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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25시] 배우 윤지혜
무대 위에서 인생을 배우며 의문의 삶에 던진 물음표
연극 <클로저>에서 앨리스 역 맡은 배우
쿨하고 무표정한 분위기, 자유로운 영혼 엿보여






영화 ‘클로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앨리스(나탈리 포트만)가 뉴욕의 거리를 자유롭게 거니는 장면으로 끝나지만 연극 ‘클로저’는 남은 세 사람이 사고로 죽은 앨리스(극중 수정)를 회상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앨리스는 죽지 않았다”고 말해 배우와 연출가를 놀라게 한 이가 있다.

앨리스는 사고로 죽은 것으로 알려지지만 그녀의 죽음은 의문투성이며 앨리스야 말로 신비스런 존재기에 죽음이 그대로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그녀. 연극 ‘클로저’에서 앨리스 역을 맡은 배우 윤지혜(27)다. 그녀는 앨리스의 매력을 조목 조목 말할 줄 아는, 누구보다 자신이 맡은 배역을 사랑할 줄 아는 배우다.

아직 연극 배우라고 말하기에 윤지혜의 무대경력은 짧다. 작년 12월 연극 ‘유리 가면’이 그녀의 연극 데뷔작인 셈. 그러니까 ‘클로저’는 그녀에게 두 번째 연극 무대다.

1998년 영화 ‘여고 괴담’에서 자살하는 2등 여고생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그녀는 무표정의 차가운 이미지와 예사롭지 않은 눈빛이 매력으로 다가 온 무서운 신인 배우였다. 그 후 이 시대 청춘들의 슬프고도 격렬한 사랑을 그린 청춘의 우울한 자화상 ‘청춘’에서 하라 역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었고, ‘물고기 자리’에서 한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커리어 우먼 희수 역,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의 발랄한 이미지의 미란 역으로 스크린 속 다양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었다.

도쿄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 아시아 상을 받았던 민병국 감독의 ‘가능한 변화들’에서는 무미건조한 사랑을 이어 나가는 주인공 윤정 역할로 성숙한 연기를 보여 주기도 했다. 또한 작년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아일랜드’ 에서 여자 경호원 역으로 처음 안방 극장을 찾았던 그녀는 데뷔 후 7년 동안 영화나 드라마, CF에서 많이 보았던 카메라에 익숙한 배우다.

“서울 예대 연극과에 입학하고 사진을 한 장 보냈더니 우연찮게 ‘여고 괴담’에 캐스팅되었죠. 그 후 영화에서 더 많은 모습을 보여 줬지만 사실 전 무대에 오르고 싶었어요. 할수록 오기가 생기고 하나씩 배워 가는 과정이 인생을 배우는 거 같아서요.” 지금까지 그녀가 영화에서 맡은 배역은 마치 연극 ‘클로저’를 준비하기 위한 작업 같다. 자살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거나 열등한 입장에 처한 캐릭터들, 그녀가 주로 해 온 역할들은 하나 같이 상처 입은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연극의 앨리스를 연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앨리스는 내가 동경하는 캐릭터"
연출가 이지나 씨도 윤지혜를 앨리스역에 캐스팅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본 순간, 연극 앨리스 역에 적임자라고 한눈에 알아 봤다. 쿨한 분위기, 무표정 속에 숨겨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윤지혜에게 있었다. 사랑을 할 때 자신을 던질 줄 아는 헌신적인 역할이지만, 사랑이 끝나면 바람처럼 훌쩍 떠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앨리스는 깊이 있는 내면을 간직한 캐릭터다.

“앨리스는 저 자신과 닮았다기 보다, 사실 제가 동경하는 캐릭터예요.” 윤지혜는 앨리스를 연구하면서 그녀가 부러울 따름이었다. 앨리스야말로 순수한 영혼을 지녔기 때문이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많은 것을 계산하잖아요. 이기심 때문에 언제나 조금만 사랑하기를 터득하잖아요. 하지만 앨리스는 그러지 않거든요. 사랑을 위해서 무모하게 자신을 다 주거든요.”

