 남자들도 눈살이 찌푸려 진다.

‘사춘기 소녀 같은 수줍게 웃고 있는 그가 어떻게 복싱을…’ 하는 생각에 “겁나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약간의 의외다. “겁나요. 특히 오빠들 경기를 링 주변서 지켜볼 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려질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는 곧 “그런데 링에 올라가면 신기하게도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복서로서 숨은 승부 근성을 드러낸다.

우울한 성장기 잊게 한 '챔프 꿈'
그는 경비일 하시는 아버지, 언니 등 모두 셋이서 산다. 엄마는 그가 어릴 적 훌쩍 가족을 떠났다. 그래서 인지 그는 가족에 대해 말을 아낀다. 그의 사춘기의 전부라고 할 지난 5년은 복싱이 그의 전부였다. 샌드백을 치며 친구들과 수다도, 성장기의 방황도 잊었다. ‘세계 챔프 김주희’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만 보고 뛰었다. 무서운 10대다.

그에게도 대학은 동경의 대상이다. 지난해 세계 타이틀전 준비로 미뤘던 대학을 내년에는 가고 싶다. 사실 미뤘다고 하지만 챔피언이 되기 전에는 어떤 대학도 그에게 흔쾌히 손을 내밀지 않았다고 정 관장은 전한다. 지금은 물론 사정이 다르다.

그래도 복싱 하다 보면 콧날이 무뎌지고 주저 앉을지도 모르는데? 김주희는 대뜸 “통합 챔피언 획득해 번 돈으로 코 세우고 남자 친구도 만들 것”이라며 “성형 미인 싫은 남자라면 하는 수 없죠”라고 피식 웃는다. 이번 IFBA 세계타이틀전서 김주희가 받은 대전료는 5백만원. 챔피언일 땐 3천~4천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사진 예쁘게 찍어 달라며 복싱 포즈를 잡고 선 그의 눈빛엔 우울했던 성장기를 때려 눕힌 ‘헝그리 정신’이 도사리고 있다. 김주희는 3월 말 성남서 챔피언 1차 의무 방어전을 갖는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1-04 16:52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