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조각은 나에게 행복의 원천"손과 몸으로 익힌 '그만의 기법'으로 '그만의 명품'만들기에 긍지

[한국의 장인들] 유리작가 김성연
"유리 조각은 나에게 행복의 원천"
손과 몸으로 익힌 '그만의 기법'으로 '그만의 명품'만들기에 긍지


유리 작가 김성연(56)씨는 유리에 반한 사람이다. 29년전 유리 회사에 입사하면서 그는 유리가 만들어지는 현장에 처음 가 봤다. “유리 도가니에 오렌지 불꽃이 일렁거리는데, 그 주위에서 사람들이 일을 하는 모습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다”는 그는 그날 주황색 유리 조각을 하나 챙겼다. 그 날 이래 그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집에서 경기도 광주의 회사까지 통근 버스로 출퇴근할 때마다 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주황색 유리 조각을 잘강거렸다. 유리 조각은 그에게 행복의 원천이었다.

김씨가 요즘 빠져 있는 것은 꽃이다. 물론 유리로 만든 꽃.

경기 용인시 삼가동 용인대학교 앞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도 그는 꽃을 만들고 있었다. 영국 BBC방송 출판부가 펴낸 원예도감에 실린 ‘테디 베어’라는 해바라기 꽃이었다. 해바라기의 일종이라지만 금잔화처럼 노란 꽃잎이 가운데까지 빽빽한 모양이라 유리로 재현하기가 매우 어려워 보였다.

그는 잘고 긴 꽃 잎 수 십 장을 왁스로 만들어 놓았다. 왁스 위에는 꽃잎의 결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수집장의 꽃잎을 지점토 위에 꽂아 해바라기의 형태를 만들어 보였다. 이제 저것을 토대로 석고틀을 굽고 그 석고틀에 유리가루를 넣어 다시 구워야 한다. 구울 때의 온도 조절에 따라 작품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꽃잎이 많으면 꽃잎 양 쪽의 온도차가 생기기 때문에 굽는 작업은 더욱 어려워진다. 꽃잎을 왁스로 만들어내는 일도 만만치가 않지만, 그걸 다시 유리로 재현해 낸다니.

그 대단한 도전을 두고 김 씨는 “미련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그걸 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원래 책상 위에서 펜대를 굴리면 되는 디자이너였다. 작품은 장인들이 알아서 만들어 주었다.

1976년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두산유리(현 두산테크팩) 상품기획실에 디자이너로 들어간 그는 21년 동안 대기업에서 크리스탈 기물을 디자인했다. 그가 디자인한 작품은 세계적인 수준에서도 뒤떨어지지 않아서 89년에 코닝 유리박물관이 영구 소장용으로 한 세트를 구매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편한 디자이너의 길을 버리고 매일 손이 베이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고된 장인의 길을 선택했다. “회사에 있으면 아무래도 대중적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보통 물건 20년 했으니까 대단히 사적인 물건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는 그런 물건을 “소비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이라고 표현했다.

1998년 누이 소유의 빈 건물에 스튜디오를 내서 독립한 그는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오전 8시반부터 오후 5시반까지 하루 8시간 노동을 지킨다. “손으로 하는 일은 시간을 쏟은 만큼 기량이 늘기 때문”이다. 기량이 늘어야 생각이 넓어지고 생각이 넓어지면 다시 기량을 늘리고 기량이 늘면 또 생각이 넓어진다는 그는 ‘손이 가능할 때까지 연습을 시켜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일년을 해야 마음에 드는 작품은 몇 개다. 우선 공정 자체가 빨리 될 수 없는 탓도 있지만 그의 감식안이 그만큼 까다롭기 때문이다.

고대 유물같은 유백색 유리 기물
그가 만드는 것은 유백색의 유리 기물들이다. 유리 난초꽃이 피어있는 치즈트레이, 자주색 꽃무늬가 잔잔하게 새겨진 접시, 꽃잎이 날개처럼 펼쳐진 트로피 등은 고대에서 건져낸 유물 같이 묵직하고 은은하다. 햇빛이 비치면 반투명의 유리로 보이고 그늘 속에 있으면 돌 같다. 그가 만든 트로피는 2000년 광주비엔날레에서 트로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렇듯 그의 작품이 오래된 물건처럼 보이는 것?그가 선택한 유리 만드는 기법 자체가 고대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유리 장인인 쟝 동은 1875년에 아들들과 함께 ‘동에피스(동과 아들들)’이라는 유리 회사를 낭시에 열었다. 아들인 앙트완 동은 10년 뒤에 유리 예술 작품 부문을 따로 두고 고급 유리 제품을 만드는데 주력했는데 그 결과 고대 이집트에서 기원전 5000년에 만든 유물을 토대로 ‘빠뜨 드 베르(pate de verreㆍ유리 반죽)’라는 유리 제조 공정을 찾아냈다. 이것은 색 유리를 가루로 만든 뒤 반죽처럼 다시 구워 유리 그릇을 만든다는 기법인데, 1968년도에 크리스탈 기법과 융합되면서 유리 예술의 신경지를 열었다(크리스탈도 유리의 일종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규사에 소다를 넣어서 만드는 투명체는 유리로, 규사에 산화납을 넣어서 만드는 투명체는 크리스탈로 분류한다. 크리스탈은 유리보다 무거운 반면 훨씬 더 투명하고 물러서 조각을 쉽게 할 수 있다). 그 회사가 재현한 ‘빠뜨 드 베르’ 기법은 왁스를 바탕으로 석고틀을 만들어 그 안에 크리스탈 가루를 넣어 다시 굽는 방식으로,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으며 부조와 같은 질감을 내고 다양한 색상을 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 기법 덕분에 수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유리로 재현될 수 있었다.