중성적인 마스크, 아무 말 하지 않을 때 느껴지는 차가운 눈빛, 접근 불가의 이미지. 그것이 내뿜는 카리스마. 그 때문에 윤지혜는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배우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실제 성격은 왈가닥에 푼수끼가 있는, 쾌활하지만 조금은 엉뚱한 캐릭터라고 말한다. “앨리스야 말?가장 멋진 여자죠. 부담스러웠어요. 나탈리 포트만이라는 배우 이미지가 워낙 강해 영화 시사회에 가기가 싫더라구요. 그녀의 이미지에 나 자신을 맞출 것 같은 불안함 때문에요.”

앨리스는 생각보다 더 복잡한 인물이었다. 다리에 난 물음표 모양의 상처가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앨리스는 미스터리였다. 그것은 오히려 앨리스를 더욱 신비로운 여자처럼 만든다. 그렇기에 배우가 변화시킬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캐릭터이기도 하다. “나탈리 포트만은 그녀의 이미지를 앨리스 역에 맞추었지만, 저는 앨리스를 제 이미지에 맞추려구요. 관객에게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어요. 결국 제가 동경하는 캐릭터기에 이젠 누구보다 자신 있게 연기하고 있구요.”

사랑이 이기고 지는 전쟁이라면 윤지혜, 그녀는 사랑에 있어서 언제나 승자였다. 한번도 채여 본 적이 없는 그녀는 사랑 앞에서는 늘 당당했다지만 그것은 자신의 착각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우린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덜 사랑하기를 선택하죠. 그것이 마치 사랑의 승자인 것 마냥. ‘클로저’에서 앨리스를 만나고 알게 됐어요. 진정한 승자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란 것을. 후회 없이 사랑하고 또한 상처 입은 만큼 단단해졌기에 미련 없이 훌쩍 떠날 용기도 생기는 거구요.”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앨리스의 떠남은 사랑이 끝남을 예고한다. 결국 앨리스는 죽음으로 남겨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최후의 승자다.

윤지혜는 점점 앨리스를 닮아갔다. 상처를 입을까 봐 언제나 조금만 사랑하기를 선택한 그녀는 앨리스 연기를 하면서 그녀가 용감하게도 자신이 못다 한 사랑을 대신 해주는 것 같아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자신의 페르소나를 만난 기분이지만, 앨리스의 직업 연기를 할 때는 익숙치 않아 혼이 날 정도였다고. “스트리퍼인 앨리스를 연기 할 때가 사실 제일 민망했죠. 노출이 심한 옷을 입어야 하는데 자꾸 웃음이 나는 거예요. 결국 연습할 때도 부러 의상을 입고 연기했어요. 스트리퍼라는 앨리스의 직업에 익숙해지려구요.”

연극 연습을 하면서 체력을 키운다는 그녀의 일상은 ‘클로저’의 연습으로 꽉 차 있다. 아예 자신을 던져버리기로 작정했다는데. 스트리퍼 의상을 입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면은 자신이 마치 스트리퍼 인생을 사는 것 같다는 착각까지 든다고.

관객에게 숙제같은 연극
‘클로저’는 관객에겐 숙제 같은 연극이다. 덮어 버리려 했던 사랑의 상처나 관계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까발기고 알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은 다시 거짓을 말해주길 바라는 바람으로 바뀐다. 진실을 알았을 때 결코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히 기분 좋게 속여 주는 거짓이 진실보다 착하다.

연극 ‘클로저’는 그렇기에 결말이 없다. 사랑과 상처, 진실과 거짓이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마음을 안고 살아 가는 현대인들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연극이다. 결국 관객의 몫이다. “앨리스는 신비스런 존재죠. 저도 연극이 끝나면 앨리스처럼 훌쩍 떠나 버릴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 세상을 향해 마구 소리 지른다는 그녀. 의문 투성이인 삶에게 던지는 그녀의 외침은 무대에서 한동안 진행될 예정.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안녕.” 그리고 도망치는 앨리스가 윤지혜를 닮은 것도 같다. 앨리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도시의 구석 구석을 자세히 보면 군중 속에 유독 빛나는 한 여자를 발견할 것이다. 함부로 눈길을 주면 어느 날 당신의 가슴에 뚝 떨어져 이렇게 말한 것이다.

안녕. 낯선 사람?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그녀를 조심해야 한다. 그녀가 당신을 선택하고 사랑할 것이기에.

**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2월 25~3월 13일. 문의 02- 516-1501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


입력시간 : 2005-03-0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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