김씨가 혼자서 작업하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이런 ‘빠뜨 드 베르’ 기법을 통해 그가 표현하고 싶은 형태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한국에는 색 크리스탈 덩어리나 유리 가루를 파는 곳도 없었고 유리를 가루 내는 기계도 없었다. 다른 제작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도 당연히 없었다.

크리스탈 덩어리는 그가 알고 지내던 유리 공장을 찾아가 만들어 썼다. 그가 필요로 하는 색깔은 많았지만 국내의 조그만 유리 공장은 투명 유리만을 주로 만드는지라 색깔이 있는 것을 만들려면 도가니를 청소하는 마지막 날을 고르는 수 밖에 없었다. 유리 가루는 그가 직접 기계를 만들어서 갈았다.

왁스와 석고틀도 간단치 않았다. 석고는 유리가 녹는 온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부스러지기 때문에 유리 작품을 제작하는 틀로 쓰려면 석고에 규사를 섞어야 하는데 규사를 얼마나 섞을지는 연구된 바가 없었다. 미국 교재를 토대로 독학을 했지만 거기에 나오는 함유 비율은 미국산 제품을 토대로 만든 것이라 국산 규사와는 맞지 않았다. 일일이 직접 해 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처음 반 년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기초 재료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하는 실험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유리 가루가 유리로 녹으면 부피가 3분의 1정도는 줄기 때문에 틀 위에 그만큼을 더 올려 놓아주어야 한다. 이것도 정확히 실험해 보지 않으면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또 유리가 석고틀 안에서 녹는 것이기 때문에 석고틀의 두께에 따라 오븐의 온도가 전달되는 속도도, 전달되는 감도도 다 달랐다. 무조건 고온으로 올렸다간 석고틀이 무너진다. 석고틀이 무너지면 유리는 깨진다. 몇 분 동안 고온을 주고 몇 분 동안 서서히 식힐 것인가에 대한 연구도 독학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그의 작업실에서 하나씩 실험하고 확인한 다음에야 실행에 들어갈 수 있었다.

"평가 인색하지만 행복"
그렇게 손과 몸으로 익힌 결과 그만의 기계와 묘법이 창안됐다. 석고틀에서 왁스를 빼내기 위해 그는 압력솥을 쓴다. 압력솥에 호스를 연결해 그 증기를 석고틀 안쪽으로 빼 주는 것이다. 왁스가 몇 도에서 녹는지를 알기 위해 온도계를 들고 50도에서 차츰 올려가며 실험해 보았음은 물론이다.

그가 만드는 유리 기물들은 세상에 하나 뿐인 물건들이다. 왁스를 만드는 고무틀은 1년 동안 가지만 그 고무틀에서 만든 왁스는 석고틀이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석고틀은 다시 유리 기물이 완성되는 순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나오는 작품이 다 완성품은 또 아니다. 한 점의 성공작이 나오려면 수많은 태작들을 깨버려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유리는 그래도 깨버린 조각을 다시 쓸 수 있으니 도자기보다 낫다”며 태평이다.

공장에서 나온 외국산 명품은 고가에 사 주어도, 세상에 한 점 뿐인 국산 수제품에 대한 평가는 인색한 한국 사회에서 그는 절대로 유리 작품으로 생계를 이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찾는 이들이 적은 지금이 아주 그에게 맞는다고 했다.

그는 “작업실을 내면서 두 가지를 결심했다. 첫 째는 남이 좋아하는 물건을 만들려고 애쓰지 말자, 두번 째는 ‘이렇게 하면 잘 팔릴 것이다’는 궁리질 하지 말자. 대개 이런 약속은 지키기가 힘든데, 찾는 사람이 없으니까 지킬 수 있다”고 웃었다. 그는 하지만 이렇게 ‘내가 좋아서 만드는 사적인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포근함이 안에서부터 밀려나오는 것 같아 자꾸 들여다 보게 되니 말이다.

▲ 만드는 법

만들고 싶은 형태를 조각한다. 형태상 깎는 게 맞으면 석고로 하고 빚는 게 좋으면 점토를 쓴다.

형태를 토대로 고무틀을 만든다. 일제 규사고무액을 쓴다.

고무틀에 왁스를 녹여 형태를 만든다. 왁스 여러 장을 점토로 조합해 형태가 완성될 때도 있다.

왁스 위에 석고를 부어서 석고틀을 만든다. 석고틀은 석고와 규사를 섞어서 만들어야 한다. 석고가 굳으면 안에 있는 왁스를 녹여서 빼낸다.

석고틀 안의 홈에 크리스탈 가루를 원하는 색의 순서로 넣어준다.

오븐에 넣고 굽는다.

크리스탈이 녹았다가 굳으면 꺼내서 석고틀을 제거한다.

유리 가는 기계로 거친 부분을 갈아 내고 드릴로 최종 마감한다.

서화숙 한국일보 대기자


입력시간 : 2005-01-21 10:23


서화숙 한국일보 대기자 hssu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